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떠나볼까요? 아이슬란드! 24화

라이킷 1 댓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비내리는창가 Aug 18. 2023

길가의 풍경

떠나볼까요, 아이슬란드? - 여행 7일 차

흐빗세쿠르를 포기했으니 그래도 약간의 시간이 생겨 아쿠레이리를 잠시 둘러보기로 했다. 아쿠레이리는 아이슬란드 제2의 도시이다. 고다포스에서 아쿠레이리 가는 길엔 새로 생긴 유료도로가 있는데 이 길은 일단 통과한 후 24시간 이내에 인터넷으로 결재를 해야 하는 번거로운 도로이다. 이미 주유소와 주차장에서 아이슬란드어 때문에 낭패를 경험한 나로서는 그런 상황과 다시 직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예전의 무료도로로 우회하기로 했다. 흐빗세쿠르를 포기한 상태이니 시간도 여유로웠고, 터널을 지나는 것보다는 아름다운 아이슬란드 풍경을 보며 드라이브하는 것이 훨씬 좋기도 했다. 아쿠레이리는 내륙 아주 깊숙이 들어온 만에 형성된 도시인데 우리가 갔던 우회도로는 만의 반대편 산등성이에서부터 도시를 바라보며 만을 따라 내륙 쪽으로 들어가다 다리를 건너 아쿠레이리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가는 길에 도시 전망대가 있는데 아이슬란드 제2의 도시라 그런지 제법 규모가 있었다.

우회도로가 새로 생긴 유료도로에 합류하기 직전에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계곡이 있는데 뜨거운 물이 콸콸 흘러넘치는 온천 계곡이었다. 이곳은 축복받은 자연의 나라이다. 아쿠레이리에 들어서서 먼저 마트를 들렀다. 남아있는 식사 끼니마다 먹을 음식을 듬뿍듬뿍 구매를 했다. 전날 저녁 마트가 문을 닫아 제대로 못 먹은 것을 보상하기라도 하듯이 분노의 구매를 했다. 그리고 주변 마을을 산책했다. 예쁘고 조용한 마을이었다.

번잡하지 않고 여유가 넘쳤다.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걱정이라는 것이 있을까? 마냥 행복할 것만 같은 그들의 삶도 나름 치열할 것이지만 이방인의 눈에는 행복하게만 보였다. 아이슬란드로 이민을 가게 된다면 레이캬비크 보다는 아쿠레이리가 더 좋을 것 같다. 다만 북쪽에 위치한 아쿠레이리의 겨울 날씨를 접한다면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다.

아쿠레이리에서 숙소까지 가는 길은 긴 거리만큼이나 다채로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름 모를 폭포는 여전히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평지를 흘러가는 강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여전히 고원의 관목지대를 지나가기도 하고 저 멀리 만년설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다 어느 순간 목장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중 많이 기억에 남는 것은 화산 분화구이다. 화산 분화구는 딱 보는 순간 분화구임을 알아차릴 수 있게 선명한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특이하다 싶어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분화구임을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가장 특이했던 건 분화구 안쪽을 가로지르는 도로였다. 언덕 같은 곳을 올라가서는 정점에 이르러 내리막길을 다시 내려가는데 그곳은 분화구 안쪽이었던 것이다. 정말 엄청나게 거대한 규모였는데도 불구하고 분화구의 모양은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었다. 거대한 분화구 안을 관통하는 도로라니!

또 기억에 남는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특이한 흙더미였다. 정확한 위치가 어디였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마치 우리나라의 고분처럼 생긴 흙더미 수십 개가 한꺼번에 분포해 있었다. 이게 인공적인 구조물인지 자연적으로 형성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것이든 눈길을 끄는 특별한 풍광이었다.

또 하나는 길옆 황무지에 끝도 없이 늘어선 돌탑이었다. 근데 사실 이건 이날 본 건지 다음날 본 건지 기억이 확실하지가 않다. 이틀 내내 운전만 하다 보니 기억이 뒤죽박죽 섞여 버렸다. 아이슬란드에는 여행객들이 하나둘씩 쌓아 놓았다는 돌탑 무리가 있다고 하던데 여기가 거기인지도 모르겠다.

중간중간에 마을도 나온다. 이름은 모르지만 어디선가 사진에서 보았던 특이한 모양의 교회가 도로 바로 옆에 보이기도 한다.

승마체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마주치기도 했다. 대략 20~30명 정도의 큰 무리의 사람들이 승마체험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도로를 달려오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왔던 길 뒤편으로도 빠져나가는 길은 한참을 더 가야 했으니 승마체험코스는 꽤 장거리 코스인 듯했다. 대략 40~50미터 트랙을 한 바퀴 돌고 서비스로 더 짧은 안쪽 트랙 한 바퀴 더 돌고는 끝나버렸던 값비싼 제주도의 승마체험과는 차원이 다른 제대로 된 승마체험인 것 같았다.

아이슬란드를 여행하기 전 꼭 한번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조금 어처구니없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양 떼가 도로를 점령해서 지나갈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 보는 것이다. 워낙 양이 많다 보니 한두 마리 때문에 차를 멈춘 적이 있기는 했다. 그런데 이날 숙소까지 가는 길에 제대로 길을 막고 있는 양 떼와 마주쳤다. 대략 예닐곱 대 정도의 차가 이미 양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는 꼬리에 차를 갖다 댔다. 재밌는 상황에 다들 창문을 내리고 구경하고 있었는데, 목동은 뭔가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자기들을 구경거리 삼는 게 기분이 나빴는지, 아니면 차들 때문에 양들을 통제하기가 더 힘들어서 기분이 나빴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세워진 차들을 향해 험상궂은 얼굴로 막 소리를 쳤다. 목동이 닦달한 탓에다 양들도 거의 길을 다 건너가서 차를 출발시켰는데, 마지막 양 한 마리가 양몰이 개들의 통제 밖으로 자꾸 도망가는 게 보였다. 개 두 마리가 양을 한쪽으로 몰아가려 했지만 이 녀석은 꿋꿋하게 제 갈길을 가려고 하는 것이다. 개가 화가 났는지 양을 물어버렸는데, 양도 한 성격했다. 개에게 물리고는 그냥 주저앉아서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다. 덩치 큰 양이 하는짓이 귀여워서 차를 천천히 몰아가며 지켜보고 있었는데, 차가 양의 앞으로 지나가는 순간 양의 얼굴을 보자 양이 안쓰러워지기 시작했다. 개에게 물린 얼굴에 피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아플까! 어떻게 됐을지 끝까지 보진 못했지만 목동이 개들로부터의 공격을 막아줬기를 바란다.

서쪽으로 향하던 링로드는 어느 순간 남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는데 그곳에서 우리는 68번 국도로 갈아타야 한다. 다음날 첫 번째 목적지인 딘얀디 폭포가 웨스트피오르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68번 국도를 타고 얼마간 북쪽으로 올라가다 다시 서쪽으로 가는 59번 국도로 진입을 하는데 이곳에서부터 비포장 도로가 시작된다. 시작지점은 오르막인데 진입하는 순간 반대편에서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차가 있었다. 흙먼지를 날리면 빠른 속도로 우리 차를 향해 다가오던 그 순간, 무언가가 차보다 먼저 우리 차 쪽으로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빡!! 차 앞유리에 부딪힌 돌멩이는 바로 튀겨 나갔지만 앞유리는 금이 가 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정확하게 보진 못했지만 조그만 돌멩이였다. 사람 손톱만 했을까! 아이슬란드에서는 언제 어디서 차가 파손될지 모른다더니, 이런 식인가 보다. 비싼 돈 들여 보험을 풀커버리지로 하길 잘한 것 같다.

길고 긴 이동도 결국엔 끝이 났다. 숙소에는 체크인이 마감되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결국 흐빗세쿠르를 포기한 선택이 옳았다. 흐빗세쿠르에 갔었다면 자칫 이날 길 위에서 노숙할 뻔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우리가 이날 묵었던 곳은 게스트하우스 였다. 게스트하우스란 무엇인가!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을 위해 저렴한 가격에 숙박과 편의시설을 제공하는 숙박업소가 아니었던가! 당연히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 사람들은 주방에서 직접 요리를 해서 식사를 해결하며 식비를 절약한다. 그런데 이곳은 주방이 없다. 이게 말이 되는가!! 게스트하우스에 주방이 없다니. 밀레니엄 시대에 유행하던 표현을 빌려 쓰자면 이건 배신이야 배신!! 그렇다. 이건 여행자들이 극대노할 일이다. 대신 주인이 직접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있었다. 숙박객들에게는 10% 할인을 해준다. 문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10% 할인을 받는다 해도 엄청나게 비싼 식비였고 또 다른 하나는 나머지 끼니마다 해 먹기 위해 아주 푸짐하게 장을 봐 둔 식재료였다. 그래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식재료는 고스란히 쟁여두고 고가의 저녁 만찬을 즐겼다. 다음날 쟁여둔 식재료로 엄청 포식하기로 작정하고서 말이다.

keyword

Brunch Book

떠나볼까요? 아이슬란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