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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Sep 26. 2015

여자가 한을 품으면 무섭다

오스트리아-에스테의 마리아 레오폴디네, 팔츠와 바이에른의 선제후비

마리아 테레지아의 손녀이자 모데나 공작령의 상속녀를 어머니로 둔 오스트리아-에스테의 마리아 레오폴디네는 1795년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해야 했습니다. 겨우 만으로 열덟살도 되지 않은 레오폴디네의 남편감은 그녀보다 무려 52살이나 많은 팔츠와 바이에른의 선제후인 카를 테오도르였죠. 이 결혼은 그녀의 의지가 아니라 부모와 가문을 위한 결혼이기도 했습니다.


오스트리아-에스테의 마리아 레오폴디네



팔츠와 바이에른의 선제후인 카를 테오도르는 태어날 땐 두개의 선제후령을 상속받을 위치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겨우 팔츠-줄츠바흐 가문의 후계자로 그의 어머니는 프랑스의 고위 귀족 가문 출신일 정도였죠. 프랑스의 경우 독일과 귀족이나 왕족 지위 구성이 달랐는데 이런 식으로 독일의 작은 공국들의 영주들은 프랑스 고위 귀족들과 결혼해도 적당히 넘어가는 편이었죠. 하지만 팔츠 선제후에게 적자가 없으면서 그는 팔츠 선제후령을 물려받게 되었고, 역시나 후계자가 남아나지 않아서 결국 머나먼 친척 관계인 팔츠가문까지 넘어온 바이에른 선제후령까지 물려받는 행운을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행운에서도 그에게는 이 두 선제후령을 물려줄만한 적자가 없다는 것이 큰 고민이었죠. 그의 아내인 팔츠-줄츠바흐의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는 아들 한명만 낳았고 그 아들 역시 영아기를 넘기지 못했었습니다. 게다가 유력한 다른 계승자인 팔츠-츠바이브뤽켄의 크리스티안은 귀천상혼 해버렸죠. 결국 카를 테오도르가 늙어갈수록 바이에른 상속문제가 대두되는데 여기에 오스트리아와 작센 등이 개입하면서 정치적으로 좀 복잡한 문제가 됩니다.


카를 테오도르, 1780년대



1794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카를 테오도르의 후계자로는 팔츠-츠바이브뤽켄-비르켄펠트 출신의 형제들인 카를 아우구스트와 그의 동생인 막시밀리안 요제프가 유력해 보였습니다. 둘의 어머니는 카를 테오도르의 아내와 자매간으로, 이 자매는 줄츠바흐 가문 출신이었으며 팔츠 선제후의 외손녀이기도 했었습니다. 또 당시 귀천상혼 한 가문을 제외하고, 비텔스바흐 가문에서 유일하게 남은 후손 역시 이 둘 뿐이었기에  카를 테오도르의 후계자로 이들이 잇는 것이 합당해 보였죠.


하지만 이 문제는 정치적으로 복잡하게 돌아갔는데 먼저 두개의 선제후령을 한 사람이 물려받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됩니다. 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황제 요제프 2세는 카를 테오도르에게 바이에른 선제후령을 다른 영지와 맞바꾸자고 했고 카를 테오도르는 매우 긍정적으로 이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바이에른 사람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게 되죠. 선대 바이에른 선제후비는 물론이고 카를 테오도르의 후계자가 될 팔츠-츠바이브뤽켄 형제들도 이에 반대합니다. 반대 측 인물들은 주로 작센의 지원을 받았으며 결국 바이에른 계승 전쟁을 통해서 카를 테오도르가 바이에른 역시 계승하는 것에 확인을 받게 됩니다.


팔츠-줄츠바흐의 엘리자베트 아우구스테, 카를 테오도르의 첫번째아내



그러나 1794년 선제후비가 사망하게 되면서 상황은 좀 바뀝니다. 거의 70살이었던 선제후는 재혼해서 아들을 얻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고 이를 실천하죠. 그는 오스트리아 여대공들에 관심이 많았는데 오스트리아 여대공들이 아이들을 많이 낳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이런 상황은 결국 52살이나 어린 오스트리아-데스테의 마리아 레오폴디네가 그의 신부로 선택되게 만들었죠.


마리아 레오폴디네의 아버지인 페르디난트 대공은 이 결혼을 적극 지지합니다. 그는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와 마찬가지로 결혼을 가문에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마리아 레오폴디네의  어머니인 마리아 베아트리체는 딸이 나이 차가 너무 심한 남자와 결혼하는 것에 대해서 좀 더 걱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두개 선제후령의 선제후비였으며 매우 부유하고 높은 신분으로 살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결국 딸의 결혼을 찬성합니다. 마리아 레오폴디네는 당시 많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여대공처럼 가문을 위해 팔츠와 바이에른의 선제후와 결혼합니다.


마리아 레오폴디네


하지만 후계자를 얻기 위한 이 결혼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마리아 레오폴디네는 처음에는 결혼에 순응하는듯했지만 그녀는 할아버지뻘인 남편에게서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했고 결국 남편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서서히 다른 남자들과 연애질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상황은 후계자를 낳아야 했던 그녀의 의무를 무시하는 것이었고, 이에 대해 오스트리아측에서는 마리아 레오폴디네를 비난했었던듯합니다. 그렇게 되자 마리아 레오폴디네는 가문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녀는 스스로 원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었는데 억지로 결혼시켜놓고서는 가문에서 그녀를 비난했기 때문이었죠.


결국 마리아 레오폴디네는 오스트리아 쪽에서 반대하던 팔츠-츠바이브뤽켄 가문을 공공연하게 지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선제후가 쓰러지자 마리아 레오폴디네는 서둘러 후계자였던 팔츠-츠바이브뤽켄의 막시밀리안요제프에게 연락을 취해서 그가 계승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줬죠. 


결국 막시밀리안은 비텔스바흐 가문의 모든 영지를 상속받은 인물이 되었고 후에 바이에른 왕국의 초대국왕인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가 됩니다.


바이에른의 선제후 막시밀리안 4세 , 바이에른의 국왕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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