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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전의 폴란드와 폴란드의 역사적 영토

폴란드를 통치한 가문...두번째

by 엘아라

폴란드는 매우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폴란드가 역사에 등장한 시기는 사실 다른 서유럽 국가보다는 상당히 늦은 편입니다. 폴란드가 역사에 등장한 시기는 10세기경이었습니다. 네 기원전 아니고 기원후 10세기입니다. 물론 폴란드 지역에 10세기 이전에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폴란드도 다른 세계 여러 지역의 선사시대처럼 석시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를 거쳤습니다. 특히 폴란드에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정착한 때는 기원전 2만년경의 후기 구석기 시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인간이 거주했던 흔적들이 발견되고 있기에 아마도 50만년전부터 다양한 인간종들이 거주했다고 여겨지고 있기도 합니다. 폴란드의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2300년경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있으며, 세부적으로 여러개의 작은 시기로 나뉘기도 합니다. 또한 폴란드의 철기 시대는 기원전 700년경에 시작되었다고 알려져있는데 특히 폴란드의 후기 청동기 시대와 겹치는 시기이자 둘의 문화가 혼합되어서 나타난다고 합니다. 특히 기원전 1300년경인 청동기 후기시대부터 기원전 400년경인 초기 철기 시대에 “루사티아 문화”가 폴란드 전역은 물론 인근의 체코,슬로바키아,독일,우크라니아의 일부지역에까지 퍼져있었는데, 이 시기 농경이 정착했고 스칸디나비아 반도 지역과 독일 지역과의 교류가 있기도 했습니다. 이후 다양한 민족들이 폴란드 지역으로와서 정착하는데 특히 5세기경부터 동쪽에서 슬라브인들이 서서히 폴란드로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점차 정착지를 넓혀나갔는데 특히 8세기 이후 슬라브인들은 폴란드 전역에 걸쳐서 정착하게 되었으며 이후 폴란드를 구성하는 주요한 민족으로 남게 됩니다.


Slavic_peoples_9c_map.jpg 9세기 무렵 슬라브 인들의 분포


이렇게 폴란드에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살아왔지만 역사 시대에 등장이 늦었던 가장 큰 이유는 폴란드가 유럽, 특히 서유럽의 변방에 있었던 지역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중세 이전의 유럽 역사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로마와 기독교였습니다. 넓은 지역을 장악했던 로마는 당연히 다양한 지역을 장악하면서 자신들이 장악한 지역에 대한 정보등을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로마에서 기독교가 공인이 된뒤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서 많은 이들이 나섰고 기독교화된 지역은 수도사나 다른 기독교인들의 기록을 통해 역사에 알려질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폴란드는 로마시대에 로마제국의 바깥지역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은 유럽에서 이베리아 반도를 속주로 삼았고 브리튼섬을 점령했으며 갈리아 지방이나 현재 독일의 일부 지역까지 장악했지만, 정작 폴란드 지역은 로마제국의 바깥지역이었고 로마는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기에 먼저 공백이 생겼습니다. 그뒤에 기독교의 전파 역시 주로 로마 제국의 영역이었던 지역을 중심으로 퍼져나갔었기에, 로마의 바깥쪽이었던 폴란드 지역이 기독교화되는 것은 오랜 시기가 걸리게 됩니다. 결국 폴란드가 기독교화한 10세기 말 무렵이 되어서야 폴란드가 역사에 등장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폴란드에 대한 첫 역사 기록은 10세기 중반에 처음 나옵니다. 이베리아 반도 출신으로 코르도바의 칼리프를 섬기던 유대인 출신의 무슬림이었던 이브라힘-이븐-야쿠브가 칼리프와 함께 중부 유럽을 여행한뒤 쓴 여행기에 처음으로 폴란드에 대한 언급이있습니다. 그는 프라하와 아마 크라쿠프로 추정되는 도시를 여행하면서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생활 습관이나 정치 상황등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 기록이 바로 폴란드에 대한 첫 역사 기록이기도 합니다. 이브라힘 이븐 야쿠브는 당시 폴란드의 통치자였던 미에슈코가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기도 합니다.


사실 이브라힘 이븐 야쿠브가 여행했던 시절 이미 폴란드는 이제 더 이상 “미지의 나라”로 남을수 없는 시절이었습니다. 특히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는 오토 1세 시기였기에 당연히 오토 1세의 동진으로 인해서 폴란드도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당시 지도자였던 “피아스투프”가문 출신의 미에슈코는 이웃의 기독교화 된 보헤미아의 공주와 결혼하면서 자신과 신하들 모두가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이런 압박에서 벗어난 것은 물론 이제 기독교 사회에 폴란드가 편입되는 계기가 됩니다.


Matejko_Christianization_of_Poland.jpg 폴란드의 기독교화, 19세기말


미에슈코 1세 이후 폴란드는 기독교 국가가 되었으며 미에슈코 1세는 강력한 군주이자 뛰어난 영향력을 가진 정치가였습니다만, 아직까지 폴란드는 왕국이 아니었습니다. 미에슈코 1세의 아들이었던 볼레스와프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폴란드를 하나로 묶는 마지막 연결고리를 만듭니다. 바로 폴란드를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신하국가가 아닌 독립적 왕국으로 만든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그는 특히 교회와의 관계를 중요시했으며, 교황은 이에 결국 폴란드를 왕국으로 승인하게 되었고 폴란드는 독립적 왕국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Koronacja_pierwszego_króla_(Koronacja_Chrobrego._Jan_Matejko).jpg 첫번째 왕의 대관, 19세기말


폴란드의 역사적 영토중 가장 오래된 지역은 처음에 슬라브인들이 정착했으며 현대 폴란드의 기초가 되는 지역이었던 Wielkopolska (대 폴란드) 지역과 현재 폴란드 남부의 Malopolska(소 폴란드) 지역이 있습니다. 첫 번째 지역은 호수와 인근의 숲이 우거진 지역이었으며, 두 번째 지역은 고산지대에 여러 산들과 언덕 그리고 계곡이 있는 지역입니다. 소폴란드 지역의 크라쿠프는 오래도록 폴란드 왕국의 수도 역할을 한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현재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가 있는 마조비아 지방은 사실 16세기까지 폴란드의 중요 영토는 아니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이곳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 척박한 지역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바르샤바가 중요해진 이유는 폴란드-리투아니아가 연방으로 묶이면서 두 지역의 수도였던 크라쿠프와 빌뉴스의 중간에 있던 곳이 바르샤바였고 그렇기에 바르샤바의 중요성이 커질수 있었습니다.


이 지역이 폴란드를 이루는 중심 지역이며 이 지역을 중심으로 외곽쪽에 여러 지역들이 있었습니다. 이 지역들은 폴란드의 영토가 되기도 했으며 또한 영토가 아니기도 한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포메른 지방(Pomorze)는 슬라브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폴란드와 어느정도 동질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독일에 더 많은 영향을 받은 지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부 도시는 형재 폴란드에 편입되었습니다.


프로이센 (Prusy) 지역은 역시 폴란드의 역사 영토중 하나였습니다. 이 지역은 오래도록 폴란드와 튜턴 기사단의 갈등에 중심지였고 오래도록 이 지역을 두고 폴란드 국왕과 튜턴 기사단은 갈등을 빚었습니다. 결국 승리한 쪽은 폴란드 국왕으로, 프로이센을 통치하는 공작은 폴란드 국왕의 봉신이 되었습니다만, 아이러니하게도 프로이센 공작령을 얻은 호엔촐레른 가문은 결국 프로이센 공작령과 자신의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령을 합쳐서 프로이센 왕국으로 만들었고 이 프로이센 왕국이 독일 통일의 중심이 되는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Podlachia 지역은 폴란드 동부 지역으로 폴란드와 폴란드 동부에 있는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와 맞닿은 경계 지역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오래도록 폴란드에 속해있었지만 결국 현재는 폴란드보다는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쪽에 속하게 되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Krainy-historyczne-Polski.png 폴란드의 역사적 영토 ©Netzach

사실 폴란드는 왕국이 된 뒤 매우 강성해졌으며 동부 유럽의 강자로 군림했었습니다. 그렇기에 폴란드를 구성했던 다양한 역사영토내에서 살았던 이들은 스스로를 폴란드 인으로 생각했을 것이며 그렇기에 폴란드 역사는 현재의 폴란드 지역보다 더 넓은 지역을 다뤄야할 것입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폴란드역사지도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Krainy-historyczne-Polski.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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