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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락방 Oct 20. 2020

《인투 더 워터》

폴라 호킨스가 소설로 보여주는 페미사이드

《인투 더 워터》, 폴라 호킨스, 2017, 북폴리오

Drowning Pool '익사의  웅덩이'라는 뜻으로, 봉건 시대 스코틀랜드의 법에 따라 여성 범죄자들을 처형하기 위한 목적으로 판 웅덩이나 우물을 가리킨다.  16-17세기 마녀 재판이 횡행하던 시절에는 마녀로 고발당한 여성의 유무죄를 시험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물에 빠뜨려진  여성은 물속으로 가라앉으면 마녀가 아닌 것으로, 물 위로 뜨면 마녀로 간주되었다. 어느 쪽이든 결국엔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p.7)


마침 페미사이드를 읽던 중에 고른 책은, 첫 페이지부터 '드라우닝 풀'에 대해 나온다. 잘못이 있든 없든 여자를 죽여버리는  웅덩이. 잘못하지 않으면 물에 빠져 죽고 잘못했으면 마녀이므로 처형당하는. 이 얼마나 끔찍하고도 오랜, 여성을 죽이는 참혹한  역사인가.



마을에 있는 드라우닝 풀에서 여자가 자살한 사건이 발생한다. 자살한  여자의 딸조차도 '엄마가 뛰어내린 거다'라고 얘기하지만, 그러나, 그녀가 정말 자살한 것일까? 그녀는 자신의 생을 스스로 마감하려  한 것일까? 불과 몇 년 전에는 딸의 친구도 드라우닝 풀에서 자살했었다. 이 사건은 그 사건과 같은 것인가? 여자들은 왜 그곳에서  자신의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가? 내가 '스스로' 그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면, 그렇다면 그것은 정말 나 스스로 선택한  죽음인가?


이 과정에서 '에린'이라는 타 지역의 경찰이 와 수사에 협조한다. 마을 사람들은 특히나  경찰이었던 마을의 유지-늙고 권력 있는 남자-는 그녀를 배척한다. 그녀가 동성애를 저지르다 좌천되었으므로 마땅히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그전에 어떤 짓을 저질렀는가?



니키, 마크, 쥴스,  에린, 패트릭, 조시, 리나, 헬런 등등, 많은 사람들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다소 산만하게 느껴진다. 이 사람이 저  사람이구나 라고 고정되어 흐름을 따라가기까지 좀 시간이 걸렸던 터라, 나는 이렇게 여러 사람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별로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딱히 좋지는 않다'라고 이 책을 읽어나가다가 책장을 덮게 되면 수많은 생각들이 아주 오래 머릿속에서  섞여 든다. 


좋은 사람이란 무엇인가?

마을에서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알려진  사람들, 심지어 존경까지 받는 사람이, 그러나 어떤 생각으로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그 자신을 포함해 다른 몇 명만이 알고 있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비난할 수 있는 시점을 가진 사람조차도 또 누군가에 대해서는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좋은'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인가?


미투 폭로를 비롯해 누군가 성폭행했다는 진실이  바깥으로 드러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럴 사람이 아닌데, '착한 사람인데' 라며 가해자를 두둔하거나 가해자의 편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이곤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면을 보여줬던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은 그저 '좋기만' 한  사람일까? 

또한,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겐 강간과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이 된다면, 그렇다면 그 사람은 '왜'그런 일을 하는 걸까?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것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변명의 여지가 될까? 

성인  남성이 십 대 소녀와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말을 한다. 자신은 미성년자를 성적 대상으로 보는 걸 끔찍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평소에 그런 사람들을 욕했지만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렇지만 이건 진짜 사랑이었다고. 이것이야말로 진실된 사랑이지만,  세상이 자신을 미성년자 성폭행범으로 몰아갈 거고 그렇게 감옥에 가게 되면 자신은 끔찍한 취급을 받게 될 거라며 두려워한다. 그의  연인이었던 십 대 소녀는 자신 역시 그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성인이 되지도 못한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정말  사랑 이란 이름으로 용서할 수 있는 것일까? 자신들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이었다면, 왜 그들은 그 사랑이 세상에 드러날까 두려워한쪽의 죽음으로 그 관계를 끝내야 했을까?


강간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페미니즘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강간과 성폭력을 다룬 책들도 많이 읽게 되었는데, 많은 여자들이 자신이 당한 것이 강간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의  잘못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주변에서 지인이 자신이 당한 것을 전혀 강간으로 생각하지 않는 걸 보고 나는 너무  화가 났었는데, 자신이 강간당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넌 강간당한 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해도 되는 일인가? 나는 아무  말도 못 했지만, 이 일은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뭐가 복잡해요? 뭐가 그렇게 복잡했는데요?"

"어머니가 언제 돌아가실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안 그래도 힘든 부모님한테 짐을 더 얹어드리긴 싫었어."

"그래도...... 강간당했잖아요. 범인은 감옥으로 가야죠."

"그땐  그런 생각도 못했어. 어렸으니까. 지금 너보다 더. 나이뿐만이 아니야, 난 순진했고, 너무 미숙했고, 어리석었어. 요즘 너희들은  합의가 없으면 무조건 강간이라고 말하지만, 그땐 그런 얘기도 잘 안 하던 시절이었어. 그래서 난...."

"그가 그런 짓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아니, 내가 제대로 이해를 못 했던 것 같아. 진짜 무슨 일을 당한 건지 몰랐던 거야. 강간이라는  게, 못된 어른이 한밤중에 갑자기 골목길에서 튀어나와서 나를 덮치고 목에다 칼을 대는 건 줄 알았지. 남자애들이 그럴 줄은  몰랐어. 로비처럼 잘생기고, 마을에서 제일 예쁜 여자아이들이랑 어울려 다니는 남학생 하고는 상관없는 일인 줄 알았지. 우리 집  거실에서 나한테 그런 짓을 하고는 좋았느냐고 물어보는 게 강간일 줄은 몰랐어. 난 그냥 내가 뭘 잘못했나 보다, 싫다고 확실히  말했어야 하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지" (p.459-460)


마찬가지로, 강간의 가해자 역시 자신이 강간의 가해자인 줄 모르고 살고 있다는 데에 더 끔찍해졌다. 나는 너에게 자비를  베풀었지, 너는 나를 욕망했잖아, 라는 대응은, 평생을 강간의 피해자로 살며 고통스러워 한 여자에게 참담한 고통이었다. 이 새끼,  평생 강간에 대한 죄책 감 없이 살아왔구나, 나는 이렇게나 괴로웠는데.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자신이 강간의 가해자인 줄 모르는 채로  살고 있을까. 


그리고 십 대의 여자아이.

결국 해야 할 말을 하는 것이  십 대의 여자아이라는 것이 상징적이다. 이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들, 벌어졌던 일들. 그리고 차마 말하지 못하고 감추어졌던 것에  대해서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십 대의 여자아이라는 것은 좀 희망적이지 않은가.


"이해를 못하겠어요. 항상 여자들만 탓하는 이모 같은 사람들, 정말 이해가 안 돼요. 두 사람이 똑같이 나쁜 짓을 했는데 그중에 한 명이 여자라면 무조건 그 여자 탓이죠. 그렇죠?"

"아니야, 리나, 그런 게 아니야,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마찬가지로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 왜 아내들은 항상 상대 여자를 원망해요? 자기 남편을 원망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자기를 배신한 것도, 평생 사랑하고 지켜주겠다고 맹세한 것도 남편인데, 절벽에서 떠밀어 죽이려면 자기 남편을 죽여야 하지 않아요?"  (p.461)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다. 내가 아무리 정의롭게 살려고 해도 어딘가에서 나는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르고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줄스가 끝까지 언니를 미워했던 것은, 자신의 강간에 대해 언니가 피해자의 탓을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줄스가  아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줄스는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은 채로 언니를 오래 미워했다. 줄스가 미워해야 했던 것은 언니가 아니라,  언니의 남자 친구였는데. 우리는 얼마나 많이, 미움의 상대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을까. 나 역시, 오래 그랬다.

'대니얼'은,  드라우닝 풀에 대한 역사와 마을이 감춘 비밀을 파헤치고 있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그녀는 입을 막아서도 침묵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성인 남자가 어린 소녀와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면 안 되는 거'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이 모든 것들을 '옳은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해서 전적으로 좋기만 한 사람이었을까? 계속해서 자신을 미워하는 동생에게  대화를 시도하려는 사람이긴 했지만,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잘못을 저지르고 살았다.



남자들이  끔찍하게도 여자들을 미워하는 이야기가 책 속에 있다. 전형적으로 여자를 성녀로 만들고 자신의 말을 잘 듣는다면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늙은 남자. 그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런 여자들에게는 가차 없다. 잔인하고 끔찍한 남자. 그러나 그런  남자가 비단 그 하나뿐일까?



결국,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세대가 다른 여자들이 연대한다.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희망은, 그런 식으로 찾아오는 게 아닐까. 


작가의  전작, [걸 온 더 트레인] 보다 나는 이 책이 더 좋았다. 이 책 한 권으로 '폴라 호킨스'는 여성작가만이 할 수 있는 말들을  다 해냈다. 가스 라이팅, 페미사이드, 성폭력, 연대, 가부장제, 성소수자, 성차별까지. 그리고 어긋난(혹은 지나친) 사랑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게 되는지도. 책장을 덮고 나서야 이래서 여성작가의 책을 읽어야 하는 거라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툭, 툭, 생각해야  할 것들이 떠오른다. 이 책이 그렇게 했다. 다우닝 풀로 몸을 던진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이 모든 이야기들을  작가는 풀어냈다. 



'다이애나 러셀'과 '질 래드퍼드'의 [페미사이드]를  읽다 보면 나오는 사례들이 이 책 안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실제 바람피운 게 아닌데도 자신의 오해만으로 여자를 죽이는 남자, 사랑했지만  죽이는 남자. 여성을 죽이는 끔찍한 역사는 이토록 오래 반복되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연구하고 책으로 써내는 사람들이 있고,  이야기의 힘을 빌어 그 역사를 다시 꺼내보여 주는 사람들이 있다. [페미사이드]의 결론은 어떻게 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인투 더  워터]에서처럼 희망적일 거라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세대의 여자들이 서로를 이해하며 연대하고,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고  발언하면서, 그러면서 세상은 점점 더 나아질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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