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
캐롤라인은 조지 2세와의 사이에서 여러 아이를 낳았으며 일곱명의 아이가 성인으로 성장했습니다. 캐롤라인과 조지 2세의 장남인 웨일스 공 프레드릭은 어머니가 죽은뒤 아버지에게 매우 냉대를 받게 됩니다. 그는 한동안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평온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1742년 로버트 월폴이 실각한 뒤 프레드릭의 지인들이 권력을 잡으면서 부자간의 화해가 이루어지게 됩니다만 1751년 아버지보다 먼저 사망했으며, 그의 장남인 조지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웨일스 공이 되었고 결국 할아버지 조지 2세의 뒤를 이어서 국왕 조지 3세가 되었습니다.
캐롤라인의 둘째아들인 윌리엄은 부모가 매우 아끼는 아들이었으며 형과 달리 군인으로 착실한 성격이었습니다. 아마 조지 2세는 가문의 다른 사람들처럼 군인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차남에 대해서 장남보다 더 아끼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컴벌랜드 공작이 된 윌리엄은 군인으로 특히 자코바이트의 반란이었던 the forty-five에서 큰공을 세웠는데 이 반란의 핵심 전투였던 컬로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이후 자코바이트들이 더이상 봉기를 할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군인으로 매우 엄격했던 그에 대해서 반대 정당이었던 토리당은 "도살자"라는 별명을 붙였었지만, 이것은 단지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말이뿐이었습니다. 하지만 7년전쟁이후 그는 아버지에게 질책을 받고 공적 생활을 은퇴했었습니다. 컴벌랜드 공작은 미혼으로 사망했습니다.
캐롤라인의 큰딸인 앤은 아버지가 왕위에 오른뒤 "프린세스 로열"칭호를 받았습니다. 찰스 1세의 왕비였던 헨리에타 마리아가 도입했던 이 칭호를 앤 역시 받게 된 것입니다. 앤은 1725년 프랑스의 루이 15세와 혼담이 진행되었지만 가톨릭으로 개종해야한다는 사항때문에 결혼이 무산됩니다. 이후 1734년 앤은 오라녜공이었던 빌렘 4세와 결혼합니다. 빓렘 4세는 척추에 문제가 있었기에 외모에 영향을 받았지만 앤은 자신의 신분에 적당한 개신교 왕족이 빌렘 4세 밖에 없었기에 그와 결혼하기로 결정했었다고 합니다. 앤은 네덜란드에서 거만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그다지 인기있는인물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앤의 아들인 빌렘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오라녜공 빌렘 5세가 되었으며, 앤의 손자는 네덜란드의 첫번째 국왕인 빌렘 1세가 됩니다.
캐롤라인의 둘째딸인 아멜리아는 사촌이었던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후에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와 혼담이 있었습니다. 아멜리아의 고모인 프로이센의 왕비는 물론 프리드리히 자신도 아멜리아와의 결혼에 적극적이었습니다만 프로이센 국왕의 반대로 인해서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아멜리아는 이후 미혼으로 아버지의 궁정에서 지냈었습니다. 아멜리아는 평생 프리드리히의 미니어처 초상화를 간직했다고 합니다.
캐롤라인의 셋째딸인 캐롤라인은 부모에게 매우 사랑받는 딸이었습니다. 캐롤라인은 성실하고 착했으며 공정한 성격으로 부모는 이런 딸을 매우 편애했고 자녀들간의 문제가 생기면 늘 모든것을 알려주는 캐롤라인을 부르고는 했다고 합니다. 캐롤라인은 미혼으로 지냈는데 일반적으로 허비경을 사랑해서 였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그는 바람둥이로 심지어 캐롤라인의 오빠와 관계를 맺었던 여성과 동시에 만났고 그녀의 아이의 아버지중 한명으로 의심받는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남자와의 관계는 도저히 인정받을수 없었기에 캐롤라인은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캐롤라인의 넷째딸인 메리는 온화한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메리는 동생인 루이자와 함께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추진한 정략결혼의 대상이 됩니다. 메리의 결혼 상대는 헤센-카셀의 마르크그라프의 아들이자 후계자였던 프리드리히였습니다. 둘이 결혼한뒤 헤센-카셀의 군대는 자코바이트의 반란을 평정하기 위해서 지원을 오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부부는 매우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었는데 프리드리히는 아내를 학대했다고 알려져있었습니다. 게다가 후에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바람에 종교적으로 강경한 영국 공주인 메리는 결국 아들들과 함께 남편을 떠나서 여동생의 가족이 있는 덴마크로 갈 정도였습니다. 메리의 아들인 빌헬름은 후에 헤센의 선제후 빌헬름 1세가 됩니다. 헤센의 선제후 빌헬름 1세는 그의 재정을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에게 맡겼는데 이 인물이 바로 경제계의 큰손이라고 알려진 "로스차일드 가문"을 시작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캐롤라인의 다섯째딸이자 막내는 루이자였습니다. 루이자 역시 정략결혼으로 덴마크의 왕위계승자였던 프레데릭과 결혼했었습니다. 조지 2세는 7년전쟁 당시 하노버의 안위를 걱정했고 덴마크가 하노버에 도움이 될것이라 여겼습니다. 반면 덴마크는 스웨덴의 왕위계승문제등에 영국이 지원해줄것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루이자는 덴마크에서 매우 인기있는 왕비가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루이자의 아들인 크리스티안이 사촌이자 조지 3세의 동생인 캐롤라인 마틸다와 결혼하는 것에 대해서 덴마크 국민들이 열렬히 환영할 정도였습니다. 루이자의 아들인 크리스티안은 덴마크 국왕이 되었으며, 장녀인 소피아 마그달레나는 스웨덴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