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볼까요, 아이슬란드? - 여행 7일 차
고래와 작별을 고한 우리는 또다시 폭포를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고다포스이다. 대략 천 년 전, 아이슬란드에 기독교가 전파될 당시, 원시신앙의 대상이던 신들의 조각상을 이 폭포에다 던져버렸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는데, 해서 이 폭포의 별명은 신들의 폭포이다.
이 폭포 역시 폭포 동쪽과 서쪽 두 곳에 전망대가 있지만 다행히 여긴 차로 1,2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이다. 양쪽 모두 감상할 생각이라면 상관없지만 한쪽만 선택할 것이라면 동쪽 전망대를 추천한다. 여긴 폭포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후사비크에서 고다포스로 가는 방향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이기 때문에 동일한 루트로 간다면 고다포스가 나타났을 때 강의 왼편으로 들어가는 것이 동쪽 전망대가 된다. 고다포스에서 약간 아래쪽에 마련된 주차장에서 강을 거슬러 걸어 올라가면 힘차게 흘러내려가는 강물이 그 자체로 절경이다.
잠시 후에 나타난 고다포스는 우아한 멋을 풍기는 세련된 느낌의 폭포이다. 아이슬란드의 폭포들이 워낙 거대한 탓에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지만 실상 규모가 상당히 크다. 여기에도 주상절리가 있긴 하지만 흔적이 희미해서 폭포를 아름답게 치장하는 요소는 아니다. 이 폭포는 모양 자체가 예쁘다. 타원형으로 떨어지는 폭포는 물의 장막을 드리운 것 같은 느낌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마치 폭포 안쪽으로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신들을 내던져 버렸다는 전설과 어우러져 물의 장막 뒤로 미지의 세계가 펼쳐질 것 같은 신비스러운 느낌마저 풍긴다.
고다포스에서는 자칫 놓쳐 버릴 수 있는 것이 있다. 폭포가 워낙 예뻐서 폭포에만 정신이 팔려 있기 쉬운데 디테일에 집중하다 보면 고다포스가 들어앉은 전체적인 전경을 지나치기 쉽다. 고다포스는 뒤로 펼쳐진 평원과 거대한 산 덕분에 웅장한 이미지가 완성된다. 그래서 신들의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더 강해지는 것이다. 여기서 폭포를 보고 있자니 Steve vai의 명곡 ‘for the love of god’이 떠 올랐다. 이 곡을 들으면 내가 신들과 교감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처럼 이곳이 신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입구이거나 신들이 머무르는 장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다른 여행자들도 나처럼 이곳에서 신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폭포 전망대에서 주차장 쪽으로 돌아 나오면 이내 폭포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전망대에서는 폭포를 아래로 내려다볼 뿐만 아니라 주변 풍경과 같이 보지만 아래쪽에서는 폭포만 보이는 데다 물보라 때문에 폭포의 형상이 흐릿하게 보인다. 개인적 취향은 전망대에서 보는 것이 훨씬 더 좋았다.
다시 올라오니 한 아주머니께서 아래로 내려가는 길 입구에서 머뭇거리시고 계시길레 위쪽에서 보는 풍광이 더 좋다고 말해 주었다. 어떻게 자기 마음을 읽었냐며 고마워하신다. 신들의 폭포이다 보니 나에게 신기가 살짝 발동했나 보다.
주차장에서 고다포스로 가는 길은 폭포를 지나서도 계속 이어진다. 여기도 트레킹 코스인데 고다포스 트레킹루트에는 두 개의 아름다운 폭포가 더 있다고 한다. 당연히 다 가보고 싶었지만 일정상 이곳도 갈 수가 없었다. 일정을 짤 때 제외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 트레킹 루트를 따라 다른 폭포를 보고 오려면 하루를 꼬박 여기에만 투자해야 할 만큼 긴 루트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다음 목적지는 코뿔소 바위로 알려진 흐빗세쿠르이다. 점심시간을 갓 지난 시간이었지만 서둘러야 했다. 거리가 워낙 멀었기 때문이다. 흐빗세쿠르는 아이슬란드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일만큼 아이슬란드 대표 관광지이다. 그래서 여긴 무조건 가야만 했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흐빗세쿠르를 시작으로 그다음 목적지들이 연이어 어마어마하게 먼 거리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사실 별다른 방법은 없었다. 열심히 달리는 수밖에! 계획은 고다포스에서 열심히 이동해서 해지기 전에 흐빗세쿠르를 본 후 저녁시간을 이용해 최대한 이동해서 숙소를 정한 다음 이튿날 아침 일찍 출발해서 딘얀디를 보고 또 열심히 차를 달려 그 날 해가 지기 전에 키르큐펠을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흐빗세쿠르에서 110km를 더 이동해서 이날의 숙소를 예약해 둔 상태였다. 그렇게 이동거리와 시간을 잘 안배해서 숙소를 잡았지만 예약하면서 몰랐던 것이 하나 있었다. 이날 숙소는 특이하게도 저녁 8시가 체크인 마감시간이었던 것이다. 고다포스를 출발했을 때가 오후 2시가 약간 지난 시점이었지만 흐빗세쿠르를 보고 숙소에 8시 전에 도착하기는 만만치 않아 보였다. 일단 중간 기착지인 아쿠레이리까지 가며 생각을 했다. 도전을 할 것인가, 포기를 할 것인가. 정말 치열하게 운전을 한다면 가능할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성공한다 해도 정말 가까스로 체크인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고 최악의 경우 이날 숙소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막아야 했다. 게다가 이제 이날 포함 사흘 남은 여행인데 약간의 여유를 갖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무리해서 운전하다 사고라도 난다면 낭패이기도 했다. 결단을 내렸다. 흐빗세쿠르는 포기하기로! 포기하기로 했지만 맘속에서는 아쉬움이 가시질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대여섯 시간 동안 운전해 가야 할 길을 생각하면 그게 바른 판단인 것 같았다. 그렇게 눈물을 머금고 흐빗세쿠르를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