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내리는창가 Aug 18. 2023

천국일까요, 지옥일까요?

떠나볼까요, 아이슬란드? - 여행 6일 차

데티포스 서쪽 주차장에 내려 폭포 쪽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나 있는 갈래길이 있는데, 이곳은 셀포스로 가는 길이다. 멀지 않은 곳에 셀포스라는 또 다른 유명한 폭포가 있는데 이곳도 원래는 가볼 계획이었다. 그런데 아직 일정이 많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시간이 벌써 오후가 늦어져가고 있다 보니 시간의 압박이 상당했서 데티포스만 보고 나가기로 결정했다. 폭포 가까이 전망대로 도착하니 폭포에서 튀어 오른 물보라가 한여름 태풍에 내리는 비보다 더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서쪽이 폭포를 조망하기가 더 좋다고 했는데 눈조차 뜰 수 없을 만큼 물보라가 세차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도 폭포에 집중하고 눈에 담고 있는데 먼저 온 한 무리의 일행이 돌아 나갔다. 나보다 뒤에 온 아이들은 그래도 눈을 제대로 뜰만한 곳에서 그 사람들과 마주쳤는데 우리랑 빙하트레킹을 함께 한 중국인 남매들이었다고 한다. 순간 서로 어색했지만 그래도 반가웠는지 나한테 와서는 가서 말 걸어 보자고 했다.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긴 했지만 폭포를 제쳐두고 가서 말할 수는 없었다.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겠지. 데티포스를 더 보려고 했지만 얼마못가 물세례에 항복하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복병이었다. 그렇게 약간은 허무하게 데티포스와 이별을 고해야 했다. 나오다 보니 올 때는 등 뒤편이라 보이지 않았던 셀포스의 모습이 저 멀리 보였다. 한 일이십 분이면 갈 수 있을 거 같은데 시간이 모자라는 게 너무 아쉬웠다. 그렇지만 작게나마 셀포스를 보긴 했다. 물론 다음엔 꼭 가까이서 볼 것이다.     

다음 목적지는 크라플라 화산이다. 크라플라 화산은 주변이 지열지대라 많은 지열발전소가 있고 특히 화산 분화구에 있는 비티 호수가 아주 유명하다. 둘째 날에 보았던 캐리드 분화구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규모가 더 크고 삭막한 화산지대에 옥빛 호수여서 좀 더 신비스러운 모습을 연출한다. 특히 여행프로그램에서 아주 멋지게 소개가 되어서 우린 상당히 기대하고 있던 곳이다. 지나가는 길에 지열발전소가 대규모로 들어서 있어서 화산지대임을 실감할 수 있다.

비티호수 주차장은 분화구 정상 둘레 중 가장 낮은 곳 옆에 마련되어 있어서 걸어서 조금만 올라가면 호수가 보인다. 그곳에서 분화구 정상 둘레를 걸어 올라가서 한 바퀴 돌며 호수를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은 분명히 멋진 곳이다. 그런데 두 가지 문제 때문에 우리가 기대했던 것만큼 황홀한 풍광은 아니었다. 첫 번째는 날씨가 문제였다. 우중충한 날씨 때문인지 호수가 대단히 예뻐 보이지는 않았다. 모습은 그대로지만 날씨 탓에 색이 뿜어내는 오묘한 느낌이 없으니 매력이 한층 반감되어 버린 것이다. 두 번째는 호수 바로 뒤에 생긴 지열발전소 였다. 발전소에서 끊임없이 뿜어내는 수증기와 굉음은 호젓한 여행지의 정취를 앗아가 버렸다. 그런데 비티가 지옥이라는 뜻을 가졌다 하니 이날의 스산한 느낌은 어쩌면 이 호수가 가진 본래의 모습을 더 잘 드러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너무 예뻐서 사람들이 천국으로 착각할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이곳이 천국일지 지옥일지는 각자 판단하기로 하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차로 돌아오니 차가 한 대 주차장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우리 차 가까이에 주차한 그들은 우리가 차에 타고나니 차에서 내렸는데 바로 그 중국인 남매들이었다. 우리랑 뭔가 타이밍이 맞지 않은 것 같다.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겠지. 

내려오다 보면 이내 또 다른 주차장이 하나 나온다. 여긴 검은색 화산지대로 들어가는 입구인데 화산지대 안쪽 깊숙이 들어가면 혼자 우뚝 선 검은색 화산분화구를 볼 수 있다. 여긴 조카가 인터스텔라 마지막 엔딩장면을 촬영한 곳으로 짐작하는 장소 중 하나여서 트레킹을 해보고 싶었지만 역시 시간이 문제였다. 대략 5분 정도만 걸어 들어가서 광활하게 펼쳐진 화산지대를 눈에 담고 되돌아 나왔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한 여행자가 마을까지만 차를 태워달라고 부탁을 했다. 아마 우리 일행이 둘 뿐이라 생각했나 보다. 하지만 큰 조카는 차에서 쉬고 있었던 데다 나머지 공간은 온통 우리 짐으로 들어차 있어서 그가 탈 공간이 없었다. 거절을 하니 그냥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마을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다. 수십 킬로미터는 가야 할 텐데. 우리가 차를 몰아 나가니 앞서 가던 그가 뒤돌아보고 목례를 했다. 번거로워도 차를 좀 치우고 태워줄 걸 그랬나 하고 순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공간이 있는 어느 다른 여행자가 기꺼이 그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기를 바란다.    

이전 18화 거장의 손길이 닿은 신의 명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