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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락방 Nov 13. 2020

콕콕 찍는 환한 낮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김이설 지음, 작가정신, 2020


처음 몇 장을 읽고 연애소설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 김이설 작가가 연애 소설을 쓴 건가? 단순히 여자와 남자가 만나 다정하다가  헤어지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하는데, 이런 이야기가 김이설의 것이라고? 고개를 갸웃하며 그다음 장들을 읽노라니, 그렇다면  이들이 왜 헤어졌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고, 그 이야기는 결코 당신과 나의 오해와 갈등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여자가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에 대한 이야기였고, 그 무게에 무게를 더하는 가난과 꿈의 상실에 관한 이야기였다. 시를 사랑하고 시인이 되고  싶고 어렵게 조금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 시를 공부하기도 했지만,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에게서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온  여동생과 조카들을 돌보느라 자신의 꿈을 정지시켜버린 삶에 관한 이야기였다. 돈벌이를 하지 않으므로 육아와 가사노동이 전부 여자의  몫인 것은 여자도 타당하게 생각하는 바이지만, 그러나 육아와 가사노동에 지쳐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정지해버린  것에 대해서라면 당연히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지치도록 집안일에 치어도 누구 하나 거기에 대해 고마워할 줄도 몰랐고, 그  일은 어디 가서 생색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돈벌이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녀는 집안에서 힘을 쓸 수도 없었다. 이런 삶에 치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별을 말했는데, 정작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여동생은 자꾸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니, 너의 삶을 살라고 응원을  하다가도 속이 뒤집어진다. 



인생은 길고, 넌 아직 피지 못한 꽃이다. 주저앉지 마. 엄마가 하란대로 하지도 말고. (p.117)



여자는  아버지의 이 말에 힘을 얻은 듯 보이지만, 그렇지만 나는 아버지의 이 말이야말로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주저앉지 않으면 어떻게 힘을  내야 하는지, 그러니까 주저앉지 않을 수 있도록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안은 없는데 무작정 엄마가 하란대로 하지  마라, 고 한다면, 그녀가 필사하는 동안 집안일은 누구의 몫이 되는가. 그녀가 시인이 되기 위해 한걸음 더 나아갈 동안 육아는  어떻게 되는 건데. 가사노동과 육아에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이 가사노동의 한 복판에 있는 사람에게 주저앉지 마,라고 말하는 것은,  유리천장을 겪지 않아도 되었던 남자가 유리천장 부숴버려,라고 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부숴볼까? 하면  부서지는 것이었다면 애초에 생기지 않을 것이었다.



감당하지 못한 삶의 무게 앞에  여자는 남자에게 이별을 고했으나, 그러나 계절에 한 번씩은 안부 문자를 주고받는다. 서로가 싫어서가 아닌, 지속되는 연애를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무게를 가만 보고 있노라니, 그렇다면 대체 연애란 무엇인가, 연애란 가난하지도 않고 고통도 없는 사람들의  몫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가난한 연인들은 단칸방 싱글 침대에 둘이 함께 눕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데, 그런데 그마저도  곤란해지는 것이라니, 세상에 연애하는 사람들 다들 잘 지내는지 안부가 궁금해졌다. 싫어져서가 아니니 문자를 주고받는 것도  어색하지 않고 가끔은 만나기도 하고 또다시, 재차 너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언제든 돌아오라 따뜻하게 말해주는 것이 가능하다.  연애 중에 데이트하다 헤어지기 싫어 목련 밑동만 톡톡 차 댔다던 여름밤에 대한 회상을 읽노라니, 어쩔 수 없이 박연준의 시가  떠올랐다.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박연준 지음, 창비, 2007

이별
 
                                      -박연준
 
 
 천 날의 밤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밤이었다
 그가 내게 이유를 물었다
 구두굽으로 그저 모래를 콕콕 찍었다
 모기 한 마리가 내 슬픔을 염탐하듯
 발목에 슬쩍 달라붙었다
 갑자기 머리 위로 비가 쏟아졌다
 키 작은 나무들이 금세 흠뻑 젖었다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내 이름을 부르는 다급한 소리가 발밑으로 툭,
 떨어졌다
 흐느적흐느적 빗속을 걸었다
 나무들이 일렁이며 저희들끼리 수군댔다



자고로 사랑할 때는 목련 밑동을 찍고 이별할 때는 모래를 찍는 법,

이라는 말은 없지만 내가 지금 만들었다. 천재다.


돈벌이 없는 가사노동에 지쳐 연애로부터 도망친 건 여자뿐만이 아니었다. 동생도 그랬다. 이렇게 즐거운 게 연애라니, 이런  연애는 처음이지만, 그러나 자신의 처지를 툭 까놓고 그것이 앞으로도 진행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자신의 처지를 연인에게  숨겨야 한다. 어차피 헤어질 거야, 그전까지는 조금만 즐거울게, 라니. 어른 한 명과 어른 한 명이 만나 사랑을 속삭이는 일이 왜  어떤 이들에겐 이다지도 어려워야 할까. 매일매일 즐겁고 앞으로도 즐거움을 보장하는 연애라는 건 이토록 어려운 거란 말인가. 연애는  대체 어떤 사람들이 하고 있는 건가.



김이설이 쓴 이 소설은 연애 소설이 아니다.  여자로서, 양육자로서, 무임금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마지막 구병모의 해설까지 읽노라니 이 책은 김이설이 그런 처지의  사람들에게 내미는 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이설의 소설이 언제나 그랬듯이 답답하고 우울한 현실이 꽉꽉 등장인물들을 조여버리고  있지만, 그나마 그간 써왔던 소설들 중에 가장 빠져나갈 구석이 보이는 소설이 아닌가 싶었다. 무엇보다 시를 잘 모르고 잘 읽지도  못하는 나에게 시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토로하는 등장인물을 읽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나는 시를 사랑하는 여자들이 그렇게나  좋더라.



《발레리나를 사랑한 남자》, 캐롤 모티머 지음, 신영미디어, 2016


'캐롤 모티머'의 《발레리나를 사랑한 남자》는 김이설의 소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과 나란히 놓기엔 매우 민망한  책인데, 그럼에도 꼭 함께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책은 김이설의 소설과 가장 극단의 반대편에 있기 때문이다. 책  본문에도 나오는 문장이 뒤표지에도 실려있는데, 이 할리퀸 소설의 남자 주인공은 '흑표범을 닮은 듯한 날렵한 근육질 몸매'를 가지고  있고 삼십 대 중반에 세계적인 기업의 보쓰이기 때문이다. 어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캐릭터라서, 아니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당연히 있지, 세상에 대기업들이 많고 대기업에는 반드시 보쓰가 있으니까 당연히  그런 사람 있는 거 알겠는데, 그런데 사실 내 주변에 더 많은 건 김이설 소설 속의 여자와 남자지 할리퀸의 여자와 남자가 아니란  말이야. 아무튼 모든 좋은 조건은 혼자 다 가지고 있는 남주가 나오는 로맨스야 말로 세상 흔한 설정이지만, 그런데 나는  '흑표범'이란 단어 때문에 너무 웃겨가지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흑표범.. 같은 거 뭐지? 나는 살면서 한 번도 흑표범 같다! 는  남자를 본 적이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생기면 보자마자 '흑표범 같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걸까... 흑표범 같은 남자는 으르렁대는 걸까? 나는 그렇게 흑표범.. 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책 속의 여자 주인공인  '앤디'는 발레 공연 중 부상을 당해 더 이상 발레를 할 수 없게 된다. 회복기를 거쳐 그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습소를 운영하게  되는데, 어릴 때부터 수석 발레리나만을 꿈꿔왔기에 지금 현실에 만족한다 해도 실패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가끔 자신을 후려치는데,  남자 주인공 '다리우스'는 자신이 살아갈 방법을 찾고 그렇게 살아가는 게 어떻게 실패일 수 있느냐며 그녀에게 힘을 준다. 


이  소설은 누구에게도 읽으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아 내가 이거 왜 샀지, 왜 읽고 있지'하는 생각을 수시로 하게 만들었지만,  그렇지만 나는 이런 지점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도, 누군가가 내 삶의 자세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아준다는 것, 그러니까 살아갈 방법을 찾아냈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 주는 것. 그것은 매우  중요한 거다. 책 속에서도 발레리나였던 시절의 동료가 우연히 앤디를 만나 '네 인생은 실패로구나'는 뉘앙스의 말을 하고 비아냥대는데,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향의 모습과 다른 삶이라고 해서 그것이 그 사람에게 실패의 삶일 리는 없다. 어떤 모습의 삶을 산다 해도,  설사 김이설 소설 속의 등장인물처럼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고 깜깜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해도, 이미 살고 있는 이상, 어제를  버티고 또 오늘 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삶이라면, 그것을 실패라고 누구도 말할 수 없다, 그래서는 안된다. 내 삶을 기준으로 혹은 내  이상향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실패했다고 정의 내리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될 일이다. 어쩌면 내 삶은 실패인 게 아닐까,라고 자책할 때, 그때 '너는 지금 네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내고 있는데 그게 어떻게 실패니, 결코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게다가 축복이 아닌가.



나는 그래서 내  삶에 그리고 인간 누구나의 삶에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비단 절망 속의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존재라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더 잘 파악하는데도 다른 사람의 존재는 필요하다. 나는 나를 들여다보고 나에게 말을 걸고 나를 파악하는데 그 누구보다 능숙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 해도 내가 모르는 나는 여전히 내 안에 있고 또 바깥으로 튀어나온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백개쯤 말할 수  있다 해도 내가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이천 개쯤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모르는 지점을 다른 사람들이 불쑥불쑥  얘기해줄 때마다, 나는 새로운 나를 깨닫게 되는 거다. 


고등학생 시절 친척의 결혼식장에서 아빠는 먼  친척에게 나를 인사시키시며 '제 엄마 닮아서 할 말을 다 하고 살아요'라고 했는데, 그때 나는 아빠의 그 말을 들으면서 깜짝  놀랐었다. 나는 내가 할 말도 제대로 못 하고 혼자 속으로 앓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 대학 시절에는 친구가 '너는 욕심이 정말  많은 애야'라고 했었는데, 그때도 깜짝 놀랐었다. 내가? 욕심이 많다고? 나야말로 욕심 없는 순둥순둥 한 사람인데? 게다가 몇  해전에 친구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친구들은 내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아니야, 나는 여행 좋아하는 사람  아니야, 나는 그냥 호텔이 좋고 조식이 좋고 낯선 곳이 좋고...라고 대응했더니 친구들은 '그게 여행을 좋아하는 거야!'라고  했더랬다. 들을 때마다 갸웃했던 다른 사람들의 나에 대한 말들은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면 언제나 나의 새로운 면이었음을 알게  됐다. 내가 모르던 면. 내가 나를 더 잘 알기 위해서라도 삶에 다른 사람의 존재는 필요하다.'캐롤 모티머'는 현실에 존재 불가한  아니 그보다는 내가 만날 가능성이 불가한 흑표범 남자를 등장시켜 뭔가 으앗 못 읽겠다... 하는 소설을 써냈지만, 그러나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다른 인간을 그려낸 것은 무척 좋았다. 나의 어떤 면을 알아봐 주는 사람의 존재는 너무나 소중하다. 쓰다 보니 가슴이  아프네.






사랑이  시작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사랑이 죽어가는 것도 막을 수 없는 것 같다. 김이설의 소설 속에서 여자가 시를 사랑하는 그  마음을 자꾸자꾸 들여다보고 들키게 되는 것은 그녀가 그러자고 마음먹어 된 것은 아니었다. 그 사랑이 사람에 대한 것이든 혹은  다른 무엇에 관한 것이든, 나는 사랑이 커져가는 걸 지켜보는 일이 너무 좋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 어떤 대상에 대한 애정이  싹튼다는 것, 그것은 천천히 진행되는 것일 수도 있고 느닷없이 진행되는 것일 수도 있다. 캐롤 모티머의 소설 속에서 앤디는 자꾸만  다리우스를 쳐다보게 되는 자신을 어쩌지를 못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사랑하는 것에 대해 많이  말한다. 숨기고 싶어 하면서도 그 숨기고 싶은 마음까지도 말하게 된다. 내가 지금 관심 있는 게 사랑이라면 사랑에 대해 언급할 것이고,  내가 지금 열중하는 게 재이슨 스태덤이라면 재이슨 스태덤에 대해 지겹도록 말할 것이다. 내가 시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자꾸 시를  들여다볼 것이고, 이 마음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또 시를 좋아하는 사람을 찾게 될 것이다. 내가 알라딘에 있는 이유는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건 아마도 연예인의 팬클럽과 다르면서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 무조건 좋아서  팬클럽에 가입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마음껏 말해도 지겹다고 그만하라고 말하지 않을  사람들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팬클럽에 가입하게 되는 건 아닐까. 나는 어떤 말들을 상대가 이제 더 이상 듣기 싫어할까봐 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말들 몇 개쯤은 가슴에 품고 사는 거 아닐까.




앤디가  엄청난 재벌 흑표범 남자를 만나 사랑에 성공하는 이야기는 손에 닿을 수 없는데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안부를 묻는 일은 손에 닿을 수  있는 일이라서, 그저 손을 내밀면 되는 일이라서 좀 쓰리다. 느닷없는 사랑이 느닷없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일은 가끔  감당이 안돼. 도대체 이게 무슨 맥락의 페이퍼이길래 이야기가 이런 식으로 끝나는지 영문을 모르겠네? 퇴근 후에는 소주나  마셔야겠다. 에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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