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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Sep 27. 2015

폴란드와 스웨덴의 국왕

요한 3세의 아들 시기스문드

요한 3세와 카타리나 야겔로니카의 아들인 시기스문드는 어린 시절 가톨릭으로 자라게 됩니다. 이것은 어머니 카타리나 야겔로니카의 영향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어머니인 카타리나는 폴란드 국왕의 딸로 폴란드 왕위 계승문제에도 관심을 많이 가졌었다고 합니다. 


시기스문드


당시 폴란드는 좀 복잡한 상황이었는데 시기스문드의 외삼촌이었던 지그문트 2세는 오래도록 후계자가 없었고 결국 후계자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그런데 야겔론 가문에서는 더 이상 왕위를 이을 계승자가 남아나지 않았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결국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의 귀족들이 국왕을 선출하는 계기가 되죠. 그리고 지그문트 2세의 후계자로  선출된 사람은 프랑스의 왕자였던 앙리였습니다. 하지만 앙리는 형이 죽은 후 프랑스의 국왕이 되었으며 결국 폴란드는 다시 국왕을 선출해야 했죠. 잠시 혼란한 상황을 거쳐 지그문트 2세의 누이였던 안 나와 결혼한  바토리 가문 출신의 스테판 바토리를 국왕으로 선출합니다. 이것은 합스부르크 가문을 견제하던 폴란드 귀족들이 황제를 국왕으로 추대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안나와 스테판 바토리 사이에서도 자녀가 없었고, 다시 한번 왕위 계승자 문제가 발생합니다. 안나는 폴란드 공주로 자신의 권리로 폴란드 여왕이 될 권리를 가졌다고 생각했었습니다만, 그녀가 재혼해서 새 남편이 폴란드 국왕으로 즉위한다고 하더라도 후계자 문제가 걸림돌이 될 것이었습니다. 결국 안나는 조카인 스웨덴의 시기스문드나 또는 시기스문드의 누이였던 스웨덴의 안나를 다음 계승자로 염두에 두게 됩니다. 처음에는 안나를 남편의 조카와 결혼시켜서 폴란드 왕위 계승자로 만들려 했지만 귀족들의 반발로 이뤄지지 못했고 결국 조카인 시기스문드를 왕위 계승자로 내세웁니다. 요한 3세는 당시에는 하나밖에 없던 외아들인 시기스문드를 폴란드로 보내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결국 그를 폴란드로 보내게 되죠. 


1586년 스테판 바토리가 후계자 없이 사망한 뒤, 스웨덴의 왕위 계승자였던 시기스문드는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합 왕국의 지그문트 3세로 즉위하게 됩니다. 이것은 스웨덴의 왕위 계승문제에도 좀 혼란을 초래하는데, 시기스문드는 폴란드의 국왕으로 주로 폴란드에 머물러야 했는데 이런 상황은 스웨덴에서 그다지 달가운 상황이 아니었죠. 1589년 요한 3세와 그의 두 번째 아내인 구닐라 비엘케 사이에서 아들인 요한이 태어납니다. 구닐라 비엘케는 아들인 요한을 시기스문드 대신 스웨덴의 국왕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 상황은 스웨덴 귀족들이 반발했기에 큰 성과는 없었죠.


폴란드의 국왕 지그문트3세


1592년 요한 3세가 사망하면서 시기스문드는 스웨덴의 국왕이 됩니다. 하지만 그는 가톨릭 교도였으며 주로 폴란드 국왕으로 폴란드에서 지냈으며 스웨덴에는 대리인을 보내서 통치했었습니다. 스웨덴 귀족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서 달가워하지 않게 됩니다. 특히 스웨덴은 개신교 중심의 나라로 바뀌어가고 있었는데 시기스문드는 이런 스웨덴에 다시 가톨릭을 부흥시키려 했었고 결국 종교 정책에 대한 위기감으로 스웨덴 귀족들은 스웨덴의 국교로 루터파를 지정하기에 이르게 되죠. 시기스문드는 이 결정을 번복할 수는 없었지만 가톨릭에 대한 호의적 정책을 계속 펴게 됩니다.


국왕과 귀족들이 마찰을 빚으면서 신교도였던 국왕의 숙부인 쇠데르만란드 공작 칼이 힘을 얻게 됩니다. 그는 루터파를 신봉했었기에 국왕의 종교정책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칼에게 호의적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미 칼마르 동맹에서 연합 왕국의 경험이 그다지 좋지 못했던 스웨덴에 폴란드 국왕이 된 시기스문드는 뭔가 껄끄러운 존재이기도 했었습니다. 결국 칼은 이런 분위기를 바탕으로 스웨덴의 국정을 장악하게 됩니다.


시기스문드의 숙부, 쇠데르만란드 공작 칼


칼의 국정 장악에 위기를 느끼게 된 사람들은 시기스문드를 지지하는 스웨덴 사람들이었습니다. 시기스문드는 정당한 스웨덴의 국왕이었기에 지지세력이 광범위하게 퍼져있었고 결국 위기감을 느낀 이들은 섭정이자 국정을 장악했던 칼 공작에 대한 반란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이 반란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으며 반란으로 인해서 도리어 스웨덴에서는 시기스문드를 폐위하고 그의 숙부이자 섭정이었던 칼을 스웨덴 국왕으로 옹립하게 됩니다.


시기스문드는 스웨덴의 왕위를 뺏겼지만 강력했던 폴란드의 국왕이었으며 그는 자신이 잃은 스웨덴 왕위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결국 폴란드와 스웨덴 간의 전쟁을 촉발시켰죠. 또 스웨덴 역시 이런 상황에서 매우 혼란을 겪게 되는데 국왕이 된 칼 역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시기스문드를 지지하는 스웨덴 귀족들을 마구잡이로 처형했었습니다. 결국 칼이 즉위한 뒤 스웨덴은 매우 혼란한 상황에 빠지게 되죠.


그림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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