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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내리는창가 Aug 18. 2023

거칠게 뱉어내는 지구의 숨결

떠나볼까요, 아이슬란드? - 여행 6일 차

크라플라 화산지대로 이어지는 도로에서 다시 링로드로 접어들자마자 바로 수증기가 여기저기 피어오르는 것이 보인다.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 사이로 맨살을 드러낸 땅은 함유된 광물질로 인해 붉고 푸른색이 여기저기 뒤섞여 있다. 지열지대인 흐베리르이다. 

흐베리르는 여행프로그램에서 빠지지 않고 소개되는 곳이지만 대체로 수증기의 폭발을 막기 위해 쌓아둔 돌더미 사이로 세차게 빠져나오는 수증기를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고 말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가볍게 둘러보고 갈 작정이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이곳은 가볍게 둘러보고 갈 곳이 아니었다. 여긴 매력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주차장에서 내려 지열지대 전망대가 있는 나무데크로 가면 숨을 쉬기 곤란할 정도로 매캐한 유황냄새가 코를 찌른다. 하지만 코가 괴로운 와중에 눈은 황홀하다. 곳곳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른 수증기가 퍼져 나가며 그 아래로는 진흙이 부글부글 끓고 있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어떤 곳은 물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가 하면 어떤 곳은 세찬 압력으로 물이 튀어 오르기도 한다. 끓어오른 물이 넘쳐 흘러가는 물길을 따라 물에 함유된 광물이 녹아내려 알록달록한 색을 띤 지대가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 희멀건한 토양만 남아 있는 곳도 있다. 뒤편 민둥산 곳곳에서도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군데군데 알록달록한 광물로 치장을 한가운데 여기저기 회색빛 머드팟이 끓어 올라 강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마치 아름다운 지옥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누군가는 어떻게 지옥이 아름다울 수 있냐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죄지은 사람들을 갱생시키려면 환경이 아름다워야 할 터이니 지옥은 화려하진 않지만 분명 아름다울 것이다. 우리는 지열지대 안으로 들어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진흙과 물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둘러봤다. 그런데 전망대 나무데크에 익숙한 모습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 중국인 남매들이었다. 몇 번의 엇갈림이 있었지만 여기서는 지열지대를 둘러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주치게 될 것이어서 이번에는 드디어 인사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은 우리와는 달랐다. 풍경이 맘에 들지 않아서였는지, 아니면 유황냄새를 견디지 못해서였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은 데크에서 바로 발길을 돌려 버렸다. 여행지에서 친구 사귀기는 그렇게 실패로 끝나 버렸다. 그들이 돌아간 뒤에도 우리는 흐베리르를 좀 더 둘러보았는데 TV에서 보던 수증기 돌탑은 안쪽을 다 보고 바깥으로 돌아 나오는 길목에 있었다. 수증기가 뿜어 나오는 힘이 너무 세서 무거운 돌로 눌러주지 않으면 폭발할 위험이 있어 돌을 쌓아 놓았다 했는데 돌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는 밥이 다 된 압력밥솥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를 보는 것 같았다. 기세가 대단했다. TV에서 봐서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나도 결국 호기심에 수증기에 손을 갖다 대 보았는데 굉장히 뜨겁다. 잘못했다가는 다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살아있는 불의 땅 아이슬란드의 숨결은 가끔씩 위험하기도 하다. 

흐베리르를 떠나 미바튼 호수로 가다 보면 미바튼 아웃룩이 있다. 드넓은 호수의 전망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인데 밴을 렌트해서 차에서 잠을 자며 여행 중인 듯한 두 사람의 여행자가 있었다. 그들은 호수 쪽을 향해 밴의 뒷문을 열어서 경치를 즐기며 그날 숙영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뭔가 멋져 보였다. 여행 내내 아이슬란드 재방문에 대해서 생각했는데 그때는 나도 저렇게 해보면 좋을 것 같다. 맘 맞는 친구가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미바튼 아웃룩에서 조금만 더 가면 지도에서 화산빵을 파는 것으로 나와있는 곳이 있어서 그곳에서 화산빵을 사 먹을 생각이었다. 내비게이션이랑 연동되는 세계를 제패한 바로 그 지도에서 얻은 정보이다. 그런데 내비가 안내한 곳으로 가니 건설 중장비가 잔뜩 주차되어 있는 건설현장 사무실 같은 곳이 나왔다. 다른 것은 없고 그것만 있었다. 내가 길을 잘못 들었나 싶어 큰길로 나왔다 내비가 안내한 곳으로 다시 와 봤는데 여전히 그곳에서 안내가 종료된다. 난감했다. TV 여행 프로그램에서도 크라플라 화산을 다녀온 직후 화산빵을 사는 장면이 나와서 당연히 여기가 그곳일 거라 생각했다. 첫째 날 크베라게르디에서도 화산빵을 굳이 사러 가지 않은 건 바로 이곳 때문이었다. 그런데 완전히 잘못된 정보가 제공되고 있었던 것이다. 미바튼 호수로 가다 보니 마을이 하나 나와서 마을 안도 여기저기 둘러봤지만 화산빵 파는 가게를 찾을 수는 없었다. 결국 화산빵은 먹어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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