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볼까요, 아이슬란드? - 여행 6일 차
미바튼 호수 남쪽에는 스쿠투스타다기가르라는 분화구 지형이 있다. 호숫가에 여러 개의 작은 분화구가 무리 지어 있는데 실제로 화산이 폭발한 분화구가 아니라 끓어오른 수증기가 분출하며 만들어진 분화구여서 가분화구라고 한다. 이곳이 길고 긴 이날 여정의 마지막 목적지이다.
이곳에 가기 위해 미바튼 호수를 지나가는 도로는 아주 아름다웠다. 해가 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발산하는 햇살이 노을 진 하늘을 배경으로 미바튼 호수 위에 무지개를 드리우고 있었다. 며칠 동안 익숙했던 삭막한 아이슬란드의 자연과는 너무도 다른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는데, 이런 이유로 미바튼 호수가 아이슬란드 국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여행지 중의 하나가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분화구에 도착하면 주차장이 있고, 바로 옆에 있는 호텔 주차장도 그냥 공터여서 주차 공간은 아주 널찍하다. 이곳에는 여러 개의 분화구가 봉긋봉긋 솟아 있는데 분화구 사이사이로 산책로가 나 있어 산책하며 둘러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긴 터줏대감들이 자리 잡고 있다. 분화구 등성이는 풀이 자라는 목초지인데 양들이 여길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겐 양들도 좋은 볼거리인데 그 녀석들은 우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TV에서는 이곳을 항상 드론으로 항공 촬영을 해서 아주 멋진 장면을 보여주곤 하는데 땅에 두발을 딛고 서서 보면 그런 호쾌한 풍광은 볼 수 없다. 그렇지만 여러 개의 분화구가 동시에 눈에 보이는 특이한 지형은 뒤로 펼쳐진 미바튼 호수의 장관까지 더해져 여전히 신비롭고 아름답다.
이제 숙소를 찾아가야 한다. 이날 숙소는 다음날 아침 첫 일정이 있는 후사비크까지 가는 길이지만 중간에 샛길로 빠져 또 몇 킬로미터를 더 들어갔다가 다음날 또다시 돌아 나와야 하는 비효율적인 곳에 위치해 있다. 그 말인즉슨 이곳은 상당히 외진 곳에 위치해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행기간 동안 묵었던 숙소 중 가장 비싼 곳이었다. 문제는 사전에 결제를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재를 안 했다고 또다시 결재를 하라는 것이었다. 내가 숙소를 예매했던 인터넷 사이트는 결재까지 마쳐야 숙소가 예약이 완료되는 곳이어서 모든 숙소를 미리 다 결재를 한 상태였다. 차량 보험에 이어 또다시 이중 결재를 하게 된 셈이다. 오기가 생겨 예약 확인 이메일을 다 뒤졌는데, 모든 메일에 결재를 증명하는 내용은 하나도 없는 것이었다. 그럼 어떻게 증명해야 하나? 방법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다시 결재하고 돌아가서 카드사용 내역을 확인 후 이중결제일 경우 취소청구를 하는 방법이 더 쉬울 거 같아 다시 결재를 했다. 우선 잠은 자야 했으니까. 근데 여행을 다녀와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이제야 생각이 났는데, 벌써 여러 달이 지났다. 아무래도 그 돈은 다시 되돌려 받기 힘들 것 같다.
숙소에는 어둠이 내려앉은 한참 후에 도착을 했다. 조카가 먼저 샤워를 하고 먹을 것을 준비하는 사이 내가 샤워를 했다. 나와서 식당으로 가니 음식을 준비하던 조카가 오로라가 떴다는 것이다. 주방 옆 창문으로 보니 정말 오로라가 하늘에 떠 있었다. 바로 뛰쳐나갔다. 오로라가 바로 내 머리 위에서 춤추고 있었다.
너무나 황홀한 모습이었다. 식사 준비하던 조카를 불러내서 오로라를 보는데 샤워 후에 반팔옷을 입고 있던 나는 너무 추웠다. 조카도 옷차림이 가벼운 건 마찬가지였다. 본격적으로 오로라를 보려면 옷을 따뜻하게 입어야 할 것 같았다. 방에 들어가서 외투를 걸쳐 입고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길어봐야 1분 정도였을까. 다시 밖으로 나오니 오로라는 여전히 떠 있는데 색깔이 너무 옅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초록색 오로라 였는데 갑자기 색깔이 옅은 연두색, 아니 약간 흰색 같은 느낌에 가깝게 변해 있었다. 뭐지! 갑자기 왜 이러지! 범인은 바로 보름달이었다. 오로라가 하얗게 변한 걸 본 바로 그때 보름달이 바로 산 위에 방긋 떠오른 걸로 봐서 좀 전에 보던 초록색 오로라는 달빛에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였던 것 같다. 아이슬란드의 보름달은 유난히 밝았다. 보름달이 산 위로 떠오르기 이전에도 달이 떠오를 산 부근의 하늘은 밝았는데 달이 세상을 비추기 시작하니 밤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환히 밝아졌고 다른 빛은 희미해져 버린 것이다. 달빛이 이렇게 야속했던 적이 있었을까? 초록색 오로라는 정말 잠시 본 거 같다. 그래도 오로라는 오로라다. 우리는 한참을 오로라와 함께 했다.
오로라는 새벽의 여신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누군가는 하늘의 커튼이라 하고 누군가는 여신의 드레스라고 한다는데 난 원주민들이 이름 붙여줬다는 하늘에서 춤추는 빛이 가장 오로라를 잘 표현한 것 같다. 시시각각 움직이며 변하는 오로라를 보고 있으면 정말 빛이 춤추는 것 같은 착각이 절로 든다. 오로라를 보게 되다니! 사실 이날은 오로라 지수가 낮아 오로라를 볼 가능성이 거의 없는 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라를 볼 수 있었던 건 숙소의 위치 덕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비싼 데다 숙박비를 이중결재까지 했지만 외진 곳에 위치한 숙소가 아니었더라면 오로라를 못 봤을지도 모른다. 오로라는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변수였는데 오로라를 보았으니, 이번 여행 대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