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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내리는창가 Aug 18. 2023

고래투어

떠나볼까요, 아이슬란드? - 여행 7일 차

기분 좋은 아침이 밝았다. 전날 밤 오로라를 본 데다 이날은 고래투어가 예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도 레이캬비크를 비롯해 아이슬란드에는 고래 투어를 하는 곳이 굉장히 많이 있는데, 난 여행프로그램에서 보았던 후사비크에서 고래투어 예약을 했다. 고래를 실제로 보게 될 거라 생각하니 아침부터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후사비크는 그다지 크지 않은 어촌 마을인데 고래투어가 진행되는 항구 근처에는 고래 박물관과 레스토랑 등의 시설이 들어서 있고 투어를 신청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활기를 띠고 있었다. 예쁜 교회는 이 마을의 상징인 듯했다. 

고래투어 전날 밤, 투어에 대한 안내 메일을 받았는데 현장에서 티켓을 끊으면 직원이 동일한 내용을 다시 한번 더 설명해 준다. 요지는 고래를 못 보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이었다. 당연한 걱정이었다. 고래는 인간이 통제를 할 수 없으니 볼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후사비크 투어에서 주된 관찰 대상은 humpback whale, 즉 혹등고래인데 이것 역시 가변적인 것이었다. 투어는 돌고래를 포함해서 어떤 종류든 고래를 보기만 한다면 성공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못 보고 돌아오게 된다면 오후에 진행되는 보트투어 티켓을 제공한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에겐 오후에 제공되는 이 티켓은 무용지물이었다. 오후에는 엄청난 거리를 이동해야 해서 고래 투어가 끝나자마자 우린 바로 출발해야 했기 때문이다. 부디 고래를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승선했다. 

대략 40~50명 정도가 함께 투어에 참여했다. 배 후미에 자리를 잡고 앉자 우리 옆에 또 다른 동양인 가족이 앉았다. 영어로 대화하는 그들을 우리는 당연히 중국인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조금 있으니 그 집 딸이 우리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요청해서 사진을 찍어준 후 폰을 돌려주었는데 옆에 있던 아버지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혹시 한국분들이세요?’ 하고. 오래전에 이민 간 한국인 가족이었다. 이런 곳에서 우리말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니 무척 반가웠다. 고래를 보러 가는 동안 여행에 대해, 또 오랫동안 보지 못한 한국의 모습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여행지에서 친구 사귀기는 결국 이렇게 한국 사람만 성공했다. 

후사비크는 남쪽으로 깊숙이 들어온 만의 동쪽해안에 위치한 마을이다. 항구를 출발한 배는 만을 가로질러 반대편 해안가 근처까지 30여분 가량을 항해하는데 반대편 해안은 굉장히 높은 해안절벽으로 이루어진 지형이다. 

꽤 오랜 시간을 항해했는데도 불구하고 고래가 보이지 않자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출발 전 고래를 못 보게 되는 경우를 너무 강조한 탓에 못 보는 게 흔한 일인가 하고 생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지런히 마이크로 안내방송을 하던 선장이 이제 거의 다 왔다며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 순간 난 저 멀리 뭔가 커다란 물체가 물밖로 튀어나온 것을 보았다. 순식간이었지만 굉장히 흥분됐다. 근데 선장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분명 고래 같았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건 고래가 맞았다. 선장은 그걸 밍키고래라고 했다. 그날 그 고래를 여러 번 보았지만 선장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조카 옆에 있던 아저씨가 밍키고래를 먼저 발견하고서는 선실을 향해 고래라고 소리쳤지만 선장은 들은 척도 안 했다고 한다. 우리 투어의 목표는 험프백이었으니까. 밍키고래는 뾰족한 지느러미가 물 밖으로 나오는 게 우리가 흔히 영화로 잘 알고 있는 상어의 모습과 흡사했다. 하지만 이 녀석이 우리의 관심 밖인 건 고래 투어의 백미인 꼬리 잠수를 이 녀석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밍키고래는 제쳐두고 우리 배는 험프백 고래를 찾기 시작했다. 

고래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고래는 물속에 있다가 대략 7분에 한 번씩 물 위로 올라온다는데 이때 등위로 물을 몇 번 내뿜는다. 이걸 찾은 다음 가까이 이동해서 고래를 관찰하는 것이다. 서너 번 물을 내뿜은 후 다시 잠수를 하는데 이때 꼬리가 물 밖으로 나왔다 들어가는 것이다. 

드디어 저 멀리서 고래가 뿜어내는 물줄기가 발견되었다. 배는 그쪽으로 이동한다. 선장은 고래의 위치와 배의 이동방향에 따라 배의 오른쪽과 왼쪽 중 어느 쪽에서 볼 수 있는지를 계속해서 알려주고 사람들은 선장의 지시에 따라 관찰할 수 있는 쪽으로 이동을 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갑판 위보다는 선실 위에 있는 전망대가 관찰하기에는 훨씬 좋다. 문제는 전망대에는 기껏해야 10명 정도밖에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번 보고 나면 사람들을 로테이션 시킨다. 첫 번째 고래가 나타났을 때 난 전망대에 올라가긴 했지만 사람이 많아 전망대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었다. 결국 고래를 전혀 보지 못했는데 선장이 다들 내려가게 했다. 그런데 난 조금 억울했다. 엄밀히 말하면 난 전망대에서 본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럴 땐 어쩔 수 없다. 영어를 전혀 못 알아듣는 척했다. 다행히 바로 뒤에 올라온 일행 중 근사한 아가씨가 있었는데 선장은 그 아가씨에게 말을 거느라 더 이상 내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 고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녀석은 처음부터 우리 배 근처에서 물을 뿜기 시작해서 배는 쉽게 고래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고 나는 정말 제대로 고래의 유영을 관찰할 수 있었다. 거대한 몸집의 생명체는 유유히 수영하다 물기둥을 쏘아 올리며 내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준비됐니? 하고. 마침내 꼬리를 들춰 올린 고래의 황홀한 몸짓이 눈앞에 펼쳐졌을땐 숨이 멈춰질 수 밖에 없었다. 그 아름다운 생명체는 곧 어두운 바다속으로 사라지며 신비스러운 향연의 막을 내렸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몰려왔다. 놀랍고 신비로웠다. 전망대에서 내려왔지만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제부턴 선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해야 한다. 왼편 오른편을 번갈아 가며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사람이 많아서 잽싸게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고래투어 배는 우리가 탄 배 말고도 두 대가 더 있었다. 한 대는 우리와 같은 모양의 배인데 다른 한 대는 우리 배보다 규모가 작은 쾌속선이었다. 문제는 이 쾌속선이었다. 그야말로 악의 축이었다. 쾌속선은 고래가 뿜어내는 물줄기가 발견되면 고래를 향해 굉음을 뿜어내며 그야말로 엄청난 속도로 달려갔다. 다른 배들도 고래를 추적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쾌속선은 속도와 소음의 측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고래에게 이 쾌속선은 엄청난 스트레스일 것 같았다. 결국 고래는 물속에 잠수하는 7분 동안 투어배들을 피해 멀리멀리 도망가기 시작했다. 세 번째와 네 번째로 고래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어느 정도 고래가 도망을 가도 배의 추적권 안에 있어서 쫓아가서 잠수전 꼬리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지만 그 후로는 너무 멀리 벗어나서 우리가 근처에 도달하기 전에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고래가 너무 멀리 가버린 걸 확인한 후 더 이상 고래를 추적하지 않았고 우리의 혹등고래 투어는 그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고래투어가 거기서 끝난 것은 아니다. 돌아오는 길에 돌고래 떼가 나타난 것이다. 배의 진행방향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던 돌고래들은 배가 나타나자 잠시 배와 함께 수영하며 놀았다. 배 왼편 후미에 있던 나는 진짜 바로 눈앞에서 돌고래들이 수영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지막 한 마리가 사라질 때까지 눈을 뗄 수 없었다. 언젠가 다시 보게 될 거야. 그때까지 아디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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