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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Oct 06. 2022

마리아 테레지아 여대공이 초연을 놓친 오페라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바니"

마리아 테레지아라는 이름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여성들이 자주 쓰는 이름중 하나였습니다. 이것은 황제 카를 6세의 딸로 합스부르크 가문을 이어받았던 마리아 테레지아의 영향이 컸습니다. 특히 마리아 테레지아의 손녀들 중에는 이 대단한 할머니의 이름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한명씩은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로 프랑스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신의 장녀가 태어났을때 어머니의 이름을 붙였고,이 딸은 프랑스 식 이름으로 마리 테레즈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마리아 테레지아, 신성로마제국의 황후,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들 중 아버지의 토스카나 영지를 이어받은 아들은 레오폴트였습니다. 그는 후에 형인 요제프 2세의 뒤를 이어서 황제가 되었습니다만, 형이 죽기 전까지 토스카나 지방을 통치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형제 자매들처럼 자신의 첫째딸이 태어나자 이 딸에게 어머니의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그리고 이 마리아 테레지아 여대공이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대공, 마리아 테레지아의 손녀, 황제 레오폴트 2세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대공은 토스카나 대공령의 중심 도시였던 피렌체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었습니다. 그리고 1787년 마리아 테레지아 여대공은 작센의 안톤과 결혼합니다. 아마도 이 결혼은 바이에른 계승 문제를 두고 오스트리아와 작센 사이의 갈등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한 것일듯합니다.


1787년 9월 8일 마리아 테레지아 여대공은 피렌체에서 대리결혼식을 한뒤 드레스덴으로 가서 10월 18일 작센의 안톤과 정식결혼식을 하게 됩니다. 이때 여대공은 프라하를 들르게 되는데 이제 결혼해서 작센으로 가는 여대공을 위해서 프라하에서는 오페라를 준바합니다. 그 오페라는 바로 당대 프라하에서 제일 인기있는 오페라 작곡가였던 모차르트의 오페라로 프라하의 극장에서는 이미 1787년 초에 모차르트에게 오페라를 의뢰해둔 상황이었습니다. 


모차르트


모차르트가 이때 작곡하고 있던 오페라는 로렌초 라 폰테의 대본을 바탕으로 작곡한 돈 조바니였습니다. 여대공은 10월 14일에 프라하에 도착했지만 정작 모차르트는 이때까지 곡을 다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프라하에서는 여대공을 위해서 모차르트의 이전 오페라인 "피가로의 결혼"을 공연했다고 합니다.


이 돈 조바니는 결국 1787년 10월 29일날 초연되었는데, 모차르트는 초연 전날인 10월 28일에서야 악보를 다 완성했었다고 합니다. 


https://youtu.be/FDsyYs-OqWw

1막에서 돈 조바니의 하인이 돈 조바니가 농락한 여자들의 명단을 읊으면서 돈 조바니에게 미련을 가지고 있는 도나 엘비라를 설득하는 노래입니다. 



모차르트의 돈 조바니는 악당인 돈 조바니가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지옥으로 끌려들어가는 부분이 압권입니다. 이것은 많은 작품에서 결국 악당이 회개하는 것과 다른것으로 당대와후대에 많은 예술적 철학적 영감을 주는 것이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제19회 대구 국제 오페라 축제에서는 이 모차르트의 돈 조바니를 2022.10.7-2022.10.8 공연합니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대공이 초연을 놓친 이 오페라에 대해서 궁금하시다면 이 공연을 감상하시는 것은 어떨까요?


더하기

이 모차르트의 돈 조바니의 초연을 놓쳤던 마리아 테레지아 여대공은 작센으로 시집갔고, 남편인 안톤이 형의 뒤를 이어서 작센의 국왕이 되면서 작센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물론 왕비가 된지 1년이 되지 않아 사망하지만 말입니다.



사진출처

1.위키 미디어 커먼스

2.대구 오페라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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