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락방 Sep 27. 2020

《마스 룸》

그것을 선택이라 불러도 되는 것일까

《마스 룸》, 레이철 쿠시너 지음, 문학동네, 2020


몇 해 전 한 여자배우가 토크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첫 결혼을 후회한다는 발언을 했었다. 그녀는 십 대 시절 유명한 남자 가수를 만나  스무 살에 결혼을 했었고 이 일은 나중에 사람들에게 알려져 한창 시끄러웠다. 게다가 그녀는 후회한다는 발언을 했기 때문에 남자  가수들의 여전한 팬들로부터도 엄청난 욕을 먹었다. 왜 스스로 한 선택이 만든 결과로 후회를 얘기하며 그 가수를 욕보이냐는  것이었다. 나 역시 십 대 시절 그 가수의 팬이었고 만나고 싶다, 친해지고 싶다는 당연한 사춘기적 열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가수에 대해 잊게 됐고, 사실 그다지 팬심이란 것을 갖추지 못한 나로서는, 그 가수의 사생활 역시도 관심이 없었다.  여자배우가 나왔던 토크 프로그램도 보지 않아 정확한 워딩을 알 순 없지만, 나는 그녀가 어린 시절에 했던 선택이 자신에게 나쁘게  다가왔다는 걸 지금은 알고, 또 그에 대해 후회하는 것 역시도 당연하다 생각한다. 지금 그 당시 기사를 검색해보니 그 여자 배우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한 살이라도 더 먹었다면 그런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말도 한 모양인데, 나는 이것도 역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사랑에 빠진 게 열여섯 살이었고 상대는 인기 있는 가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에게 '네가 한  선택인데 말 함부로 하지 마, 네가 한 선택에 책임져'라고 돌려주었다. 나는 그 당시에 대중들의 이 반응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친구를  만난 술자리에서 '어떻게 십 대의 여자가 한 선택에 대해 사람들이 그렇게나 잔인할 수 있지?' 놀랐더랬다.



'로미  홀'은 종신형으로 감옥에 들어와 살고 있다. 그녀가 감옥에 들어오기 전, '사회인'이었을 때 그녀의 직업은 '스트립 댄서'였고  그녀는 아들 하나를 낳아 키우고 있었다. 그녀가 스트립 댄서로 일하는 '마스 룸'에서 그녀에게 '정을 줘버린' 남자 '커트'가  그녀를 스토킹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손님으로 그녀의 춤을 보는 걸 즐겼으나 그 관심은 점점 넘쳐서 그녀를 미행하고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를 무시하고 나타나지 말라고 소리도 쳐보지만 다 소용없다. 그녀는 그가 여행 간 틈을 타 아예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간다. 이제 그를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집에 귀가해보니 현관에 그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지쳤고  그녀는 질렸다. 그녀는 아이를 집 안에 들여보낸 후 다시 나와 그 스토커를 죽여버린다. 그렇게 그녀는 종신형을 받았다.



나는  지금 내 삶의 모습이 그동안 나의 선택들로 형성된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믿는다. 다른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서, 이것 아니면 저것, 여기 아니면 거기의 선택에서 무언가를 분명 선택한 순간이 있었고, 그것은 내 생각과 내  결정이었으며, 그것들은 모여서 지금의 나와 지금의 나의 삶의 방식을 이루어왔다. 지금의 내 모습이 과거의 나의 선택들로 이루어진  거라면 앞으로의 내 모습 역시 지금부터 선택할 내 결정이 형성할 것이다.



로미  홀은 스토커를 죽이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녀가 스트립 댄서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자신을 따라다니는 그 스토커를 만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스트립 댄서로 돈을 버는 것을 선택했다. 그녀가 스트립 댄서가 되기로 했던 것은 그렇다면 그녀의  온전하고도 순수한 선택이었을까? 그녀가 스트립 댄서가 되기 전의 생활은 어땠을까? 어떤 시간들이 그녀를 스트립댄서가 되는 삶으로  데려온 것일까. 그녀의 어린 시절, 더 어린 십 대에 그녀에게는 가난한 동네가 있었고 마약이 가득한 동네가 있었다. 그녀가 여기에  이른 건 정말 그녀의 온전하고도 순수한 선택들 때문일까. 그녀가 부잣집 딸로 태어났어도 그녀는 스토커를 죽이고 종신형을 받게  되었을까? 그녀는 자신을 괴롭히는 스토커를 죽였고 변호사를 선임하고 싶었지만 변호사를 선임할 돈이 없었다. 그녀에게는 국선 변호사가  할당되었는데, 그에게는 그녀를 지킬 의지도 딱히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고 지독하게 괴롭히던 스토커를  죽였다'는 사실을 배심원들에게 전할 수 없었고, 배심원들은 그녀가 '남자를 죽였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다. 그녀에게는 종신형이  내려진다.




그런 그녀에게는 어린 아들이 있었다. 다행히  그녀에게는 어머니도 있었다.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보살펴주기로 했으니, 이것은 그녀가 가진 유일한 위안이요 행운이었다. 그러나  감옥에서 보내는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그녀는 교도관으로부터 그녀의 어머니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제 일곱 살이 된  아이에게 돌보아줄 어른이 아무도 없는 것이다. 이건 감옥 안에 있는 그녀를 미치게 만드는 소식이다. 그녀는 아들의 소식을 알고  싶다. 아들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누가 돌보아주고 있는지 그걸 알고 싶다. 아직 일곱 살 아들의 소식을 알려달라고 그녀는 울부짖지만  교도관들은 그런 그녀에게 그러게, 잘못을 저지르지 말고 살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대꾸할 뿐이다.



"제 아들이에요." 내가 말했다. "이제 겨우 일곱 살이에요.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제가 가봐야겠어요."

"네가 가봐야겠다고? 넌 두 번의 부정기형을 선고받았다, 홀.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

"내 아들이라고요. 걔가 병원에 있는데, 내가 ……"

"홀, 누군가의 어미 노릇을 하고 싶으면 사고 치기 전에 그 생각부터 했어야지." (p.205)




존스가 말했다. "넌 그 애의 보호자가 아니다, 홀."

"그럼 그 보호자가 누군데요? 내 아이 상태가 어떤지 알아야겠어요."

존스가 수감실에서 멀어져 갔다. 그녀의 발걸음을 되돌릴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목소리의 톤을 가다듬었다.

"제발요, 존스 교위님. 제발."

그렇게 되고 있었다. 나는 이 사디스트에게 어린 소녀의 목소리로 애원하고 있었다.

존스가 멈춰 서고는 내게 예의를 갖춰 대하는 척 굴었다.

"홀, 힘든 일이라는 것 안다. 하지만 지금 네가 처한 상황은 백 퍼센트 네 선택과 행동의 결과야. 책임감 있는 부모가 되고 싶었으면 다른 선택을 했어야지."

"저도 알아요." (p.251)



그  누구보다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고 있는 건 홀 자신일 것이다. 그때 스토커를 죽이지 않았다면, 그녀는 지금 아들과 떨어져 살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의 보호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로 저 바깥에 엄마 없는 곳에서 아이의 삶을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이런  일이 펼쳐질 것을 스토커 앞에서 미리 내다볼 수 있었다면, 그녀는 스토커를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스토커를 죽이지 않았을  때의 선택이라고 해서 그녀에게 행복한 시간을 주는 건 아니었다. 그녀가 스토커를 죽이지 않았다면, 그녀는 어디로 피해도 그를  마주치는 일을 계속 겪어야 했을 것이다. 피하고 도망치고 이름을 바꾸고 숨는 일들의 반복이 그녀에게 남겨졌을 것이다. 그녀가  선택했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러나 그녀가 그것 말고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해서 딱히 행복한 삶이 펼쳐지는 건 아니었다. 하나의  비극과 또 다른 하나의 비극 사이에서 선택한 것은 과연 존스 교위의 말처럼 그녀의 '백 퍼센트 선택과 행동'인 것일까. 그녀에게  스토커가 없었다면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스토커가 그녀를 쫓아다니지 않았다면, 그녀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설사 그를 죽였어도 그녀를 변호해줄 좋은 변호사를 선임할 돈이 있었다면 역시 다른 결과를 손에 들었을 것이다. 이런 로미  홀에게 교위를 비롯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건 네 선택이었잖아, 그러니 결과에 책임져'라고 말하는 것은 온당한가?




이  책은 감옥에 있는 로미 홀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그녀가 있는 감옥에는 이렇게 저마다의 선택으로 감옥에 오게 된 여자들이 가득하다.  사형수도 있고 곧 풀려나갈-그러나 다시 잡혀 들어올게 뻔한- 사람들이 가득하다. 어떤 죄를 저질렀든, 그 순간 그 행동을  '선택'한 여자들이 지금 여기에 갇혀서 세상과 소통하지 못한 채로 뜨개질을 하고 나무를 다듬고 싸우고 약을 한다. 놀랍게도 이들  모두는 사회에 있었을 때도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고 또 그들이 살아온 어린 시절도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가난, 마약, 알코올,  양부모, 폭행. 그런 환경 속에서 살면서 순간순간 내린 선택들은, 이 사람들의 백 퍼센트 선택이며 그렇기에 지금은 그들이 선택한  결과이므로 합당한가?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레이철 모랜'의 《페이드 포》를  수시로 떠올렸다. 우리는 그때 우리가 선택했다고 했지만, 그것은 선택이었을까. 우리의 선택이 우리의 의지라 한들 애초에 주어지는  선택지가 달랐다면 다른 삶이 펼쳐졌을 텐데, 주어지는 선택지가 다른 것은 왜 고려되지 않는가.



성매매 집결지에 서 있도록 강요되게끔 나 자신을 최초로 허락했을 때, 이상하고 역설적이게도 과감한 결단을 내린 듯한 기분이  샘솟았다. 가출 이후 처음으로 삶의 주도권을 쥐었다고 느꼈듯이 말이다. 몇 년 후 과거를 돌아보고 깊이 들여다본 뒤 그 감정이  주도권 상실에 대한 반작용이었음을 자각하고는 얼마나 어리석게 느꼈는지 모른다.
성매매 연구를 수행한 연구자들 사이에서  성매매는 자라난 가정에서 독립하는 일반적인 나이 혹은 권장되는 나이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독립한 10대 여성들이 흔히 진입하게  되는 삶의 국면으로 널리 인식된다. 지금에야 알게 되었다. 정말 알아야 할 때는 몰랐다.- 레이첼 모랜,《페이드 포》, P96




사회적으로  더 권력 있는 남성들에 의해 착취당하는 현실은 줄곧 수그러들지 않았고, 도망칠 수 없었기에 우리에게 실질적 혜택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착취를 경제적인 이유로 '선택했다'라고 표현하는 일이었다. 성매매를 '성적 자기 결정권'으로 표현하려는 시도가  뒷받침될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성적인 이유가 아닌 경제적인 이유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성적인 요소는 즐길 수 없었고 견뎌야  했는데 우리가 진정으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더라면 업주에게는 빈 업소가, 성구매자들에겐 빈 필름이 남았을  테다. -레이첼 모랜,《페이드 포》, p.127



스토커를  때려죽이는 여자가 나온다는 것 정도만 알고 봐서 그러나 그녀가 어떻게 자유로워지는가를 표현해줄 줄 알았다. 오랜만에  속 시원해지는 책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읽었는데, 이 책에는 자신의 선택으로 감옥에 오게 된 수많은 인생이 담겨있었다.


1번과  2번 중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을 때, 그것은 그렇다면 우리의 순수한 의지이며 선택인가. 1번부터 5번까지의 선택지가 있는  사람도 있고, 애초에 7번부터 100번까지의 선택지를 받아 든 사람도 있다. 주어지는 선택지가 다른데도 결국 절망에 놓여있는  사람에게 그것은 네 선택이잖아,라고 일갈할 수 있을까. 앞으로 로미 홀의 어린 아들이 받아 들게 될 선택지는 어떤 것일까.


절망은 이런 식으로 반복된다. 내가 받아 든 선택지에서 선택하는 것으로.

작가의 이전글 《포르노랜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