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결말의 에릭 14세와 카린 몬스도테르
에릭 14세는 왕위에 오르기 전 여러 여성들에게 청혼을 했습니다. 그 역시 권위를 위해 외국 왕녀들에게 청혼을 했었죠. 하지만 혼담은 오래도록 성사되지 않았었습니다.
이동안 에릭은 다른 많은 왕족들처럼 정부를 들이게 됩니다. 이미 국왕이 되기 전 여러 여성들과 관계를 맺었으며 , 특히 아그다 페르스도테르라는 부유한 상인의 딸과는 세명의 자녀를 둘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1565년 국왕은 다른 여성을 찾게 되죠.
카린 몬스도테르는 군인이자 후에 간수가 되는 몬스라는 이름의 남자와 그의 아내인 잉리드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잉리드는 웁살라 출신의 농노였다고 합니다. 1564년 열네 살의 카린은 국왕이 총애하던 궁정 음악가의 하녀로 고용되었는데 아마도 이때 국왕을 만났을 것이라 추정한다고 합니다.
1565년 카린은 에릭의 여동생인 엘리자베트 공주의 시녀가 됩니다. 그리고 궁정에 호화로운 옷을 입고 자주 나타났기에 모두들 그녀가 국왕의 정부가 된 것을 알았죠.
카린에 대한 에릭의 대우는 이전 그의 정부들과는 좀 달랐다고 합니다. 카린에게 호화로운 선물을 했고 재산을 줬으며, 카린 스스로를 위한 고용인을 구하는 것도 허락했습니다. 왕비나 궁정의 높은 지위의 여성들이나 가능한 대접을 카린에게 해준 것이었죠. 또 국왕은 카린에게 읽고 쓰는 법까지 배우도록 했으며, 1566년 딸인 시리드가 태어나자 정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었음에도 "자신의 적자"로 인정하기까지 했었죠.
이런 대접은 많은 이들이 국왕이 권력을 누구에게 주고 있는지 깨닫게 되는 것이었죠. "스투레 살해사건"이 일어나기 직전, 매르타 레이욘후푸드는 남편과 아들들을 구하기 위해 카린을 찾아가서 부탁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스투레 살해사건이 일어난 뒤 에릭 14세는 한동안 광증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고, 카린은 이런 에릭을 정성껏 간호합니다. 불안한 에릭을 유일하게 진정시킬 수 있던 유일한 사람이 카린이었습니다. 카린은 기본적으로 선량한 사람으로 궁정에 적들을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궁정에서 존경받던 인물도 아니었죠. 아마도 평민 출신이었던 그녀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에릭은 자신에게 위안이 되는 카린과 결혼하기로 결심합니다. 에릭은 1567년에 카린과 비밀 결혼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1568년 에릭은 카린과 공식적으로 결혼했으며, "카린 마그누스도테르"라는 이름으로 카린을 스웨덴 왕비로 대관하게 합니다. 그리고 카린과의 사이에서 난 아이들은 모두 적자로 계승권을 가진 아이들로 인정하죠.
이 상황에 귀족들과 왕실 가족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에릭의 동생이었던 소피아 공주는 카린이 마녀행위를 해서 오빠를 꼬셨다고 주장할 정도였죠. 아마도 많은 귀족들은 이전에 국왕의 광증을 떠올리면서 국왕이 여전히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결국 이런 귀족들의 동요를 기회로 에릭의 동생인 요한이 나서게 됩니다.
카린과 에릭의 결혼 직후 요한과 귀족들은 반란을 일으켰고 결국 에릭은 붙잡히게 됩니다. 요한은 형을 감금하고 자신이 스웨덴의 국왕 요한 3세로 즉위하죠.
에릭 14세는 여러 성을 옮겨 다니면서 감금당했고 결국 사망하는데 당시에는 요한이나 귀족들에 의해서 독당했다는 이야기가 파다했었다고 합니다. 카린과 아이들은 국왕과 떨어져 지냈었는데, 딸은 카린이 키우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아들은 왕위 계승에 문제가 될 수 있었기에 카린에게서 떼어놓고 멀리 외국으로 보내지게 됩니다. 아들인 구스타프는 에릭을 지지하는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킬 명분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카린은 딸과 함께 핀란드로 보내지게 됩니다. 하지만 옛 왕비였던 카린은 적당히 예우받게 됩니다. 핀란드의 왕실 영지를 받아서 딸과 함께 지냈으며 스톡홀름으로 두어 번 다시 돌아가기도 했었습니다.
카린은 핀란드에서 오래 머물게 되는데 그녀는 핀란드를 사랑하게 되었으며 핀란드 사람들도 그녀에게 호의적으로 대하게 됩니다. 카린은 후에 정치적 문제 때문에 핀란드를 떠나 스웨덴 본토로 가야 하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조용하고 평온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더하기
카린의 아들인 구스타프는 폴란드로 보내져서 가톨릭으로 키워지게 됩니다. 이것은 요한 3세가 에릭 14세의 지지자들이 구스타프를 중심으로 모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죠.
훗날 아들이 성장한 뒤에야 카린은 아들 구스타프를 만날수 있었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카린이 아들을 만났을 때 모자는 서로의 말이 통하지 않아 많은 대화를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카린은 스웨덴어밖에 할 줄 몰랐으며 아들인 구스타프는 폴란드에서 성장해서 스웨덴어를 배우지 않아서 였다고 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