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볼까요, 아이슬란드? - 여행 5일 차
해안선을 따라 내륙 깊숙이 들어온 길이 반대편 길로 돌아 나가는 곳에서 산속으로 올라가는 비포장 도로가 나오는데 우리는 여기서 이 비포장 도로를 타기로 했다. 이제 링로드에서 벗어나 하이랜드로 진입하는 것이다. 아이슬란드의 비포장 도로는 도로포장 할 때 아스팔트를 누르는 거대한 통바퀴 차량 같은 걸로 편편하게 다지는 공사를 하기도 했다. 여행 중에 그런 차량을 두 번 만났다. 하지만 대부분의 구간은 전혀 정비가 되지 않고 있었는데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구덩이였다. 거의 전구간에 걸쳐 길 곳곳에 구덩이가 파여져 있어서 마치 모굴스키 슬로프를 차를 타고 가는 느낌이었다. 이 비포장 도로를 운전할 때는 체력소모도 엄청났다. 도로의 굴곡에 따라 온몸에 전해지는 진동도 상당했던 데다 핸들을 잡은 손에도 힘이 엄청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프로드 질주는 모든 남자들의 로망이 아니겠는가! 흙먼지 풀풀 날리며 질주를 시작했다. 길은 금방 고도를 높여 산중턱까지 올라갔는데 길옆에 작은 공터가 있어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시루떡을 쌓아 놓은 듯 층층이 퇴적층이 쌓여있는 거대한 산이 양옆으로 도열한 가운데 뒤로 돌아서면 피오르의 해안선이 드넗게 펼쳐져 있다. 신의 손길은 이곳에도 머물다 간 듯했다.
공터 끝에는 퇴적암이 드러나 있었는데 곳곳에 공룡 발자국의 흔적도 볼 수 있었다. 그 퇴적암 오른쪽으로는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보이는 데 그 길 끝에 예쁜 폭포 하나가 산속에 폭 파묻혀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수영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럴 수가! 산속의 이름 모를 폭포 소에서 수영하는 건 내 오랜 꿈이었는데, 이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분들이 계셨다. 부러웠다. ‘그럼 너도 하면 되잖아 ‘라고 묻는다면 난 아직 수영을 할 줄 모른다. 그래서 나의 꿈은 조금 더 구체성을 띠게 되었다. 그냥 이름 모를 폭포가 아니라, 딱 이곳에서 언젠가 수영을 해 볼 것이다. 이제 나의 로망은 이곳이다.
길은 계속해서 산을 올라가다 어느 순간 오르막이 끝나고 평지가 나타난다. 이제 고원지대로 진입한 것이다. 드넓게 펼쳐진 고원은 관목지대로 키 작은 나무와 풀이 무성하게 자라 들판을 뒤덮고 있었고 길 옆으로는 협곡이 있어 여전히 빼어난 경치를 자랑했다. 그렇게 높이 올라왔는데 산 위쪽에 이렇게 넓은 땅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고, 산 아래쪽에서와는 완연히 다른 식생과 풍경이 아이슬란드의 매력을 더했다. 고원에서도 낮은 구릉지대가 끊임없이 나왔는데 어느 구릉을 지나면 곧 나무가 없이 풀만 자라는 초원이 다시 펼쳐졌고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인공적으로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하려 한 모습도 보였다. 식생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동부지역의 비교적 큰 도시인 에이일스타디르에 거의 다다를 무렵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에이일스타디르에 접어들기 직전 좌회전 해서 호수 쪽으로 접어들면 호수를 끼고 달리는 도로 양옆으로 조경이 예쁘게 되어 있고 숲 속 군데군데 예쁜 숙소들도 지어져 있다. 이곳은 마치 청평 근처의 한강변을 달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이슬란드는 이런 매력까지 품고 있다.
이제 고난의 강행군의 마지막 목적지 헨기포스가 남았다. 호수 거의 끝부분에 다다르면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다리가 나오고 이를 건너가면 금방 헨기포스 주차장이 나온다. 헨기포스는 여기서부터 걸어서 한 시간가량 등산을 해야 볼 수 있는 폭포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기포스를 찾는 사람은 굉장히 많았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때문에 날씨는 상당히 쌀쌀했다. 등산을 해서 산 위로 올라갈수록 건너온 호수의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지기 시작했는데 호수 건너편의 산등성이에 구름이 걸려있어 선경을 보는 듯했다.
여행 전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헨기포스에 가기 전에 폭포가 하나 더 나오는데 사람들은 대체로 이 폭포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어느 정도 오르다 보니 정말 약간 평범한 모습의 폭포가 하나 나타나길래 이것이 그 폭포인가 보다 하고 다시 올랐는데 얼마 안 가 또 다른 폭포가 하나 나타났다. 그런데 이 폭포, 대수롭지 않은 폭포가 아니었다. 그 어떤 폭포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대단한 이 폭포의 이름은 ’ 리트라네스’였다. 이 폭포를 특별하게 만들어 준 건 다름 아닌 주상절리였다. 주변이 온통 주상절리로 이루어진 협곡사이로 떨어지는 폭포는 때문에 자연스럽게 스바르티포스가 생각이 났다. 하지만 스바르티포스가 예쁘게 병풍처럼 둘러싼 단아한 조형미의 주상절리 폭포라면 이 폭포를 둘러싼 주상절리는 거칠고 거대했다. 이런 걸작을 어떻게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을까? 너무 흔해서 아이슬란드 폭포 디스카운트인가? 이 폭포는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비 때문에 온통 진흙탕인 등산길이 여간 고역스러운 게 아니었는데 가끔씩 설치된 나무데크 덕분에 그나마 길이 조금 수월했다. 등산로 끝부분에 거의 다다를 무렵 거대한 바위덩어리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는데 나무데크를 박살 낸 채로 그대로 꽂혀 있는 집채만 한 돌덩이가 한둘이 아닌 걸로 봐서는 산사태가 자주 나는 것 같았다. 내가 있을 때 저런 돌이 굴러내려 온다고 생각하니 정말 아찔했다. 헨기포스는 아직 저 멀리에 있는데 등산로는 끝이 나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워낙 거대한 폭포라 너무 가까이 가는 것보다는 조금 멀리서 바라봐야 전체적인 모습이 눈에 잘 들어오겠지만 여긴 너무 먼 것 같았다.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등산로를 열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나무 펜스를 넘어서서 계속 가기도 했지만 외국에서 어글리 코리안이 되긴 싫었다. 출입통제선 앞에는 나무 벤치가 있어서 헨기포스를 앉아서 쉬며 감상할 수 있게 해 놓았다. 붉은색 퇴적층 절벽을 배경으로 떨어지는 이 폭포는 아직 수백 미터 멀리 떨어져 있지만 여기서도 그 거대한 위용이 실감 났다. 그 명성만큼 대단한 걸작이었다. 멀리서 볼 수밖에 없는 아쉬움을 달래준 건 칠레에서 온 한 여행자였다. 드론을 날리고 있길래 보여달라 요청했더니 흔쾌히 찍은 영상을 보여주었다. 생각 외로 영상이 멋져서 탄성을 좀 질렀더니 이분 오히려 신이 나셔서 여러 영상을 보여주셨다. 덕분에 좋은 경험을 했다. 미국에서 온 네 자매 부부팀은 올라오는 내내 우리랑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서 올라왔다. 우리 옆에서 견과류를 드시다가 권하시길래 감사하게 얻어먹었더니 이참에 일정도 물어보신다. 내일은 스투드라길 협곡에 갈거라 했더니 마침 일정이 똑같다 하며 반가워하셨다. 인연이 있으면 내일 또 보자며 헤어졌는데 아쉽게도 더 이상의 인연은 없었다.
내려오는 길에 조카의 새로운 재능을 발견했다. 우린 여행 다니면 어디든지 돌탑을 쌓고는 하는데 아이슬란드에서도 이미 핌뵈르두할스와 레이니스피아라 등 몇 곳에 돌탑을 남겨놓고 왔다. 여기서도 돌탑 하나씩 쌓아두고 가기로 하고 대략 5~6층 정도의 돌탑을 쌓았다. 그리고 조카의 작품을 보러 갔더니 조카가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아래층에 큰 돌을 두고서는 윗부분에 돌을 뾰족한 면으로 세워서 돌탑을 만들어 놓았다. 조형미와 대단한 기술력이 합쳐진 걸작이 한편 탄생한 것이다. 단언컨대 앞으로 이곳을 여행하는 모든 여행자들이 조카의 돌탑을 보고 감탄하고 지나갈 것이다.
힘든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서니 시간은 벌서 8시가 넘어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먼저 끼니를 해결해야 해서 식재료를 사기 위해 마트로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마트가 다 문을 닫은 것이다. 아이슬란드 마트는 저녁 7시 내외로 영업을 종료한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퍽 난감한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가지고 있던 비상식량들을 총동원해서 어찌어찌 해결은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