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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내리는창가 Aug 18. 2023

주상절리, 어디까지 가봤니?

떠나볼까요, 아이슬란드? - 여행 6일 차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링로드는 아이슬란드 1번 도로를 말하는 것이다. 전날 하이랜드 진입으로 잠시 이 링로드를 벗어났다가 에이일스타디르에서 다시 링로드로 진입하였다. 대략 30여분을 달리다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인 스투드라길 협곡을 가기 위해 다시 링로드를 왼편으로 벗어나서 비포장 도로로 진입을 하는데 이곳은 F로드이다. 아이슬란드 도로에는 우리나라처럼 도로번호로 이름을 대신하는데 내륙의 험한 비포장 도로에는 번호 앞에 F가 붙는다. 험하고 거친 아이슬란드 내륙 도로의 상징인데 이번 여행 중 험한 도로를 여러 곳을 다녔지만 그중 f로드는 스투드라길 구간이 유일했다. 웬만해서는 f로드로 지정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만큼 위험하고 거친 길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다소간은 포장도로가 이어지다 곧 비포장 도로가 나오는데 비포장 구간에 진입하자마자 아찔한 경사의 산길을 올라가야 한다. 차가 한 대씩 겨우 교행 할만한 넓이의 도로는 옆에 안전 난간 같은 것은 아예 없다. 그런데 그 옆은 바로 천길 낭떠러지이다. 시작부터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산등성이 중간지점에 오르면 그때부터는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길인데 길옆이 낭떠러지인 건 변함이 없다. 게다가 높이는 자꾸만 높아져 산 아래가 아득히 멀어진다. 갈 때는 도로 안쪽이라 그나마 위험한 느낌이 없지만 올 때는 바로 낭떠러지 옆을 운전해야 되기 때문에 극도로 조심해서 운전해야 할 것 같았다. 스투드라길 협곡을 지나 온 강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가며 큰 협곡을 형성하는데 길은 서쪽 산등성이 중간지점 정도 높이에서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간다. 크고 힘 있게 쭉쭉 뻣어나간 산세는 그야말로 대자연 그 자체이다. 얼핏 단조로워서 평범해 보일 수 있는 길이지만 규모가 뿜어내는 위세에 눌린 데다 아찔한 높이의 산길을 달리다 보니 새삼 아이슬란드의 자연에 감탄을 하게 된다. 

스투드라길 협곡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스투드라길 협곡 전망대를 목적지로 설정하게 된다. 험한 길을 가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포장도로가 나오고 이내 작은 마을이 하나 나타나는데 왼편으로 마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갈림길이 나오지만 협곡 전망대는 거기서 곧장 4.5km 정도 비포장 도로를 더 가야 나온다. 이윽고 스투드라길 협곡 전망대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서 접한 이곳의 날씨는 어마어마했다. 이곳은 아이슬란드 섬의 북부 지역인 데다 고도까지 높아서 그런지 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9월에 맞이한 영하권의 추위라 더 춥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북극의 냉기가 이런 걸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엄청난 추위였다. 옷을 단단히 챙겨 입고 전망대를 향해 걸어갔다. 

주차장에서 협곡 아래쪽으로 꽤나 큰 규모의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었고 거기를 한참을 걸어 내려가야 했다. 험한 길을 헤치고 기나긴 계단을 내려가 드디어 마주한 스투드라길 협곡. 

명불허전이란 이런 것인가! 이곳이 관광 명소로 각광받은 지는 비교적 오래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워낙 내륙 깊숙이 있어 접근성이 좋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한번 보기만 한다면 누구나 인생 최고의 경험 중 하나로 꼽을 수밖에 없을 만큼 아름답고 신비로운 경관을 가진 곳이다. 협곡 양쪽으로 주상절리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데, 모양도 아주 뚜렷하고 그 길이 또한 몇십 미터에 이를 만큼 규모도 상당하다. 

이곳 또한 SNS 성지인데 특히나 주상절리협곡 위에 올라선 모델을 협곡 아래쪽에서 사진 찍는 것이 굉장히 유명하다. 그런데 그 사진을 찍으려면 전망대 건너편 협곡으로 건너가야 한다. 이 사실은 여행 전에 여러 블로그들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정확하게 건너편 협곡으로 건너가는 방법을 알려준 블로그는 없었다. 적어도 내가 정보를 취합했던 몇몇 블로그에서는. 그중 한 블로그는 그냥 옆에 나 있는 다른 길로 가야 된다 정도로만 언급을 해서 난 당연히 전망대 근처에 건너가는 다른 길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깊은 협곡 건너편이다 보니 다리가 아니고서는 길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다 협곡에서 올라오는 여행자들을 만나 건너편으로 건너가는 방법을 물어보기도 했는데 다들 모른다고 했다. 전망대에서 보면 협곡 상류 쪽 저 멀리로 다리의 아취 상단이 하나 있는 게 보이는데 옆에 있던 아르헨티나에서 온 여행자에게 물었더니 그 다리는 협곡을 건너는 다리가 아니라고 했다. 나중에 확인한 사실이지만 이 협곡으로 흘러드는 지류가 상류 쪽에 있는데 그 다리는 지류에 설치된 다리였다. 

이 분도 확실하게는 모르지만 차를 타고 대략 20분 정도를 가면 반대편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주차장으로 다시 올라오며 지도를 검색해 보니 아르헨티나 여행자의 말대로 강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니 건너편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그리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계단을 올라 주차장에 다다르니 좀 전에 내려가면서 건너편으로 건너가는 방법을 물어보았던 한 여행자가 방법을 알아내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고마울 때가!! 역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해결책도 같았다. 건너편으로 가려면 협곡을 따라 하류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    

오늘 길에 잠시 나왔던 포장도로에서 마을로 진입을 하면 협곡이 좁아진 부분에 작은 다리가 하나 나오는데 다리를 건너기 전에 주차장이 나온다. 이곳에 주차를 해도 되지만 다리를 건너 2km 정도를 더 들어가면 또 다른 주차장이 나온다. 안쪽 주차장에서도 약 2km 정도를 더 걸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안쪽까지는 차를 타고 들어가는 것이 좋다. 이것은 걷는 게 힘들다는 이유도 있지만 주변에 화장실이 없어 빨리 그 지역을 벗어나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시간 단축을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안쪽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협곡을 향해 난 길을 걷다 보면 곧바로 폭포가 하나 나타난다. 바로 스투드라길 폭포이다. 폭포는 역시 주상절리로 이루어져 있다. 스투드라길 협곡의 애피타이저 같은 느낌이랄까!  규모가 스바르티포스와 비슷한 데다 둘 모두 주상절리 폭포여서 자연스레 두 폭포를 비교하게 된다. 스바르티 포스가 주상절리를 병풍처럼 두른 폭포라면 스투드라길 폭포는 주상절리 사이를 비집고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폭포이다. 명성이야 스투드라길 폭포가 스바르티포스에 한참 못 미치지만 아름다움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발길을 돌려 스투드라길 협곡 주상절리 구간으로 향한다. 길은 꽤나 멀어서 트레킹을 하는 느낌이다. 협곡을 따라서 길이 이어지다 보니 트레킹을 하며 협곡을 내려다볼 수 있는데 전망대가 있는 구간에 다다르기 전에 이미 협곡 양옆으로 주상절리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이제부터는 협곡 가장자리까지 다다를 수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많이 다녀 풀이 죽어 길이 난 곳이 여럿인데 어디를 가든 멋진 사진 배경을 제공해 준다.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예쁜 풍경이라 사진을 남기지만 그래도 마음은 바빠진다. 이미 저 아래에 그 유명한 주상절리 기둥 바위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직접 마주한 스투드라길 협곡의 주상절리 기둥바위는 정말 이 세상의 풍경이 아닌 듯했다. 신비스럽다는 말 외에 또 어떤 형용사로 표현할 수 있을까! 협곡 양쪽을 가득 채운 주상절리들은 직선으로 쭉쭉 뻗어 나가는가 하면 유려하게 곡선으로 물결치기도 했고, 웅장하면서도 섬세했으며, 정형적이다가도 뒤틀리기도 했다. 이곳을 봤다는 건 내 인생 최고의 행운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주상절리 기둥바위 앞에는 약간 평평한 너럭바위가 있는데 트레킹 길에서 주상절리를 계단 삼아 그곳으로 내려갈 수 있다. 아래로 내려가면 대략 10미터 정도 높이의 주상절리 기둥이 우뚝 솟아 있는데 그곳 사진을 볼 때마다 대체 저기에 어떻게 올라갔을까 하고 늘 궁금했었다. 근데 올라가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기둥바위 꼭대기에서 뒤로 약 30m가량을 가면 트레킹로와 맞닿아 있다. 트레킹로를 따라가다 그냥 그리로 걸어가면 끝! 사진 밖의 숨겨진 비밀은 생각보다 허무했다.

북극한파 속에서도 꽤 긴 시간을 거기서 보냈다. 너무 추웠지만 쉽사리 발걸음이 돌려지지 않았다. 모든 게 아름다웠지만 딱 한 가지 아쉬웠던 게 있다. 요 며칠 동안 비가 많이 내린 탓에  물 색깔이 회색빛으로 흐렸다. 옥색 빛깔의 강물이었다면 협곡이 더욱 아름다웠을 텐데. 아쉽지만 이 역시 언젠가 다시 보게 될 날을 기약하며 재방문의 동력으로 남겨 둘 것이다. 주상절리 구간을 지나서도 길은 상류로 계속 이어지는데, 주상절리 구간이 워낙 신비스러운 탓에 상류로 계속 올라가면 뭔가 또 다른 보물이 숨겨져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트레킹을 이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의 제약으로 이번에는 더 가지 못했지만 언젠가 다시 아이슬란드를 찾게 된다면 그땐 상류로 더 올라가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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