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볼까요, 아이슬란드? - 여행 4일 차
아이슬란드 여행을 계획하며 꼭 해보고 싶었던 것 중의 한 가지가 바로 빙하트레킹이다. 빙하에 대한 호기심에 더해서 세상 어디서도 경험해 볼 수 없는 특이한 체험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빙하트레킹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아주 중요한 이유가 생겨버렸다. 바로 영화 ’ 인터스텔라‘ 때문이다. 나의 조카는 이 영화의 광팬이다. n차 관람에 만족하지 않고 영화의 VOD 평생 소장권까지 구매해 영화를 보고 또 본 찐 팬이다. 그 영화에 등장하는 만박사 행성의 촬영지가 바로 아이슬란드의 스비나펠스 빙하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잘못된 정보로 촬영지가 스카프타펠 빙하인 줄 알았다. 아마 스비나펠스 빙하가 스카프타펠 국립공원 지역에 속해서 그런 오해를 했던 게 아닌가 생각하는데 아무튼 그로 인해 난 스카프타펠 빙하 트레킹을 하기로 하고 예약을 했다.
내가 예약한 빙하트레킹 상품명은 스카프타펠 빙하 트레킹이었고, 바우처에 집결지도 스카프타펠이라 되어 있었다. 스바르티포스를 보러 가기 전 빙하트레킹 사무실이 두 곳이 있는 것을 확인한 나는 당연히 그 두 곳 중 하나가 내가 예약한 여행사일 것이라 생각했고 스바르티포스에 다녀와 그중 한 곳에 들어가 나의 바우처를 보여주며 내가 예약한 상품이 어느 회사인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직원이 뜻밖의 대답을 한다. 내가 예약한 여행사는 10분 정도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10분을 이동하면 스카프타펠 국립공원 지역을 벗어나게 된다. 하지만 나의 바우처에는 집결지가 스카프타펠이라 되어 있었다. 그래서 직원에게 그곳이 스카프타펠 공원구역 밖인지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공원 구역 안이며 주차 결재를 할 필요가 없이 그냥 이동하면 된다며 가다 보면 보인다는 업체 간판 이름을 알려주었다. 일단 나와서 알려준 방향으로 가는데 고작 1~2분 정도 가니 주차구역이 끝나고 스카프타펠 국립공원 지역 외곽으로 나가는 것이다. 다시 차를 돌려 두 번째 주차장에 주차한 후 약간을 걸어 들어가니 첫 번째 주차장과 연결이 되고 그곳에는 여행자 안내센터가 있었다. 거기에서 물어보니 내가 예약한 회사는 그곳에서 약 20km가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무려 20km나! 당연히 스카프타펠 국립공원 지역 밖이니 주차 결재 후 나가야 한다는 것도 더불어 알려주었다. 시간은 이미 1시 50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집결시간은 이미 지나 있었지만 아직 출발은 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직원에게 내비게이션에 위치를 찍어줄 것과 우리가 지금 가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전화해 줄 것을 부탁하니 둘 다 모두 흔쾌히 들어주었다. 그리고는 바로 출발했다.
정말 어마어마한 속력으로 차를 몰았다.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지만 앞뒤 잴 겨를이 없었다. 그야말로 분노의 질주였던 것이다. 그런데 차를 달리면서도 계속 불안했다. 20km가 먼 거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달려가도 황무지만 이어질 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안내해 주었던 여행사 직원처럼 안내센터 직원도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에 도착지점이 가까워지자 저 멀리 컨테이너 박스가 하나 보이기 시작했고 조금 더 다가가니 이내 업체의 간판이 보였다. 그제야 겨우 안심이 되기 시작했고 그 장소에 도착하니 정확히 2시였다.
솔직히 굉장히 화가 났다. 의상 대여비까지 해서 수십만 원에 달하는 엄청나게 비싼 프로그램이었다. 바우처에 엉뚱하게 스카프타펠에서 출발한다고 해놓고서는 나에게 그 어떤 사전 연락도 없었다. 만일 트레킹을 못했다면 실망감에 남은 여행 전체까지 영향을 줘 우리 여행을 망쳐버렸을 것이다. 자칫했으면 돈까지 수십만 원을 그냥 날릴 뻔했고, 또 여기까지 목숨 걸고 운전해야만 했다. 화가 나 있는 나를 진정시킨 건 역시 나의 조카였다. 어쨌든 왔으니 즐기자고. 백번 지당한 말씀이다. 난 곧바로 평정심을 되찾고 빙하트레킹에 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