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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락방 Oct 04. 2020

《어느새 운동할 나이가 되었네요》

내 몸에 집중하기

《어느새 운동할 나이가 되었네요》, 가쿠다 미쓰요 지음, 인디고, 2018

몸이 지치고 피곤했을 때 요가를 가 수업을 들었더니, 마치고 나서 개운해진 적이 있었다. 종종 '스트레스를 운동으로 푼다'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나는 아직 그 경지는 아니지만, 그게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어떤 지치고 피곤한 날에는 운동을 하는데 동작도 영 엉망이고 더 힘들고 끝나고 나서 더 지쳤던 적도 있다. 여동생은 그런 내게 '너무 피곤할 때는 운동하는 게 오히려 나빠, 그때는 쉬는 게 훨씬 좋아'라고 했다. 그 뒤로는 내가 내 몸을 더 잘 살피게 됐다. 이 정도의 피곤에는 집에 가서 쉬자, 혹은 이 정도의 피곤에는 운동을 가자. 아직 백 프로의 정확도를 가진 건 아니지만, 엊그제에도 지치고 자꾸 잠이 쏟아져 운동 가지 말까, 하다가 다음 날이 쉬는 날이라 계속 쉴 순 없어 갔더니, 와 너무 좋았던 거다. 하는 내내 몸에 힘이 들어가고, 그게 내내 느껴지는 거다. '어? 몸에 힘이 막 넘치는 것 같아!' 분명 피곤했는데, 동작들이 기존보다 더 힘차게 되는 느낌. 이 느낌은 끝까지 이어졌고, 어쩌면 내가 그전보다 더 단단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바아사나 휴식 자세로 마무리까지 하고 나서 선생님께 가 '오늘 수업 정말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했다. 선생님은 어떤 점이 좋았냐 물으셨고, '굉장히 드문 경험인데, 온몸에 막 힘이 생겨서 차오르는 게 느껴졌어요' 했다. 선생님은 중간중간에 메시지들이 섬세하게 파고들었던 모양이라 하셨다. 메시지? 잘 모르겠다. 메시지가 파고들어서 힘이? 그렇지만 확실히 기존보다 집중도 잘 됐고, 동작도 잘 됐다.



요가를 하다 보면 자꾸 내 몸을 들여다보게 된다. 눈으로 본다는 게 아니라 느낀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여전히 많은 동작들을 못하고 실패해서 시무룩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 나는 이쪽 근육이 짧구나' 혹은 '이 동작은 왜 안될까' 하면서 계속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다음 수업시간이면 '이 동작 잘 안됐었는데 오늘은 좀 될까?' 하며 다시 생각하게 되고, '어? 지난번보다 좀 더 잘되는데? 그러면 코어에 힘 좀 생겼나?' 하게 되는 것이다. 새로이 마주하는 동작에서 선생님이 몸의 이 부분에 집중하라고 콕 짚어줄 때는, '아, 그러고 보니 몸의 이 부분에 한 번도 신경 쓴 적이 없네?!' 하고 새삼 그 부분을 의식하게 된다.



운동은 힘을 길러주기 때문에 좋고 또 기분도 바꿔주기 때문에 좋기도 하지만, 가장 큰 장점은, 그동안 무심했던 육체에 대해 계속 내가 신경 쓰고 집중하게 만든다는 데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의 '가쿠타 미쓰요' 역시 그렇다.



그녀는 현재 9년째 계속 달리고 있다.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달리는 것은 아니지만 주말이면 반드시 달리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그리고 해마다 마라톤에 나간다. 마라톤에 나가기 전에 준비 과정들이 있고, 그리고 마라톤에 한 번씩 나갈 때마다 기록을 보면서 '이번엔 이렇게 했더니 이렇구나'부터 '다음엔 이렇게 해야겠다'까지, 자연스레 몸 상태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렇게 마라톤이 반복되다 보니, 자신이 어느 시간대에 어느 지점에서 지치게 되는지도 안다. 아, 이 부분에서는 내가 그전에 어떻게 달렸어도 반드시 지친다, 그러니 나는 이거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 달리자, 해서 '노력하는 건 너무 싫다'라고 하면서도 기록을 단축해내고야 만다.



운동에 관한 에세이를 잡지에 써야 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쿠타 미쓰요는 운동을 '싫다'라고 하면서도, 편집자 W 군이 '등산해볼래요?', '야간 하이킹할래요?', '산악 달리기 할래요?' 할 때마다, '할래 할래!' 하면서 기어코 도전한다. 그럴 때마다 또 새삼 자신의 몸과 새로운 운동을 대하는 설렘 또 두려움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느 운동을 제일 좋아하는지도 알게 된다. '트레일 러닝'을 할 때, 산에서 바라보는 풍경들을 보는 게 너무 좋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운동하는 게 너무 좋고, 마라톤을 할 때면 모르는 사람들이 응원해주는 것도 큰 힘이 된다. 여전히 '싫다'라고 하면서도 주말 달리기를 빼먹으면 어쩐지 불안해져서, 여행을 가거나 출장을 갈 때도 러닝화와 운동복을 꼭 챙겨가게 되었고, 그렇게 파리에서 파키스탄에서 달려 보고 나니 그 동네를 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고.



트레일 레이스라는 산악 달리기도 신기했지만, 나는 가쿠타 미쓰요가 해본 운동 중에 '볼더링'이 굉장히 하고 싶어 졌다. 암벽등반과 비슷한 건데, 초보자들은 번호가 쓰인 홀더를 잡고 왼손 오른손으로 잡아가며 움직이는 거라고 했다. 온몸의 근육을 쓰는 것이고, 바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아도 고소공포증이 느껴지며, 나는 결코 다음 번호로 손을 움직일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에 시달리는데. 와. 이걸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거다. 일단 요가를 좀 더 해보고 나서 나중엔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쿠타 미쓰요가 도전한 운동 중에는 당연히 요가도 있었다. 요가를 시작하기 전에 요가에 대해 가진 편견에 대해 얘기하는데, 너무 공감이 되어서 웃었다.



  

사실 나는 이 체험수업 전에 요가에 대해 긍정적, 부정적 편견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긍정적 편견은 단순히 몸에 좋다기보다 몸 안쪽 깊숙한 곳까지 좋다는 것이다. 동양의학과 뭔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저 날씬해지거나 빵빵(가슴) 잘록(허리) 빵빵(엉덩이) 해지는 게 아니라, 수면 부족이나 변비, 생리불순이 해결되는 등의 효과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부정적인 편견은 요가를 열심히 하면 할수록 어떤 맹신 상태에 빠지는 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믿는 대상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주라든지 자신을 초월한 존재라든지 뉴에이지스러운 것으로, 그리하여 그것이 절정에 이르면 다들 채식주의자가 된다. 술도 안 마신다. 그러고는 어느새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술을 즐기는 사람을 미워하게 된다. (p.68)




하하하하. 나 역시 그랬다. 요가가 몸에 좋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것은 명상이 주가 된 스트레칭이라고 생각했다. 맹신 까지는 아니지만 채식주의자.. 가 될 거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요가를 한 지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채식주의자가 될 생각이 전혀 없고, 여전히 나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나는 나의 촉과 감을 믿는 사람..


지난번 홍콩 여행 때는 호텔 조식을 먹는데, 의식적으로 야채를 먹으려고 시도하다가 '아, 야채 먹기 지금 너무 싫어'라고 말하고 야채를 안 담아 왔더니 친구가 웃었더랬다. 먹지 마, 하고.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 야채도 많이, 잘 먹는 사람인데, 요가를 일 년 넘게 해도 채식주의자가 되기는커녕 가끔은 '아 야채 먹기 싫어'라고 말하는 사람인 것이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리고 요가를 하고 난 뒤, 가쿠타 미쓰요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주와 관계를 맺지 않아도 괜찮은 모양이고, 고기를 끊지 않아도 상관없으며, 애주가를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 좋은 점 투성이다. 안 할 이유가 있을까. (p.69)



운동을 하지 않았던 사람이 운동을 시작할 때 제일 처음 하는 건 아마도 스포츠센터 등록이 아닐까 싶다. 나 역시 헬스장에 등록했었다. 그렇게 몇 년을 다녔었는데, 일주일에 두 번 가면 많이 간다고 할 정도로, 어떤 핑계를 대서도 가지 않았다. 어쩌다 가게 되면 러닝머신 위에서 <아메리칸 아이돌>이나 보며 실실 걸었지. 그렇게 돈만 버리다가 여동생이 효과를 봤다는 '기체조'에도 등록했었는데, 비싼 등록비를 내고서도 역시 일주일에 한 번 갈까 말까... 다녀오고 나면 좋긴 한데, 자꾸 함께하는 사람들과 같이 웃게 시키는 게 영... 무엇보다 집에서 멀어 가기까지 큰 마음을 먹어야 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시작해볼까, 하고 등록하게 되는 게 헬스장이 아닐까.




  

내가 스포츠센터에 가는 빈도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40분 동안 러닝머신을 타고 한 시간 반 정도 메뉴를 수행한다. 물론 복근을 단련시키는 메뉴도 팔이나 다리 운동보다 훨씬 강도 높게 짜여 있다. 신체 측정은 1년에 한 번 정도 하는데 여전히 복부지방은 표준보다 많고 근육량은 밑돈다.

이유는 단순한데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복근 운동으로는 어림없기 때문이다. 나는 복싱장에서도 복근 운동을 하지만 일주일에 두 번 정도의 복근 운동으로도 역시 어림없다. 매일, 혹은 격일로 진지하게 몰두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매일, 혹은 격일로 집에서도 복근 운동을 할 수 있는 강한 의지가 있다면 딱히 스포츠 센터에 다니지 않아도 괜찮지 않겠는가. 다들 그게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렇다면 적어도 스포츠 센터에서'라는 생각으로 등록하는 것 아닌가.

'적어도'라는 생각으로 스포츠센터에 등록했지만 '적어도'의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나오지 않는다면 안 해도 마찬가지잖아 하며 발길을 끊게 된다. 이런 도식이 펼쳐지는 건 아닐까 생각하는 데 어떨지.

나는 스포츠센터에 다니는 건 효과가 없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적어도'로는 안 된다고, 진심으로 몰두하지 않으면 결과라는 건 나오지 않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p.40-41)






남동생은 헬스장에 여러 해 다니다가 결국 제 방에 운동기구를 들여놓고는 헬스장 등록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피곤한 날에도 집에서 기구로 운동을 한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반드시 스포츠센터에 다녀야 하는 건 아니었다. '강한 의지'가 있다면, 다니는 것도 열심히 다닐 테고 집에서도 열심히 할 테고, 그것은 반드시 어떤 효과로 이어지게 될 것이었다.



처음 요가를 시작했을 때, 그것이 내가 생각했던 명상과 스트레칭이 아닌, 근육 운동이어서 너무 놀랐더랬다. 한 시간 동안 간신히 낑낑대고 아이고.. 신음 소리를 내며 마치고 나니 너무 힘이 들고 배가 고팠다. 덕분에 집에 가 늦은 밤에 양푼에다 밥을 비벼 먹었는데, 그렇게 몇 번 하고 나니 '아, 이러다가 요가 돼지 되는 거구나' 싶었던 거다. 하하하하. 가쿠타 미쓰요 역시 그 과정을 거쳤다.



  

내가 스포츠센터에 등록한 건 8년쯤 전이다. 그보다 조금 앞서 복싱장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밥과 맥주가 그전보다 훨씬 맛있어져서 4kg 쪘다. 안 돼, 이대로 복싱장을 계속 다니면 점점 비대해지겠어. (p.37-38)



가쿠다 미쓰요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운동을 하면서 가쿠다 미쓰요는 즐기고 있다. 운동하기 전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고, 자신이 편견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그 운동을 얕봤었다는 것도 순순히 시인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달라지는 걸 자세히 보고 느낀다. 그리고 '더' 좋아지고 싶어 한다. 이대로 멈춰있는 게 아니라, 내가 조금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


그동안 돌보지 않았던 육체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느끼면서 그리고 더 좋아지게 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하는 것. 내 몸에 대한 집중. 그것이 운동이 가져오는 가장 긍정적 효과가 아닐까 싶다. 가쿠다 미쓰요는 그런 효과를 이미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고, 꾸준히 마라톤을 나가면서 더 좋은 기록을 세워나간다. 새로운 운동에도 도전하면서. 그렇게 멈추지 않고 계속한다면, 가쿠다 미쓰요가 좋아하는 술과 안주를 언제까지고 계속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마라톤이 힘들어지는 지점에 와서, 완주까지 너무 힘들다고 생각할 때에도, 가쿠다 미쓰요는 '마치고 나서 포장마차에서 맥주를 마시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달린다. 그것이 자신에게 큰 보상이 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노화가 찾아오면서 나는 예전보다 술 마시는 양이 줄었다. 이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조금 줄이려고 한다. 의식적으로 조금 줄여야, 내가 마시고 싶을 때 마시고 싶은 만큼 건강하게 마시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러므로 운동을 계속할 것이다.


들이쉬고 내쉬고 호흡하면서 팔다리를 쭉쭉 뻗는 일이, 팔이나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텨내는 일이, 그렇게 근육의 움직임을 느끼다가 다음날 근육통에 시달리는 일이 몹시 만족스럽다. 요가를 마치면서 개운해지고 또 특별히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곤 하는데, 그럴 때면 , '아아, 지금의 나에게 요가가 없었다면 나는 이 시간들을 도대체 어떻게 버텨냈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우울한 마음, 우울한 생각을 잠시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몸을 움직여 근육을 쓰는 일, 땀을 내는 일은 중요하다. 가쿠다 미쓰요는 노력하기 싫다고 하고 나 역시 마찬가지. 그러나 하던 것에 있어서는 어디 한 번 계속해볼 참이다.




마지막으로, 가쿠다 미쓰요 님. 실연은 40대에도 옵디다...


  

이렇게 소설 때문에 풀이 죽어 있을 때 실연을 했다. 실연 그 자체보다 연령의 불균형에 충격을 받았다. 그토록 남의 일이라 여겼던 중년 연배에 부쩍부쩍 가까워져서 일에 대해서도 이제는 더 이상 변명할 수 없게 됐는데 실연 따위나 하고 있다니. 실연이란 젊은이의 특권 아닌가. 30대가 돼서도 실연하는 것인가. (p.9)




아, 진짜 마지막으로, 가쿠다 미쓰요는 보르도의 포도밭 달리기 마라톤 대회에도 참가한다. 코스를 완주할 때까지 수시로 와인도 주고 고기도 주고 굴도 주고... 그런 마라톤 대회가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상당수의 사람이 와인 밭에 쑥쑥 들어가서 볼일을 보는 데는 깜짝 놀랐다. 가지런히 늘어선 나무들 사이에 쏙 숨어서 엉덩이를 이쪽으로 돌리고 볼일을 본다.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까지 안쪽으로 들어가서 쪼그려 앉아 있다. 굉장한데. 내가 도쿄 레스토랑이나 집에서 마시는 보르도 와인에는 1년에 한 번 이 사람들의…… 아니다, 생각을 말자. (p.258)




그건 그렇고,

중년의 여성들이여, 운동합시다!!

운동해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다정하게 지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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