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아라 Sep 25. 2015

결혼 안 시켜주면 확 죽어버릴래요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 공주의 야반도주 사건!

https://youtu.be/x-4TSWg2h3w

O mio babbino caro, 안나 네트렙코, 이야기의 배경음악으로 적절한 노래입니다. 딸이 결혼안시켜주면 강에 확 빠져죽겠다고 아버질 협박하는 노래입니다.


시씨라는 애칭과 미모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엘리자베트 황후는 세명의 딸이 있었습니다. 그중 큰딸은 어려서 사망했으며 둘째 딸은 시어머니에게 뺏긴 후 거의 대면 대면했으며 막내딸은 독점해서 과한 애정을 쏟으면서 살았죠. 덕분에 아들인 루돌프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에 대한 애정 결핍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였습니다.

미모와 자유로움을 추구했기에 전설이 된 시씨지만 시씨도 보면 결점이 많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딸인 기젤라를 어린 나이에 결혼시킨 것이었죠. 스스로 어린 나이에 결혼한 것에 대해 엄청나게 불만을 품었으며 이에 대해서 많은 투덜거림을 남겼던 시씨 황후였지만 정작 자신의 딸은 필요에 의해서 열여섯 살의 나이로 시집가게 만들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엘리자베트 황후





기젤라의 남편은 바이에른 국왕의 손자이자 바이에른 국왕의 동생인 레오폴트 왕자였습니다. 사실 그는 원래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아말리와 혼담이 진행되고 있었죠. 하지만 시씨의 막냇동생인 막시밀리안 엠마누엘은 아말리를 보고 반했으며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황후가 개입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시씨는 동생을 위해 레오폴트 왕자에게 딸인 기젤라를 혼담 대상으로 소개하여줬다고 합니다. 누가 봐도 황제의 딸이 더 적합한 신부 후보였기에 레오폴트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으며, 황제 역시 딸에게 적당한 가톨릭 왕자들이 몇 명 없었기에 이 혼담에 찬성했다고 합니다.


기제라와 레오폴트, 약혼사진



비하인드 스토리가 어쨌든 만 16살의 기젤라와 만 27살의 레오폴트는 결혼했고, 기젤라는 어머니에 비하면 엄청나게 평온한 가정생활을 꾸려나갔습니다. 기젤라와 레오폴트 사이에는 모두 네 명의 아이가 태어납니다. 그중 첫째는 딸로 외할머니의 이름을 물려받아서 엘리자베트라는 이름을 가졌었었죠.

 그리고 결혼 안 시켜주면 확 죽어버리겠다고 이야기한 사람이 바로 이  엘리자베트였습니다.


레오폴트와 기젤라 그리고 둘의 네 아이들




바이에른 국왕의 증손녀이자, 바이에른 섭정의 손녀였으며, 바이에른 국왕의 조카인 엘리자베트는 아마도 사교계에 나 갔을 때 한 남자를 만났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는 오토 루드비히 필리프 지프레트 아우프 부텐하임 남작이었죠. 그의 할아버지는 바이에른 장군이자 그리스 장관으로 바이에른의 오토 왕자가 그리스 국왕이 될 때 따라갔던 바이에른 귀족 중 한 명이었습니다. 문제는 오토가 겨우 남작밖에 되지 않는 낮은 지위였을 뿐만 아니라 개신교도였다는 점이었습니다. 가톨릭을 믿었던 바이에른 왕가에서 개신교도와 결혼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죠. 


둘이 사랑에 빠졌지만 엘리자베트의 가족들인 바이에른 왕실 가족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힙니다. 특히 엘리자베트의 아버지인 레오폴트 왕자와 할아버지인 섭정 루이트폴트 왕자가 둘의 결혼을 극렬하게 반대했었죠. 둘은 결국 야반도주했고 1893년 11월 이탈리아에서 허락 없이 결혼해버립니다. 

바이에른 왕가에서는 둘의 결혼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길 거부했습니다. 오토는 결혼 후 장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둘은 절대 헤어질 수 없으며, 둘이 함께 죽거나 야반도주하는  수밖에 없었기에 야반도주를 택했다고 이야기하죠.


물론 야반도주해서 저런 남자와 결혼해버린 엘리자베트에 대해서 아버지인 레오폴트와 할아버지인 루이트폴트는 격노했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인 기젤라와 외할아버지인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엘리자베트의 편이 되어줬으며 이런 상황은 결국 엘리자베트와 오토의 결혼을 인정해주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하지만 황제도 외손녀가 이런 결혼을 한 것을 처음부터 기뻐한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황제는 야반도주한 외손녀에 대해서 걱정했으며 엘리자베트의 성격이 너무 강한 것 같다고 시씨 황후에게 편지를 썼을 정도였죠. 어쨌든 둘의 결혼을 인정받은 뒤 황제는 외손녀를 축복해줬으며 외손녀 부부를 위해 빈 인근의 성을 선물해줬습니다. 또 오토가 오스트리아 군에서 복무할 수 있게 해줬고 그의 지위를 "백작"으로 올려주기까지 했습니다.


부모 속 썩이면서 결혼한 엘리자베트는 매우 행복한 결혼생활로 부모와 외할아버지에게 보답했다고 합니다.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


매거진의 이전글 너랑 결혼 안해!....아니 할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