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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락방 Sep 29. 2020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이해하기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로빈 스턴 지음, 알에이치코리아 2018

가스라이팅gaslghting은  쉽게 말해 정서적으로 누군가를 조정하려는 행위다. 그리고 가스라이팅에는 항상 두 사람이 존재한다. 혼란과 의심의 씨앗을 뿌리는  가해자와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 자신의 지각력을 기꺼이 의심하는 피해자다. 가해자들은 상대방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히 조작하여 그  사람이 자신의 현실감과 판단력을 의심하게 만든다. 가해자는 남성 또는 여성, 배우자 또는 연인, 상사 또는 동료, 부모 또는  형제자매일 수 있다. 한편 피해자는 자신의 행동과 외부의 자극을 사실과 다르게 기억하거나 자신이 오해 또는 오인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로 인해 피해자는 스스로를 믿지 못해 취약하고 혼란스러운 상태가 된다. (p,10)



가스라이팅의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누구나 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주로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힘이  세서, 나는 그로부터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그런 마음들이 나로 하여금 상대의 말에 의존하게 만들며 동시에 나 자신을  의심하게 만든다. 데이트 폭력에 있어서 많은 경우, 상대가 나를 사랑한다면서 나의 행동을 제약하고 통제하며 나를 고립시키면서  발생한다. 가스라이팅은 그런 데이트 폭력으로 이어지는 수단이 된다.



내가 나와  너무나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됐을 때, 처음에 그 혼란스러움에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가 너무 좋고, 내가 그를 좋아하는  만큼 그가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내 안에 너무 커서, 나는 자꾸만 그에게 휩쓸려 가는 것 같았다. 내가 너무 많이  변하고 있는 거 아닌가, 중심을 잃으면 어쩌지, 내가 나를 잃으면 어쩌지, 그 사람이 너무 좋지만 내가 나를 잃고 싶지는 않은데,  그렇다면 나는, 이토록이나 나를 휘어잡고 있는 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 게 나를 위한 게 아닐까, 그게 내가 편한 게  아닐까? 그와 연애를 시작하면서 처음엔 기쁨과 혼란이 동시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는 나를 잃지 않았고 중심을 놓지도 않았다. 나는 그렇게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아니오'를 말했고, 나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가스라이팅의 덫에 빠지지 않는 방법을 내가 이미 다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기 쓰기

-명상하기

-동적인 명상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

-친구나 가족과 지내기 (p.128)



위의  방법들은 너무나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걸로 보이지만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이 책의 저자 '로빈  스턴'은 각각의 방법이 왜 필요한지 설명도 달아놨는데, 이 모든 것들의 가장 주요한 특징은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애인이나 배우자의 경우 나와 친밀도가 높고, 그렇다면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아주  오래일 수 있다. 상대가 가스라이팅의 가해자라면, 나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격리시키려고 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내가  가스라이팅의 피해자가 되었을 경우, 그 관계 속에서 나에 대해 객관성을 가지고 나를 들여다보기는 쉽지 않다. 내가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상대의 장점만을 기억하고 떠올리려고 하면서, 그러나 '이건 근데 좀 이상했는데'라는 부정적 느낌이 들었다면, '로빈  스턴'은 그것을 무시하지 말라고 한다. 상대에 대한 사랑으로 그것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종종 생기는데, 그것에 대해 곰곰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


그럴 때 위에 적은 방법들은 효과를 가져온다.


나는  나를 잃지 않았고, 상대와 동등한 입장에서 사랑하고 신뢰하는 관계를 만들 수 있었는데, 내가 저 방법을 모두 다 하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상대를 정말이지 뜨겁게 사랑해서, 그 상대가 나에게 미치는 힘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매일 일기를  썼고, 매일 나에게 물었다. '이건 괜찮은 건가', '이건 무엇을 뜻하는 건가' 끊임없이 물었다. 동적인 명상은 신체적 건강을  위한 요가나 운동을 의미하는데, 그 운동을 하는 동안에는 내가 나에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로빈 스턴은 권하고 있다. 나는 그  사랑에 풍덩 빠졌을 당시에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고, 또 아주 많이 나의 다정한 친구와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보내며  에너지를 받았다. 이 모든 것들이 나로 하여금 건강한 연애, 건강한 사랑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는 상대가 가스라이팅의 가해자가 될 생각이 없었던 것도 크게 기여한다. 가스라이팅의 가해자는 상대를 통제하고자 하고,  자신이 상대에게 절대적 위치를 갖기를 원하는데, 나의 상대는 내게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는 나에게 힘이 센 사람이었으므로 그가  나를 통제하고자 했다면 내가 어떻게 됐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나의 친구 B는  엄마랑 둘이 살고 있는데, 어느 날 A로부터 '나이가 몇인데 아직까지 엄마랑 사냐, 독립해야지'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B는 독립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그에게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가 내게 이 말을 해주었을 때 듣자마자 내게  들었던 생각은,


1. A는 현재 B에게 매우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다

2. 그러나 좋은 관계로 유지될 순 없을 것이다, 그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다, 좋지 않다


였다.  내가 알고 있는 그동안의 B는 독립하지 못한 게 아니었는데, 그의 삶이 그런 게 아니었는데, 그런 말을 듣고 그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게 싫었다. 이것은 좋지 못하다,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B와 A가 어떤 사이인지 알지 못해 그 당시의 생각을 그에게  말하진 않았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야 그 둘이 연인이 되고자 시작하는 관계라는 걸 알게 됐고, 그러나 내가 그걸 알게 된 시점에 이미 그들은 더 이상 만나지 않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특정한  사람과의 만남이 당신 자신과 당신에게 중요한 것들을 하찮게 만든다고 느낀다면, 그 느낌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 관계를 끝내라고  말하고 싶다. 그 관계가 표면적으로는 좋더라도 스스로 불안해지고 비판적이 되며 까다로워진다면 그것이 문제가 된다. (p.362)




이  책은 서문부터 좋은데 너무 아프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가스라이팅의 가해자가 될 수도 있었다는 끔찍한 생각이 들어 오늘 아침  지하철 안에서는 너무 아팠다. 언젠가 연인이 내게  '당신을 실망시킨 게 가장 속상해'라고 말했는데, 그때 내가 내 화에  갇혀있어서, 따뜻한 말을 해주지 못했던 게 떠올랐다. 만약 내가 그때 내 화를 내는 대신, '이 일로 당신에 대한 애정이  사라지진 않아, 그렇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마'라고 말했다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래 봤자 지금과 같은 결과였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의 그 말이 떠올라 너무 괴로웠다. 나를 실망시킨 것 같아 속상하다는 그에게, 내가 뭘 한 걸까. 물론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친밀한 관계의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게 반드시 가스라이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동등한  관계에서의 대화와 다툼이 될 수도 있고, 결국 긍정적 결과를 갖고 오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내게 인정받고 싶었던,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그 마음이 생각나, 책을 읽는 내내 너무 아팠다.



로빈  스턴은 이 책에서 가스라이팅의 세 가지 유형에 대해 말한다. 난폭한 유형, 매력적인 유형, 선량한 유형. 짐작하다시피 난폭한 유형의  경우에는 상대가 폭력을 인지할 수 있지만, 매력적이거나 선량한 유형의 경우에는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다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런데 나한테 이렇게 말한다면... 내가 이상한 건가?'로 이어지게 만들어 버리니까. 그리고  가스라이팅의 단계도 1,2,3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시도해봐야 할 것들도 얘기해준다. 그러나  언쟁을 피하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방법은, 이미 가스라이팅의 관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쉽지 않다. 가스라이팅을 인지한  사람이라도 이대로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게다가 책에서 난폭한 유형이라고 나온 것도, 실제 사례를 가져온 것이긴  하지만, 현재 일어나는 일들에 비해서 좀 약한 게 아닌가 싶다.



가스라이팅을  차단하고 해방되면서, 상대에게 같이 관계를 개선해보자고 말하면서 상대와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 혹은 그 괴로운 관계를 끊어낼  것인지에 대해 결정해야 한다. 설사 '정말 끊어내는 게 아니'라고 해도 끊어낼 각오로 그 관계에 임하는 것이 가스라이팅에서 멀어질  수 있는 방법이다. 이 친밀한 관계, 이렇게 되기 전에 분명 달콤했던 관계가 나의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겠지만, 이만큼 나를  사랑해줄 사람을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겠지만, 그러나 우리의 미래는 알 수 없다면서 관계를 끊어내는 것에 겁내지 말라고  한다. 이런 결론은 가스라이팅의 피해자에게도 좋은 조언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큰 힘이 될 것 같다.



  

당신이 불행한 것은 현재에서다. 미래는 항상 신비와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 현실에 머물러라. 그리고 미래가 나머지를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둬라. (p.354)



이  책을 읽은 후에 바로 읽으려고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영원히 사랑해]를 사두었는데 이 책이 내 생각과 달리 나를 너무 아프게  해서 차마 연달아 읽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나쁜 감정이 아닌데, 그런데 상대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인정받고  싶어서 그 나쁜 관계가 시작되기도 한다니, 비극이잖아.


아,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난폭한 유형의 가해자들이 그렇게나 고함을 치고 소리를 질러대는데, 너무 싫다. 고함치지 마, 소리 지르지 마! 너무 싫어!! 그거 하지 마!!!



  

다행히도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 쉽지는 않지만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자신이 이미 좋은 사람이고 유능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므로 상대방의 인정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이해하는 일이다. 물론 이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하지만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훌륭한 사람이라는 자아 정체감을 가질 때, 우리는 자유를 향한 첫발을 내딛게 된다.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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