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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락방 Nov 17. 2020

무지는 죄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지음, 민음사, 2009

'박총'은 자신의 책, 《읽기의 말들》에서 속독으로 많은 책들을 읽는 것보다 여러 번 읽을 수 있는 한 권의 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때 가져온 인용문은 이것이었다.




나  역시 여러 번 읽는 책들이 있다. 심지어 여러 권이다. 그러니 나는 행복의 최대치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몇 번이나  인용하고 언급했던 줌파 라히리와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책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책들이 내 소중한 책장에 꽂혀 있다. 다니엘  글라타우어는 일 년에 한 번 이상씩은 꼭 다시 훑는 것 같다. 줌파 라히리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나의 마음이 이리저리 널을  뛰고 내가 우울할 때 아무 곳이나 펼쳐보곤 한다. 그러니까 이 책들은 내가 여러 번 읽는 책들이라는 것을 내가 알고 있는 책들인데,


오!


내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이번에 벌써 세 번째 읽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 책도 한 번 읽고 그만둔 게 아니네? 새삼 놀랐달까. 아니, 내가 이 책을, 이렇게나, 여러 번?



처음은  아주 오래전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읽으면서 딱히 재미있지 않았던 걸로 기억해서 잊고 살았는데, 2015년에, 당시의 애인과 이 책  얘기를 하면서 우리가 서로 다른 부분을 기억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거다. 그때의 나를 기억한다. 그때 나는 애인에게 크게 서운하고 실망했다. 나를 서운하고 실망하게 한,  동굴 속에 들어가게 한 일은 내게는 몹시 큰 일이었고, 그래서 잠시 잠깐 연락도 하기 싫을 만큼 내게 상처였지만, 그러나 그에게는  '아주 작은 실수', 만약 내가 그렇게 했다면 쉽게 용서할 실수였다. 그러나 내게는 너무 치명적인 아픔이었다. 나는 몹시 우울한  채로 혼자 집 밖으로 나가 극장에 가 영화를 보았고, 서점에 가 책을 샀다. 그때 산 책이 바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그리고 카페에 들어가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떤 책에는 그  책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연이 숨어있는데, 이 책이 내게는 그런 책이다. 당신과 내가 만나는 것이 운명의 흐름이었다면, 책과 내가  만나는 것도 수많은 우연이 이어준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그 당시에 연애 중이 아니었다면, 이 책에 대해 우리가 얘기하지  않았다면, 그때 그에게 서운해 내가 혼자 외출하지 않았다면, 아마 내게 이 책은 오래전에 한 번 읽었으나 별 영향은 없었던  책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두 번째 이 책을 읽게 됐고, 와.... 너무 재미있어서 깜짝 놀란 것이다. 얼마나 많은  곳에 나는 밑줄을 그었던가! 게다가 등장인물 '토마시'를 대하는 '테레자'의 마음이 너무나 나 같은 거다! 2015년에도 페이퍼에  언급했던데, 테레자는 오로지 토마시만 사랑하고 산다. 그러나 토마시는 평생을 바람피우면서 산다. 자신과 결혼한 것이 테레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많은 애인들과 육체관계 갖는 것을 도무지 포기할 수 없는 남자인 것이다. 이에 대해 테레자도 알고 있어서  테레자는 몹시 괴롭다. 매일 밤 잠드는 게 무서울 정도로 고통스러운 꿈을 꾼다. 테레자의 꿈은 테레자의 불안과 불만을 반영한다.  토마시도 테레자가 왜 그런 꿈을 꾸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바람기를 멈추지를 못한다. 계속해,  계속.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새드 스토리...



테레자는 토마시를 떠날 생각도  해서 그에게 난 떠날게, 하고 쪽지를 남겨두고 그의 곁을 떠나지만, 그가 자유롭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닷새 후에 테레자에게로  돌아간다. 돌아가서 테레자의 옆에 누워 잠들 거면서, 그럴 거면서 다른 여자들하고 바람을 피워... 에라이 써글놈아!



그리고  세 번째 읽는 지금. 두 번째 읽을 때보다 더 재미있다. 아 맞아, 이런 내용이 있었지. 어? 이런 내용이 있었나? 세 번째 읽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아아, 익숙하면서 새롭고 새로우면서 익숙하다. 2015년에 내가 쓴 페이퍼를 보니, 지금 생각하는  것들을 그때도 생각하고 있었더라. 그리고 그때는 미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도 했다.


사랑의 숙명 같은 것이랄까.

테레자는 토마시를 한결같이 사랑하고

토마시는 다른 여자들과 늘 바람을 피우고

프란츠는 사비나를 언제나 생각하고

사비나는 프란츠와 공개적으로 사귀는 것 까진 싫고...


왜  나에게는 선명히 각인될 사람이 그러나 나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가. 감정이란 게 왜 같은 크기로 서로 주고받을 수가 없나. 왜  그래서 사람들은 이토록이나 사랑을 하면서도 아파야 하나, 왜, 왜, 왜.....(무릎 꿇고 절규한다)



그리고 토마시가 바람피우는 놈인 줄 알았지만 이 책을 세 번째 읽으면서 아아, 너무했다 이놈... 하고 다시 분노한다. 




늘 바람을 피우던 그는 급기야 자신의 머리에 여자 성기 냄새를 배어가지고 들어온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계속. 아아, 이 일은 테레자를 얼마나 괴롭게 하는지!



  

새벽  1시 30분쯤에 돌아온 테레자는 욕실로 가서 잠옷을 입고 토마시 곁에 누웠다.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키스하려는 순간, 그의  머리카락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오랫동안 거기에 코를 박았다. 강아지처럼 킁킁 냄새를 맡다가 마침내  알아챘다. 여자 냄새, 여자 성기 냄새였다. (p.213)



토마시가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하고 테레자 옆에 돌아와 누울 거였다면, 그는 말끔히 그 흔적을 지워냈어야 한다. 그게 같이 자는 사람에 대한 예의다.  심지어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는 여자가 아닌가. 그런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지 못했다. 


나는  토마시가 '일부러' 씻지 않고 냄새를 배어가지고 온 건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 여자 성기 냄새 머리에 배었을 텐데, 가서  그냥 자야지, 테레자 화나게 해야지'라는 생각을 단 한 순간도, 단 1분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속상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그에게 없었다 한들, 테레자는 그 냄새를 맡았고 아팠다. 상처를 받았다. 남자의 머리에서 나는 여자의  성기 냄새라니, 우리는 그것이 어떠한 행위로부터 발생했을지 잘 알지 않는가. 토마시가 설사 '악의'를 가진 게 아니었다 해도 분명  상대는 그로 인해 아팠다.


나는 토마시가 차마 알지 못했을 거라고, 인식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티 나지 않게 하려고 속옷을 뒤집어 입었는지 신경 쓴다든가, 양말을 잊지 않게 챙긴다든가 하는 것들은 생각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었겠지만, '나의 머리에서 여자의 성기 냄새가 날 것이다' 까지는 토마시가 미처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몰랐기 때문에' 그를 용서해야 할까? 이해해야 할까?


어머 토마시야, 너 몰랐구나, 너 머리에서 여자 성기 냄새나, 그런데 네가 차마 그걸 몰랐을 테니 용서해줄게~~


가 될까? 아니. 


많은  경우 무지는 죄악이다. 토마시는 나쁜 짓을 저질렀다. 불륜 자체도 나쁘지만, 아내가 있는 상태로 애인과 섹스하고 온 행위 자체도  나쁘지만, 그것은 어떻게 흔적을 남길 것인지 차마 알지 못한 것, 그것은 죄다. 토마시는 차마 인식하지 못하는 죄를 저질렀다.  그래서 상대에게 상처를 입혔다. 테레자로 하여금 다른 여자의 성기 냄새를 맡게 했다. 



무지는 죄다.


그리고 쿤데라 역시 다른 사건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러나 나와 같은 말을 한다.



  

그리고  그는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이 알았는지 몰랐는지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는 몰랐다고 해서 그들이 과연 결백한가에 있다.  권좌에 앉은 바보가, 단지 그가 바보라는 사실 하나로 모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p.288)






많은 경우, 무지는 죄다.

무지로 인해, 나 역시도 숱하게 죄를 짓고 살았을 것이다.



무지는 죄다.



그렇게  자꾸만 다른 여자들하고 자고 들어오는 토마시를, 테레자는 왜 떠나지 못할까. 테레자 역시 토마시처럼 해보겠다고 처음 만난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지만, 그녀가 깨달은 건 자신이 그 일로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뿐이었다. 그녀가 선택한 것, 그녀가 잘할 수 있는  건 정절이었어. 테레자여.....



이 책의 절반쯤을 읽었는데, 첫 번째 읽었을  때보다는 두 번째 읽었을 때가, 두 번째보다는 지금이, 훨씬 더 많은 포스트잇을 붙이게 한다. 아아, 아니 이렇게 한 장 넘길  때마다 명문이 나오면 날더러 어쩌란 말인지... 나는 그렇게 밀란 쿤데라의 《농담》도 다시 읽고 싶다. 그리고 토마시와 테레자가  함께 죽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책 중간에 나온다) 끝까지 읽어내고 싶다. 아마 다 읽고 나면 또 할 말이 있지 않을까...



반복해 읽을 수 있는 책이 있다는 건, 정말이지 기쁨이다. 되풀이해 읽을 책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거라는 몽테를랑의 말에 나는 이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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