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에 처음 왔을 때가 십년 전이었나, 그보다 더 전이었나.. 정확한 기억은 안나지만, 그 당시 사귀던 남자가 누구인지는 기억하고 있으니 따져보면 알 수도 있겠지만, 귀찮으니까 언제인지 굳이 따지지는 않기로 하자. 친구랑 여행왔다가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A thousand years> 가 나왔었다. 친구랑 나는 오, 트와일라잇 노래네, 하고 반가워하며 잠깐 감상에 젖었더랬지. 그런데 지금, 점심으로 로컬 햄버거 먹는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다시 그 노래가 나오고 있다. 나는 그 오래전, 친구와 싱가폴에 처음 왔던 그 때로 훅- 가버렸다. 그 뒤로 친구랑 나는 이 노래가 나오면, '우리 싱가폴에서 이 노래 들었잖아' 했더랬다. 음악이란 거, 노래라는 거 참 .. 대단한 것 같아.
이래서 내가 요즘에는 노래를 잘 안들으려고 한다. 노래를 들으면 하던걸 멈추고 노래에 끌려들어가버려..
남들은 외국에 어학연수 가면 하루종일 텔레비젼 틀어놓고, 그러고나면 귀가 트인다고 했다. 어느 순간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겠더라고..나는, 나도 그렇게 될 줄 알았다. 사실 열심히 들은 건 아니고, 밥 먹을 때마다 한국 유튭을 보긴 했지만, 그래도 6개월인데 귀 뻥 뚫려야 되는거 아니냐?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뉴스 틀어두고, 오 트럼프가 또 뭘 했나보네, 하고 트럼프가 뭐 어쨌다는건 알겠는데, 뭘 어쨌다는 건지는 모르겠어. 그래서 자막을 보려고 하면 아는 단어 두 개에 나머지 다 모르는 단어라 해석이 안된다. 나는 6개월 있어봤자, 안들리고 안읽혀요...
결국은 단어 싸움이구나, 라고 여기에 와서야 깨달았다.
물론, 단어를 많이 아는게 중요하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아니, 제대로 알고 있는건 아니었다. '아 그렇구나' 하고 듣기만 했지, 그렇게 내가 진심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따라한 건 아니었으니까. '단어를 많이 아는게 영어를 잘하는데 중요하다'를 들었으되, 그것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나에겐 그것이 중요하다는 자각이 없었다. 그런데, 여기 와서 수업을 받다보니, 그리고 레벨이 올라가다보니, 이제야 확실히 스스로 깨닫게 되더라. 결국, 단어였다. 단어를 많이 알아야 하는거였어. 단어를 알아야 듣기도 들리고 단어를 알아야 읽기도 읽어지는거다. 단어를 모르면, 리스닝이 될 리가 없었다. 어제만해도 리스닝에 '풀리 사이드' 라는게 들렸는데, 답으로 적어야 했단 말이지? 풀리 사이드? 우리가 blind 한 사람에 대해 비디오를 보았으니, fully side 는 그러면 눈이 보이는 사람을 말하는건가? 하면서 긴가민가 답을 적었다. 그런데, 답은 fully side 가 아니라
fully-sighted
였다. 시각에 문제가 없는/정상 시력을 가진 이란 뜻이다. 모르니까, 안들린다. 몰라서 안들렸다가, 이제 알아서 들리게 된 대표적인 단어는 atmosphere 가 있다. 생긴 것도 희한하게 생긴 단어인데, 이 단어는 '분위기', '대기' 라는 뜻이다. 여기 와서 영어 공부를 시작하면서 알게된 단어인데, 이 단어를 알고나니, 나중에 리스닝에서 이 단어를 말할 때 알아듣겠더라.
아마도 브런치에는 썼었던 것 같은데, 읽기에도 그건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prevent
나는 이 단어를 몰랐다. test 에서 지문을 다 읽고 이해했는데, 정말 지문 다 이해했단 말이다, 백프로 다 이해했다고 자신할 수 있었는데, 그런데 문제에 'prevent' 가 나오니, 내가 답을 못고르겠는거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 나는 답을 적고나서 선생님이 시험지를 걷어간 뒤에 얼른 핸드폰을 꺼내 이 단어의 뜻을 찾아보았다. '예방하다' 였다. 바로 그 자리에서, 아 내 답은 틀렸구나 를 알게 됐다. 내가 저 단어의 뜻만 알았어도 풀 수 있는 문제였는데, 저 단어의 뜻을 몰라서 풀지 못했다.
이건 그 뒤에도 계속 적용됐다. 지문을 다 이해했다 싶어도 문제에서 모르는 단어가 나와버리면 답을 제대로 해낼 수가 없는거다. 단어 하나가 그렇게 중요할까 싶지만, 단어 하나가 답을 고르냐 고르지 못하느냐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때가 많다. 그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문맥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결국 단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어를 알면 알수록 읽기도 듣기도 더 잘되는 거야. 이걸 남들이 말할 때는 새겨듣지 않다가, 이렇게, 이 나이가 되서야, 이제서야, 뒤늦게 깨닫는다. 나의 치명적 단점. 지가 겪어봐야 아는 거... 이게 나를 아주 잡아매네 그냥 아주.
humour(humor) 는 내가 발음을 잘못 알고 있는 단어였다. Steve(listening teacher) 가 자꾸 '휴머' 라고 해서, 이게 '유머' 로도 발음되고 '휴머'로도 발음되는건가 싶어 사전을 찾아봤더니, 그냥 '휴머' 였던 거다. 유머란 발음은 처음부터 없었다. 하.. 나는 얼마나 많은걸 몰랐으며 또 잘못 알고 있었나. 그렇다고 보면 내가 영어 실력이 늘었는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일정 부분 더 알게 되거나 고치게 되기는 한 것 같다. 사실 외국에서 6개월간 학비와 생활비 들여가며 고작 이만큼 달라진 걸로 만족해야 하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오늘 내 옆자리 학생은(이제 자리가 거의 고정이라 항상 내 옆에 앉는 애가 앉는다), 수업을 전혀 듣지 않고 온라인 숙제를 미친듯이 하다가 폰으로 게임을 하다가 했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수업에 집중 좀 해라... 어떤 학생들은 한시간씩 지각하고 또 어떤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한참 자리를 비우기도 한다. 얘들아, 니네 부모님이 이 돈 버느라 고생했을거야.. 지금 이 순간을 돌이킬 수가 없어, 되돌릴 수가 없다고.. 수업에 집중하라, 학생들이여..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말한다고 뭐 달라지나. 내가 어릴 때 그리고 젊었을 때 들었던 말들, 내가 그 말들을 듣고 잘 실천하는 학생이었다면 내가 지금 여기에 와서 이러고 있지도 않겠지. 다, 자기가 깨달아야 된다.. 그것을 남의 말로 깨닫든 자기 스스로 경험으로 깨닫든, 다 자기가 깨달아야 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단어다. 단어를 많이 알아야 한다. 단어를 알아야 듣기가 되고 단어를 알아야 읽기가 되고 단어를 알아야 쓰기가 되고 단어를 알아야 말하기가 된다. 결국, 단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