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아라 Sep 27. 2015

탈출에는 여장이 최고!

보니 프린스 찰리의 스코틀랜드 탈출기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 영 프리텐더, 보니 프린스 찰리



보니 프린스 찰리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제임스2세의 손자인 영 프리텐더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는 1745년 스코틀랜드에 상륙했고 충성스러운 그의 지지자들과 함께 잉글랜드와 잉글랜드의 통치자였던 조지 2세에 대항하는 일련의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 사건은 스코틀랜드 내에서 마지막 스튜어트 왕가 지지 활동이었으며 결국 컬로든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스코틀랜드를 발판으로 다시 왕국을 찾겠다는 영 프리텐더의 희망을 사라지게 됩니다.


컬로든 전투



전투에서 패배한 보니 프린스 찰리는 이제 스코틀랜드에 있으면 안됐습니다. 그에게는 현상금이 삼만 파운드가 걸렸으며 이런 엄청난 현상금을 노리는 인물들이 많았기 때문이었죠. 현상금을 노리는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랐지만 적어도 스코틀랜드 내에서 보니 프린스 찰리를 밀고하는 인물들은 없었다고 합니다.


영 프리텐더는 고생 끝에 북쪽 끝의 섬인 벤베큘라 섬에 도착합니다. 그는 이곳에서 프랑스 프리깃을 기다리기 좋은 스카이 섬으로 가려했죠. 하지만 이곳은 이미 잉글랜드 측에 장악된 섬이었기에 벤베큘라 섬을 떠날 방법을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한 여성이 등장하죠. 24살의 플로라 맥도널드라는 여성이었습니다.


플로라 맥도널드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전형적인 스코틀랜드인이었습니다. 그녀가 정치에 대해서 어떤 신념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스코틀랜드인처럼 보니 프린스 찰리에게 매우 안타까운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듯합니다. 위험한 상황이었음에도 플로라는 영 프리텐더를 도와주던 캡틴 오닐의 설득으로 결국 그를 돕기로 마음먹게 되죠.


플로라 맥도널드의 양아버지는 지역 군사책임자였고 그녀는 양아버지에게 스카이 섬으로 갈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합니다. 그녀의 양아버지는 플로라 맥도널드와 플로라를 시중 들어줄  "베티 버크"와 여섯 명의 선원이 스카이 섬으로 갈 수 있도록 승낙하였죠. 플로라와 함께 간 베티 버크라는 인물이 바로 보니 프린스 찰리로 그는 플로라의 하녀로 변장한 것이었고, 여섯 선원들 역시 영 프리텐더를 지지하고 함께하던 인물들이었습니다.


플로라 맥도날드



플로라의 도움으로 보니 프린스 찰리를 무사히 스카이 섬에 도착했으며 서둘러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서 결국 프랑스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플로라는 영 프리텐더가 안전한 곳으로 간 뒤에 붙잡히게 됩니다. 그녀는 당시 스코틀랜드에 머물던 잉글랜드 총사령관이자 컬로든 전투 이후 스코틀랜드에서 "도살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컴벌랜드 공작 윌리엄의 심문을 받았게 되죠.  플로라는 컴벌랜드 공작에게 그녀는 단지 불행에 빠진 이를 도왔을 뿐이라고 이야기했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플로라 맥도널드는 영프리텐더의 도주를 도운 죄로 런던탑에 잠시 갇혔지만, 곧 연금상태로 바뀌고 1747년에 석방됩니다.


플로라 맥도널드의 이야기는 매우 드라마틱한 이야기입니다. 곤경에 빠진 왕자님을 돕는 아름다운 여성의 이야기나 도망치기 위해 여장을 하는 등의 이야기는 어느 시대나 흥미를 가질만한 이야기일이죠. 이런 상황은 스코틀랜드에서의 스튜어트 왕가에 대한 동정심을 더욱더 자극하는 이야기가 되었을듯합니다.


보니 프린스 찰리를 만나 도움을 약속하는 플로라 맥도날드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매거진의 이전글 여자가 한을 품으면 무섭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