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볼까요, 아이슬란드? - 여행 4일 차
이 트레킹이 엉성한 건 거기서 그친 게 아니었는데 우리가 트레킹 할 빙하는 스카프타펠이 아니라 ’ 떨어지는 빙하‘였다. 가이드가 영어로는 falling down glacier, 아이슬란드어로는 ooooo이라 했으니 어쨌든 이름은 떨어지는 빙하가 젤 적당한 것 같다. 아이슬란드어 이름은 여러 번 들었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트레킹 시간은 대략 한 시간 반 정도인데 차량주차 후 빙하까지 걸어가는 시간, 거기서 안내교육을 받는 시간, 그리고 걸어 돌아오는 시간 등을 빼면 실제로 얼음 위에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얼음 위에서도 빙하의 시작 부분에서 조금만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이라 거의 빙하트레킹 맛보기만 하고 끝이 나 버린다. 그러니 프로그램은 실망스럽다. 그렇지만 빙하트레킹 경험 자체는 정말 경이로웠다. 빙하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도, 또 빙하 위에 올라서 있는 그 순간도 정말 비현실적이게 느껴졌다.
가이드 말로는 우리가 트레킹 하는 이런 빙하를 아들 빙하라 한다 했다. 물론 바트나요쿨이 엄마 빙하이다. 바트나요쿨 몸통에서 갈라져 나온 빙하라서 아들빙하라 하는데 원래는 서른몇 개가 있던 것이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며 갈라진 빙하가 더 많아져 지금은 48개 정도라고 했다. 우리가 서있던 그 빙하도 원래는 하나였는데 두 개로 갈라져 있는 게 보였다. 지구온난화를 실감할 수 있는 곳이다. 아이슬란드 빙하는 흰색도 푸른색도 아니었다. 화산재가 섞여 거무스름 했다. 하지만 내가 딛고 서있는 바로 발아래 빙하는 하얗게 보여 '나 빙하 맞아요'하고 항변하고 있었다. 정말 빙하 초입부분만 보고 되돌아 온 탓에 TV에서 보던 빙벽 등반이라던지 거대한 크레바스 관찰같은 건 전혀 하지 않았다. 대신 액티비티로 바이킹 물 마시기라는 것을 했다. 빙하트레킹에 사용하는 망치같이 생긴 도구를 바닥에 고정시킨 다음에 거기서 푸시업을 하면서 빙하가 녹아 흘러내리는 물을 마시는 것인데 가이드가 최고 기록이 43개라면서 남자들의 승부욕을 슬슬 자극하면서 해보라는 것이다. 아무도 안 하길래 내가 먼저 나서서 다섯 개를 했더니 이내 다들 시도해 보았다. 그런데 이탈리아 아저씨 한분이 승부욕이 발동되셔서 팔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계속하시는 것이다. 부정시도도 여러 번 있었는데 슬쩍 눈감아주고 신기록을 축하하는 박수를 쳐 주었다. 잠깐 주어진 자유시간에 가이드와 사진을 같이 찍은 후 가이드에게 인터스텔라의 촬영지를 아는지 물어보았다. 대답은 역시 사전 검색으로 파악한 대로 스비나펠스요쿨이었다. 스비나펠스는 전망포인트가 있다. 이제 진짜 만박사 행성을 만나보러 갈 차례이다.
빙하트레킹을 마친 후 스비나펠스로 이동하려고 차를 탔더니 자동차 앞유리가 조금 깨져 있었다. 아까 과속할 때 자갈이 튀어서 그런 것 같다. 순간 기분이 갑자기 좋아졌다. 첫날 보험에 바가지를 썼지만 어쨌든 헛돈 쓴 게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나 너무 단순한가? 스비나펠스요쿨 주차장에 도착하면 정면에 엄청나게 큰 빙하가 보이는데 그건 스카프타펠이다. 오른편으로 나 있는 길을 한 10분 정도 올라가면 또 다른 빙하가 보이는데 이것이 스비나펠스요쿨이다.
멀리 돌아가면 스비나펠스요쿨로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 일단 전망지점에서는 앞에 빙하가 녹은 호수가 있어서 호수 건너편으로 빙하를 감상해야 한다. 검은색 화산재로 뒤덮인 채 여기저기 갈라진 거대한 얼음덩어리. 이렇게 비현실적인 풍경이니 우주 이외에 또 무엇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여긴 지구가 아니라 그냥 만박사 행성인 것 같았다. 호수에 가까이 가니 유빙이 호수가까지 떠내려와 있었다.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을 살짝 떼어내어 맛을 보았다. 그냥 얼음이었다. 그렇지만 내 평생 잊지 못할 농축된 천년의 시간이 내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조카가 큰 발견을 했다. 우리가 이제껏 야생 블루베리로 알고 먹었던 열매가 블루베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깜빡 속을 수밖에 없을 만큼 비슷하게 생겼는데 자세히 보면 구별이 되었다. 그제야 맛보게 된 진짜 야생 블루베리. 이제껏 먹었던 블루베리가 기대와 달리 맛이 별로였던 이유를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역시 블루베리는 야생이지!!
이제 마지막 목적지인 호프스키르캬로 간다. 이곳은 잔디로 지붕을 덮어 난방에 활용한 아이슬란드 전통 가옥 방식의 교회이다. 방송에서 양이 지붕 위에 올라가 풀을 뜯어먹는 걸 본 적이 있는데, 난방과 방목을 한꺼번에 해결하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이다. 현지인들의 지혜가 돋보이기도 하지만 굉장히 예쁘기도 하니까 아이슬란드에 간다면 한 번쯤은 꼭 보고 오면 좋을 것 같다.
이날 일정은 끝이 났지만 숙소까지 또 먼 길을 달려야 한다. 다음날 첫 일정인 요쿨살론을 지나서도 30km를 더 가야 하는 먼 길이다. 가는 길은 바트나요쿨의 남쪽을 지나가는데 어느 순간 모퉁이를 돌아서면 갑자기 거대한 빙하가 바로 앞에 나타난다. 하루종일 빙하를 그렇게 많이 봤지만 여전히 놀라운 광경이다. 그리고 요쿨살론을 지나간다. 빙하가 녹아 형성된 호수에 유빙이 둥둥 떠다니는 아름다운 호수이다. 보는 순간, 바로 숨이 턱 막힐 만큼 아름다운 호수이다. 내일 이곳에서 체험할 수륙양용 보트 체험이 더 기대가 된다. 요쿨살론에서 숙소까지가 30km이니 여전히 갈 길은 멀었다. 다만 이때부터 길이 빙하에 가깝게 다가서기 때문에 가는 내내 거대한 빙하가 따라붙는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빙하의 매력에 흠뻑 빠져 피곤한지도 모르고 운전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