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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락방 Oct 05. 2020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내가 나아갈 방향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러네이 엥겔른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2017

몇 해전에 회사 여직원이 노메이크업으로 출근을 해서는 사무실에 도착해 화장을 했던 적이 있다. 그때 남자 상사가 그 모습을 보고는 크게 혼냈다. '화장은 아빠도, 오빠도 모르게 하는 거다!'는게 이유였다. 여직원은 이에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만약 그 여직원이 집에서 화장을 하고 왔다면 조금 더 일찍 일어나야 했을 것이다. 일찍 일어나서 화장을 마치고 나와야겠지. 그랬다면 같은 회사, 같은 거리에 있는 남자 직원보다 좀 더 수면 시간이 짧았을 것이다. 남자는 잘 시간에 여자는 화장을 해야 하는 이 부조리함(또 퇴근하면 지우기도 해야 한다). 게다가 화장을 하는 게 예의라고, 화장한 모습으로 대부분의 여성을 출근하게 만드는 이 사회 분위기에서 그런데 '화장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고? 이건 너무나 혼란스러운 지점 아닌가. 말 자체가 모순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나. 이건 중학교 시절의 브래지어를 생각나게 한다. 나는 여중을 다녔는데, 학교에서는 반드시 브래지어를 착용하게 했고, 그런데 브래지어 끈이 보이면 안 된다고 그 위에 셔츠를 더 입게 했다. 더운 여름날 교복 하복을 입기 위해서는 그 안에 러닝셔츠도, 브래지어도 있어야 했던 것. 이거 너무 이상하지 않아? 젖꼭지를 가리기 위해 브래지어를 하고, 브래지어를 감추기 위해 셔츠를 더입고 그 위에 교복을 입고... 왜 우리는 뭔가를 감춰야 하고, 감춘 걸 또 티 내지 않아야 하는 거야? 브래지어도, 러닝셔츠도 안 입고 교복 하나만 슝- 입으면 되는 남학생들에 비해 확실히 효율이 떨어지잖아?


화장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단 우리 회사 상사뿐만은 아니었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화장하는 여자들을 욕하는 글들은 인터넷에 얼마나 많이 올라왔던가. 그들도 그들이 왜 비난하는지는 모르고, 그런데 비난은 해야겠고, 그래서 파우더 가루가 흩날린다.. 같은 얘기를 했었던 것 같은데...... 비난을 위한 비난이 아닌가. 베이비파우더 바르는 것도 아닌데 무슨 가루가 날려... 그러면서 자기 여자 친구나 여자 동료가 화장을 하지 않으면, '그래도 여자가 화장은 하고 다녀야지'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화장을 하긴 해야 하는데, 이동 시간 중에 짬을 내면 안 되고, 항상 너보다 먼저 일어나서 잠을 줄여가며 화장을 하고, 그리고 완벽하게 세팅된 모습으로 너를 만나야 한다는 거지? 네가 애인이든, 상사든, 친구든.. 그게 뭐든?



대학 때는 화장을 잘하지 않고 다니긴 했지만 회사를 다니면서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이 책의 사례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내가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어떤 면에서나 준비된 모습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다. 하도 오래 그렇게 살아와서 이제는 화장하는 시간이 처음보다 확 짧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분명히 시간은 걸린다. 머리가 길고 웨이브 졌다면 말리고 고데를 하고 에센스를 바르는 시간도 걸린다. 시간만 걸리나, 돈도 들여야 한다. 돈만 들이나, 에너지와 신경도 그쪽으로 당연히 쏠린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피부 당기지 않게 스킨로션만 촵촵 발라주고 옷만 입고 휙- 나오면 삶은 간단할 텐데, 거기에 여자들은 화장이 끼어든다.




티브이에서도 잡지에서도 어딜 봐도 날씬하고 화려하게 화장한 여자들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그녀들은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는다. 어쩌다 한 장면, 어쩌다 한 명의 그런 여자를 본다면 심드렁하게 넘어갈 수 있지만, 세상이 하나 되어 그 여자들이 진리인 것처럼 말해버리면, 아무리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도 흔들리게 마련이다. 아, 저렇게 예뻐져야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저렇게 예뻐져야 사랑받겠지, 저렇게 예뻐져야 손가락질당하지 않겠지. 사회가 정해놓은 미의 기준, 그리고 여자는 아름다워야 인정받는다는 강한 메시지 때문에, 여자들은 먹는 양을 줄이고, 꾸역꾸역 운동을 하고, 좋은 화장품을 여러 개 사고, 긴 머리에 바를 좋은 헤어제품을 산다. 예쁜 드레스를 입고 구두를 신으면 당연히 행동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느라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들인다. 이 책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텔레비전에 잔뜩 나오는 저체중 여성은 전체 미국 성인 여자의 3프로밖에 안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 3프로가 되어야 되는 것처럼, 대부분의 여자들이 애를 쓰는 거다. 아무리 해봤자 자신이 완벽하게 생각하는 모습이 될 순 없는데!



다이어트는 식이가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운동은 도울뿐, 먹는 양을 줄이는 것, 먹는 양보다 활동량이 많아야 체중 감량이 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지방이 쌓이지 않기 위해서는 탄수화물을 먹지 않아야 한다. 세상 맛있는 게 탄수화물에 얼마나 많은데! 그러다 보면 식사는 즐거울 수 없다.


나는 먹는 것도 좋아하고 맛있는 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친근한 사람들과 만나 함께 맛있는 걸 먹고 마시면서 이야기 나누는 것도 좋아한다. 만약 내가 탄수화물을, 술을 끊어버린다면, 그건 내 인간관계도 끊어야 함을 의미한다. 한두 번은 만나서 더 적게 먹을 수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계속해 살 순 없다. 나는 저체중의 몸 대신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선택하는 사람이다.


  

해나는 음식을 적으로 보라고 배운 적이 없다. 그녀는 "엄마는 정말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셨어요. 엄마는 지나치게 말랐던 적이 없어요. 그리고 건강한 식습관의 모범을 보이셨죠. 그러면서도 때로는 저희가 좋아하는 걸 아낌없이 사주셨어요. 엄마는 '나는 가족들과 이 음식을 즐겁게 먹을 거야. 칼로리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폭식도 하지 않으셨죠."
"음식을 즐겨도 된다고 배운 거군요?" 나는 물었다.
"맞아요." 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엄마 덕분이에요. 음식에 대한 건강한 태도를 가르쳐주셨어요. 음식은 사람들을 한 곳에 모으고 공동체를 만들어 따뜻하게 대접해주는 역할을 해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요리해주는 걸 좋아해요."
"그게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인가요?" 나는 물었다.
"네. 그래요." 해나는 동의했다. "그리고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도 요리를 하고 빵을 구워서 사랑을 전하셨어요."
해나는 중요한 부분을 짚어냈다.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들은 만성적인 허기에 동반되는 감정적인 괴로움을 겪을 뿐만 아니라 음식을 나눠먹으며 강화되는 사회적 관계에서도 멀어진다. (p.302-303)



당연히 나에게도 외모 강박이 있다. 없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내가 갖고 있는 것이 외모 강박이라는 것을 인지한다. 남자랑 여행 간다고 가기 전에 겨드랑이에 왁싱을 받고서는, 그 아픔에 놀라 '도대체 내가 이걸 왜 해야 되지?'라고 스스로 물었더랬다. 남동생의 결혼을 앞두고는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결심하면서도 '그런데 내가 왜 그래야 하지?'라고 자꾸 되묻게 된다. 어쩌면 나는 외모 강박이 심하지 않고 이렇게 스스로 태클을 걸어대서, 사실 내가 그렇게 해야만 하는 타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그래서 번번이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에겐 다이어트를 할 굳은 의지 같은 것이 없어. 왜냐하면, 나는, 다이어트를 하지 않고 살아도 행복하니까.




일전에 마른 몸과 성형수술을 원하는 친구와 대화를 하면서 계속 불편했던 경험이 있다. 나 역시 납작한 배를 갖고 싶다고 생각하고, 운동의 목적 중에 다이어트도 있었던 사람으로서(실패 중이지만..), 왜 나도 이러면서 저 친구가 저러는 것은 불편하게 느껴질까.. 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나도 이러면서 누군가 저러는 것에 대해 불편하다는 것은 나 스스로의 모순을 증명하는 꼴이 아닌가 싶었던 거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서 비로소 그 이유를 알았다. 그 사람과 나의 인생의 우선순위가 달랐던 거다. 외모 강박의 크기가 달랐던 거다. 그 친구는 애인의 첫째 조건도 외모였다. 그러니 자신이 갖추어야 할 첫째 조건도 외모였던 거다. 그런데 나는, 외모가 아닌 다른 것에 더 신경 쓰는 사람이고 싶고 또 그런 사람과 친구 혹은 애인이 되기를 바랐다. 나는 인생에 있어서 분명히 더 중요한 목표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는 그 중요한 목표가 외모였던 거다. 우리가 각자 생각하는 중요한 목표가 달라서, 그래서 나는 그것이 불편하고 어색했구나.




  

우선 말해둘 것이 있다. 나는 여성이 외모를 가꾸는 모든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현실적이지 않으니까. 또한 대부분의 여성이 원하는 바도 아니고 말이다. 우리는 언제나 외모에 신경 쓸 것이다. 이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외모에 신경을 쓰느라 다른 중요한 목표에서 멀어질 때 발생한다. 이제는 외모에 신경을 쓰면서도 그에 맞춰진 눈금판을 조금 낮출 필요가 있다. (p.335)




이 책에서는 시종일관 어릴 때부터 아름답다 혹은 예쁘다고 칭찬하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예쁘다'는 말이기 때문에 칭찬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더 예뻐지고 싶고 못생긴 곳은 어디인지, 자꾸만 자기의 외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는 것. 자꾸만 생각하다 보면 신경과 에너지는 당연히 그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그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더 많이 하자고 얘기한다. 외모에 대한 칭찬이나 불평을 언급해 그것을 화제에 오르게 하고 또 그래서 자기 외모를 들여다보게 만들기보다는, 외모 이외의 다른 것들을 이야기하자고. 그런 식으로 이 책에서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몸에 대해 편지 쓰기도 시킨다. 그러니까 순전히 '기능적인' 측면에서. 손이 하는 역할, 발이 하는 역할 등에 대해 생각하면서. 또한, 트레이너들한테도 '더 날씬한 몸, 비키니를 입기 위한 몸'으로 격려하는 대신, 우리 몸의 기능을 강화시키는 걸로 격려하라고 설득한다. 그 편이 운동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더 동기부여가 된다는 거다.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요가를 시작했지만, 당연히 거기에 다이어트도 있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요가를 했다고 해서 살이 빠지거나 배가 납작해지진 않았다. 그러나 요가를 하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요가 선생님이 앞에서 계속 코어에 힘을, 코어에 힘을.. 하고 얘기하는 바람에, 처음 시작할 때보다 코어에 힘이 더 생겼다. 안 되는 자세들이 하나씩 그리고 조금씩 되는 걸 느끼면서, 아, 내 몸에 힘이 더 생겼구나, 하는 걸 깨닫는다. 그것은 어찌나 신나는 일인지! 그래서 요가로 납작한 배를 만들 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요가를 계속하기로 결심했다. 이것은 내 몸에 힘을 키우는데 확실히 도움이 되니까. 안 되는 자세들을 시도하고 시도하고 또 시도하다가 결국 해내고 났을 때의 기분 같은 것을 살면서 계속해서 느끼고 싶다. 예뻐지고 싶다, 저체중이 되고 싶다 같은 생각을 하기보다는, 건강해지고 싶고 근육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 더 몰두하고 싶다. 또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친구를 만나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에도 내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고 싶다. 저자도 이 책에서 주장한 것처럼, 외모를 꾸미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들이 내게는 아주 많다. 할 일도 많고.



최근에는 같은 방향을 보는 사람, 그러니까 나랑 비슷한 사람들을 곁에 남겨두자는 생각이 좀 더 강해졌다. 인생 가장 중요한 목표가 나와 너무 다른 사람과는 이야기하면서 불편함을 느낀 것처럼, 비슷한 사람과는 이야기하는 게 참 행복하다. 어제 책 읽는 남자 사람 친구가 책을 읽다 좋은 소식을 전해준 것처럼,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같이 얘기하고 공부하고 또 책을 읽는 것들이 내게는 무척 소중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런 걸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을 친구로 혹은 애인으로 두고 싶다. 그간 못! 생! 긴! 남! 자! 들! 만! 사귀었던 것은  (남자들이 다 못생겼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게는 외모보다 더 크고 중요한 게 많았어.


더불어 조카에 대해서도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잡았다.

그동안 외모 품평해대는 프로그램들이 수두룩하게 나와 저절로 예쁘고 미운 걸 파악하고 언급하는 조카에게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누구나 다 각자의 매력이 있다', '사람은 다 다르다'는 등으로 얘기해왔었는데, 이제는 그보다는 다른 중요한 것을 언급하고 싶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어떤 일을 할 때 재미있어? 어떤 게 즐거워? 등등. 외모 강박에 벌써부터 둘러싸인 조카에게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의 중요성, 삶의 재미 같은 것들에 대해 언급하며,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조카야, 네가 예쁠 필요도 없고 날씬하기 위해 고통스러울 필요도 없어.



끝으로, 책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 꼭 언급하고 싶다.

나는 이 책의 책장을 덮으면서 '아, 책을 읽는 것은 너무나 좋다' 하고 또 생각하고 말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내가 가졌던 미묘한 불편함의 정체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고 있던 것을 알게 하는 것도 책이지만, 내가 아는 것에 대해서도 시야를 더 넓혀주고 사고를 확장해주는 게 책이다. 도움을 받기 위해 읽은 게 아닌데, 읽고 나면 어떻게든 도움을 받는다. 누군가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고 토론을 하고 생각을 해서 고심해 쓴 글을 이렇게 편하게 앉아 읽는 것만으로 이 큰 도움을 받는다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내가 이런 책을 읽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책을 읽고 그 후의 감상을 글로 남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몹시 흡족하다. 또한 내가 이렇게 글을 남김으로써 나는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나에게는 인생에 있어서 이런 것들이 훨씬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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