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를 통치한 가문들...세번째
폴란드를 국가형태로 완전히 확립한 인물은 폴란드에 기독교를 받아들였던 첫 번째 군주였던 미에슈코 1세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미에슈코 1세 이후 그의 후손들이 폴란드를 통치했는데 이들은 모두 스스로를 피아스트 코워지에이 Piast Kołodziej(바퀴장이 피아스트)를 조상으로 여겼기에 후대에 이들을 “피아스투프” 왕가라고 부르게 됩니다.
피아스트에 대해서는 12세기 쓰여진 첫 폴란드 역사서이자 폴란드 통치자 가문의 게스타 프린시펌 폴로니노룸Gesta principum Polonorum에 대해서 등장합니다. 이 책은 전설시대부터 1113년까지의 역사를 편찬한 것으로 당시 국왕이었던 볼레스와프 3세나 아니면 당시 재상이었던 미하이 아브다니에츠의 의뢰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리고 이 책에 국왕의 첫 조상으로 나오는 인물이 바로 피아스트 코워지에이였다고 합니다. 책에서는 피아스트와 그의 아버지인 호시치스코Chościsko 와 그의 아내인 제피하Rzepicha가 왕가의 조상으로 등장한다고 합니다.
이야기는 피아스트 가문의 사람들이 어떻게 권력을 잡게 되었는지에 대한 전설이 적혀있는데 당시 통치자이자 폭군이었던 포피엘Popiel을 외국에서 두명의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의 아들의 관례식을 축하해주려했지만 포피엘에게서 쫓겨나게 됩니다. 쫓겨난 이들은 산지를 방황하고 있었는데 역시 아들의 관례식을 준비하던 피아스트가 이들을 발견했고 불쌍한 이들을 집으로 데려와 대접하고 아들의 관례식에 참석하도록 초대했는데 이들은 피아스트의 아들인 시에모비트Siemowit를 축복했으며 이후 사람들은 폭군인 포피엘Popiel을 대신해서 선량한 피아스트와 그의 아들을 추대했으며 결국 아들인 시에모비트가 폴란드의 통치자가 되었으며 그가 바로 폴란드의 첫 번째 기독교 국왕이었던 미에슈코 1세의 증조부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야기는 12세기 기독교 관점으로 쓰여졌기에 아마 성직자로 추정되는 외국인들이 축복을 내려주는 것으로 해석할수 있습니다. 물론 첫 기독교 군주가 미에슈코 1세인 것을 생각하면 이 이야기는 그리스-로마신화의 차용으로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박대당해서 사람들에게 진노했던 이야기와 유사한 스토리를 갖고 있는 것 또한 “신의 선택을 받은 인물”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이야기일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아마 이때쯤부터 피아스투프 가문 사람들은 폴란드 내에서 점차 힘을 얻고 있었을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힘을 얻은 피아스투프 가문 사람들은 미에슈코 1세 무렵 폴란드 전역에 힘을 뻗어나갔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이웃의 신성로마제국과의 갈등을 피할수 없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때쯤 폴란드는 성장했지만 제국과 정면충돌을 하는 것은 무리였을 가능성이 크며 이 때문에 미에슈코 1세는 차라리 이들과의 평화를 모색했고 그것이 바로 “기독교화”였을 것입니다. 기독교화는 단순히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 뿐만 아니라 황제의 신하가 된다고 볼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기에 제국의 세력과 정면충돌을 피하기 위해서 개종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개종은 폴란드를 이제 기록에 남는 역사시대로 접어들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미에슈코 1세의 아들이자 후계자였던 볼레스와프 1세는 아버지처럼 정치적 외교적인 면에서 뛰어난 인물로 그는 황제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견제하기 위해서 교회와의 관계를 강화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폴란드가 황제의 봉신이 아닌 독립적 왕국으로 교황으로부터 승인을 받을수 있었고 이것은 폴란드가 독립국으로 오래도록 유지하는 중요한 발판이 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피아스투프 가문의 힘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고 이 때문에 주변의 여러 나라들은 물론 내부의 갈등을 조정하는데 실패해서 권력을 빼기기도 하고 다시 찾기도 하고 이런 상황이 지속됩니다. 하지만 볼레스와프 1세의 손자였던 카지미에시Kazimierz 1세는 다시 권력을 되찾고 국왕 지위를 얻었습니다만 권력투쟁은 여전했으며 결국 카지미에시 1세의 손자였던 볼레스와프 3세는 아들들이 권력을 두고 투쟁할 것을 두려워해서 네 아들들에게 폴란드를 나누어 상속시켰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영토를 두고 피아스투프 가문 내부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원인이 되었으며 이후 200여년간 분열기로 접어들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이 분열기동안 영토를두고 피아스투프 가문 사람들이 내부경쟁을 하면서 가문내 영지를 두고 서로 다툼을 하다가 결국 13세기 말에는 아예 보헤미아의 국왕이었던 바츺라프 2세와 그의 아들인 바츨라프 3세가 잠시 폴란드 왕위에 올랐었습니다만 피아스투프 가문 출신인 브와디스와프 1세가 이런 혼란한 시기를 수습하고 다시 폴란드 왕위를 얻으면서 피아스투프 가문은 다시 폴란드 전체를 통치할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카지미에시 3세는 아직까지 혼란스러웠던 폴란드를 강력한 나라로 만들어갔습니다만 그에게는 남성후계자가 없었으며 결국 왕위는 혼인관계를 통해서 피아스트 가문과 동맹관계였던 헝가리 왕가로 넘어갔으며 이렇게 피아스투프 가문의 통치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