행복한 생활을 위해서...영국의 캐롤라인 왕비(19)

영국에서 : 생의 마지막

by 엘아라

1730년대 후반이 되면서 캐롤라인의 건강은 점차 나빠지게 됩니다. 가장 큰 원인중 하나는 잦은 출산으로 인한 탈장이 있었고 이 탈장으로 인해서 건강이 점차 악화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캐롤라인에게는 여전히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캐롤라인의 남편인 조지 2세는 아버지처럼 하노버의 통치를 위해서 정기적으로 들렀는데 특히 1735년에는 그곳에서 정부가 되는 아말리 폰 발모덴을 만났습니다. 사실 조지 2세는 아말리를 영국으로 데려오고 싶어했지만 왕비를 두려워한 아말리는 영국으로 오려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캐롤라인 왕비


1736년 웨일스공 프레드릭이 결혼한 후 조지 2세는 다시 한번 하노버로 갔으며 여전히 섭정으로는 아들이 아닌 아내인 캐롤라인을 지목하게 됩니다. 이것은 아마도 프레드릭이 아버지에 대해서 강한 불만을 갖는 원인이 되었을것입니다. 게다가 어머니와 사이가 나빠졌기에 아마도 프레드릭은 어머니가 자신의 지위를 뺏은 것이라고 여겼을것입니다. 1736년말 조지 2세는 영국으로 돌아오려했는데 갑자기 실종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배가 폭풍우를 만났다는 소식이었는데 이때 캐롤라인은 아들의 행동에 충격받게 됩니다. 국왕이자 남편이며 아버지인 조지 2세의 생사를 알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프레드릭은 만찬을 개최하면서 아버지의 안위를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캐롤라인과 프레드릭의 사이는 더욱더 멀어지게 되는데 프레드릭은 정치적 권력을 차지한 어머니에게 불만이었으며, 캐롤라인은 가족에 대해서 무감각한 아들에 대해서 불만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모두에게 다행히도 1737년 1월 조지 2세는 영국으로 돌아왔었습니다.


웨일스 공 프레드릭


1737년 웨일스 공은 부모에게 아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캐롤라인은 이때 자신의 첫 임신을 떠올렸고 혹시 상상임신일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고 신중하게 됩니다. 하지만 임신을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웨일스 공은 자신의 첫아이를 세인트 제임스 궁정에서 낳길 원했었는데, 출산예정일을 잘못계산했었기에 다른곳에 있었습니다. 결국 1737년 7월 아우구스테가 진통을 시작하자 진통하는 아내를 데리고 마차를 타고 세인트 제임스 궁전으로 가게 됩니다. 이상황에 대해서 캐롤라인은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일단 왕족아이가 태어나면 친척들과 신하들이 아이가 바뀌지 않았는지에 대한 증인이 되어야했습니다. 하지만 웨일스 공의 이런 행동은 모두가 증인이 될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고 잘못하면 정치적 문제가 될수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선례가 있었는데 제임스 2&7세의 아들인 올드프리텐더가 태어날때 이복누나인 앤 공주가 없었고 이때문에 그의 출생에 대해서 "워밍팬으로 아이를 데려왔다"라는 의심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으며 심지어 이것이 오라녜공이 잉글랜드로 오는 빌미중 하나가 되기까지 했었습니다. )게다가 진통중인 아내를 마차에 태워서 데려간것 역시 캐롤라인은 이해할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런 상황에 대해서 조지 2세와 캐롤라인은 아들을 못마땅하게 여겼으며 조지 1세가 그랬던 것처럼 아들을 추방했고, 프레드릭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레스터 하우스로 이사가게 됩니다. 달랐던 점은 조지 2세는 아버지와 달리 프레드릭의 가족 모두를 데려가게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작센-고타의 아우구스테, 웨일스 공비 오거스타, 조지 3세의 어머니


캐롤라인은 손녀가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장남에 대한 감정이 호전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만 1737년 11월 9일 캐롤라인은 쓰러지게 됩니다.탈장으로 인해서 장의 상태가 악화되었고 결국 이것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캐롤라인은 수술등을 받았지만 상태가 악화되었습니다. 프레드릭은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머니였기에 어머니가 아픈 상황에서 어머니를 만나길 바랬습니다. 하지만 조지 2세는 그가 캐롤라인을 만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캐롤라인은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결국 사람을 통해서 아들인 프레드릭에게 용서한다는 메세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캐롤라인은 남편에게 자신이 죽으면 재혼하라고 이야기했었다고 합니다만, 조지 2세는 하노버에 두고 온 정부가 있었으며 캐롤라인에게 그녀와 함께 살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캐롤라인 왕비


캐롤라인은 1737년 11월 20일 사망했습니다. 캐롤라인은 웨스터민스터 사원에 묻혔으며 남편인 조지 2세는 아내와 함께 묻히길 원했기에 함께 누울 관을 마련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들인 프레드릭이 아내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을 금지했었습니다.


https://youtu.be/ctI4RqytF_Y

헨델이 작곡한 캐롤라인 왕비의 장례식 음악Funeral Anthem for Queen Caroline, HWV 264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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