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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락방 Oct 14. 2020

《미스 아메리카나》

그녀의 성취

《미스 아메리카나》, 라나 윌슨 감독, 테일러 스위프트 주연, 2020


대학 시절 축제기간에 노래자랑 코너가 있었다. 정확히 그 의도는 지금 기억이 나진 않는다. 단순히 즐기기 위함이었는지 아니면  대결이었는지는. 어쨌든 사람들이 모였고, 노래방 기계 같은 걸 가져다 두고 지원자들이 순서대로 노래를 하고 있었다. 그중에 한  명(학생 1)이 한영애의 <누구 없소>를 불렀는데, 진짜 잘 부르는 거다. 모인 사람들 모두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나 역시  감탄하며 박수를 보냈었고. 그 학생이 끝난 후 다음 학생(학생 2)은 하수빈의 노래를 불렀던 것 같은데(이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갑자기 좀 전에 한영애의 노래를 잘 불렀던 학생 1이 일어나 마이크를 가져오더니, 본래 부르려던 학생 2 보다 더 큰  목소리로 간드러진 목소리를 내며 그 노래를 함께 부르는 거다. 학생 2는 자기가 불러야 할 시간인데 온전히 주목받지 못했다. 학생 1이  끼어들었기 때문이고 더 큰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곡 가수의 특징을 잡아내서 노래를 부르는 바람에 모인 사람들 중 일부는  학생 1이 노래를 부를 때 더 크게 웃고 박수를 쳤다. 나는 불쾌했다. 이건 아닌데, 하는 느낌이었다.


학생 1은  충분히 잘 불렀고 뛰어나게 잘 불렀다. 굳이 학생 2의 순간에 끼어들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다 학생 1이 잘 불렀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었다. 그런데 한 번 엄청난 환호를 받고 나니 멈출 수 없는 것이었을까. 왜 학생 2의 무대에 자기가 끼어든 걸까. 대체 왜. 그  순간의 주인공은 오로지 학생 2여야 하지 않았는가. 어째서..


이 일은 내게 너무 강하게 남아있다. 다른 사람의 무대를 빼앗는 일, 다른 사람의 박수갈채를 빼앗는 일, 누군가의 성취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일로써.




이 과거의 일이 생각난 건, 내가 다큐 <미스 아메리카나>를 봤기 때문이었다.


유명한 가수인지라 그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사실 나는 테일러 스위프트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노래를 들으면 한두 곡쯤 내가  아는 게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노래를 찾아들어본 적도 없고. 이 다큐를 보고서야 그녀가 노래하는 장르가 컨트리 뮤직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녀가 매우 젊은 가수라는 것도. 또한, 매우 영향력 있는 가수라는 것도.



테일러  스위프트는 열세 살부터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열여섯 살에 데뷔를 하고 열일곱 살에 '최우수 여성 비디오상'을 수상하는데,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 상을 타게 된 기쁨을 발표하고 있던 순간에, 이미 너무나 유명한 '카니예 웨스트'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  상을 수상한 건 테일러 스위프트였고, 그러니 그 무대의 주인공은 당연히 테일러 스위프트인데, 카니예 웨스트는 '너는 잠시 후에  다시 말하게 해 줄게' 라며 그 무대의 시선과 분위기를 모조리 빼앗아 가더니,


"최고 영상은 역시 비욘세가 최고다!"


라며 비욘세 칭찬을 하고 있는 거다. 맙소사.




테일러 스위프트는 고작 17살이었다. 게다가 카니예 웨스트는 이미 유명한 가수였고. 거기서 테일러 스위프트는 뭐라고 해야 했을까?

그  자리에 참석한 관중들은 이 황당한 상황에 모두 카니예 웨스트를 향한 야유를 퍼붓는다. 그는 해서는 안될 짓을 했으니까. 어린  여자 가수의 무대를 빼앗고 어린 여자 가수의 성취를 빼앗았으니까. 그가 받는 야유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이미 이름과 지위가 있는  사람이, 게다가 나이도 테일러 스위프트보다 12살이나 더 많은 남자가수가, 도대체 왜 그 무대에 들어와 그런 짓을 벌이는가.  그러나 그 야유가 카니예 웨스트를 향한 것이었을지언정, 그 무대 위에 서있던 사람은 테일러 스위프트였고, 이 열일곱 살의 어린  가수는, 그 무대 위에서, 그 야유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절망한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런데  사람들이 야유를 했다.



카니예 웨스트 개인으로 테일러 스위프트보다 비욘세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건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다수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나 역시 좋아하리란 법은 없으니까.  그러니 그 날 그 상을 탄 게 비욘세가 아니라는 것 때문에 카니예 웨스트가 서운하고 속상했을 수도 있다. 말도 안 돼, 이건 비욘세  꺼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날 상을 탄 건 테일러 스위프트였다. 그가 혹여라도 자신이 역시 계속해서  비욘세를 최고의 가수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그가 비욘세를 만나 직접 전했으면 될 일이다. 비욘세, 내 말 좀 들어봐, 오늘 네가  상을 타진 못했지만 나는 네가 여전히 최고의 가수라고 생각해,라고 말했으면 된다. 그 자리에는 비욘세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성취를 빼앗음으로써 자신의 의견을 전한다.



사실  그가 정말 비욘세를 지지했기 때문에, 그걸 전하고 싶어서 그 무대에 올라온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 수도 있지만, 사실  그런 가능성보다는 '잘 나가는 어린 여자 가수'의 성취를 그저 빼앗고 싶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게 그에게 '가능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약 그 자리에 엘비스 프레슬리가 있었다거나, 샘 스미스가 있었다거나 했다면, 그가 감히 올라와서 마이크를  빼앗아 '나는 비욘세가 훌륭하다고 생각해!'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그는 '그래도 되니까', '그것이 가능하니까' 어린 여자 가수의  마이크를 빼앗았던 것이다. 마땅히 그 가수의 몫이었던 것을 빼앗아간 거다. 이 얼마나 괘씸한가.



게다가  그는 그 후에도 '테일러 스위프트랑 섹스할 수 있다고 생각해'같은 노래를 만들어 부른다. 진짜 씨방새.. 이건 테일러가 알고  있었다 모르고 있었다로 말들이 오고 간 모양인데, 설사 테일러가 알고 있었다고 해도, 대체 그런 노래를 만든 게 뭐 그리 자랑스러운  일이란 말인가? 실제 살아있는 젊은 여자 가수를 가사에 넣어 섹스할 수 있다고 생각해 같은 가사를 쓴 게 퍽이나 자랑스럽겠다.  그걸 노래랍시고 만들고 부르는 게, 뭐 그렇게 자랑할만한 일이라고 허락을 했네 안 했네.. 허락 안 받고 한 거면 진짜 쓰레기고 인간  말종이지만, 허락을 받았다고 해도 그 노래 부르는 자신을 좀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나.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양반이...




이  어린 가수가 살아남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그녀는 연애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카니예 웨스트의 노래에 들어간 일 때문에도  계속 사람들의 말에 시달려야 했다. 남자든 여자든 텔레비전에 나오는 엠씨들은 테일러 스위프트의 사생활을 욕하고, 그녀가 거짓말을  한다고 욕했다. SNS에는 테일러 스위프트 거짓말쟁이고 너무 싫다고, 카니예 웨스트 덕에 유명해진 거라고 쉴 새 없이 올라온다.  사람들이 자신을 이렇게나 싫어하는걸 순간순간 목격해야 했던 그때 그녀는 고작 이십 대 중반이었다. 세상은 젊은 여자 연예인에게  이렇게나 잔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라디오 DJ 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이 일을 폭로한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해 오히려 DJ로부터 고소를 당한다. 법정에 갔을 때 그녀는 가해자의 편을 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그 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놀란다. 법정에서 그녀는 '왜 소리를 지르지 않았냐, 왜  더 빨리 반응하지 않았냐, 왜 그로부터 멀리 있지 않았냐'는 질문을 들어야 했다. 그녀에게는 이 성추행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일곱 명이나 있었고 사진도 있었는데도 자신의 입장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에 씁쓸해한다. 이 싸움은 이겨도 성취감이 없는 싸움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목격자가 있는 자신도 이런데, 아무도 못 본 곳에서 강간당한 여자들은 대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까, 그녀는  생각하게 된다. 아무도 믿지 않을까 봐 차마 말하지도 못하고 있는 여자들에 대해 떠올린다.



그녀는  그간 정치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연애 노래만 부를 거예요, 로 자신의 태도를 유지한다. 부시  대통령에 반대한다는 '딕시 칙스'가 멍청하다, 창녀, 불타버려라, 등신, 무식하다는 말을 들어야 했던 걸 본 까닭이다. 정치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표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불문율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성추행 사건을 겪으면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더 이상 참지 않겠어. 참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어.


이에 그녀의 가족이나 팀원들은  너의 정치적 의견을 표현하지 말라고 한다. 투어 티켓 판매가 반으로 줄어들 거라고. 그러나 그녀는 진작에 그러지 못한 걸  후회한다며, 앞으로도 후회하고 싶지 않기에 1억 명의 팔로워를 가진 자신의 SNS에 선거 독려를 한다. 공개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음을 선언한다. 트럼프가 속한 공화당원이 테릴러 스위프트의 고향인 테네시주에서 당선될 확률이 높은 까닭이다. 그녀는  말한다. 여성폭력 방지법의 재승인에 반대하는 사람을, 동성애자의 결혼에 반대하며 성평등 임금에 반대하는 사람을 자신은 지지할 수  없다고. 그녀는 이제 말할 수 있어서 체증이 내려간 것 같은 기분이라 말한다. 그녀의 그간 침묵에 공화당원들은 그녀가 자신들의  편일 거라고 생각했다가 놀라는데, 침묵은 이런 거다. 침묵은, 결코 약자에게 내 힘을 더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녀의  선거 독려로 인해 선거율은 높아졌지만, 그녀가 지지하는 사람은 선거에서 패했다. 그녀가 진 것이다. 그녀는 졌지만, 다음 세대들이  그걸 바꿔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마음을 그대로 담아 노래를 만든다. 다음 세대들이여, 달리라고, 너희들이 바꿀  수 있다고.


그녀는 나이 들면서 이제 침묵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게다가 그녀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는지를 알겠다. 그녀는 매 순간  노래에 대해 생각하고 만든다. 자신이 직접 곡도 가사도 다 쓴다. 그러다 보니 그 순간에 그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라든가  감정에 대해 노래할 수 있었다. 그간 그녀의 노래를 들어보지 않아 잘 몰랐지만,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노래가 대중적으로  높은 인기를 받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잘 몰랐던 가수였는데, 이렇게 한 편의 다큐로 한 어린 여가수가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는 게  좋았다.



만약 지금, 지금 다시 그녀에게 최고의 비디오상 수상자가 되는 영광의  순간이 온다면, 그런데 누군가 예전처럼 무대로 난입해 그녀의 성취를 가로채려 한다면, 그녀는 바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침묵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기에. 이것 봐, 당장 내려가, 지금 이 순간은 내 순간이야, 지금 이 무대의 주인공은 나야. 실제로 그녀는  최근의 무대에서 그때를 떠올리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자란다. 단순히 육체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영혼도 함께 성장한다. 육체와 영혼이 함께 성장하면서 더 강해진다. 어릴  적에 뭣도 몰라 내가 이룬 성취를 빼앗겼다면, 빼앗기지 않을 만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건 언제나 짜릿하다.  


자신의 성취를 나이 많은 남자에게 빼앗겼던 어린 테일러 스위프트는 자랐고, 이제 자신의 성취에  대해 온전히 기쁨을 표현할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젊은 세대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고, 성취를 빼앗기지 말라고 말하는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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