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볼까요, 아이슬란드? - 여행 5일 차
우리가 예약해 둔 보트 투어 시간은 10시였다. 일찍 서둘러 현장에 도착하니 9시가 조금 넘어 있었고, 30분 단위로 출발하는 첫 번째 보트가 막 출발하려고 했다. 티켓에는 시간이 표시되어 있었지만 원한다면 일찍 배를 타도 된다고 해서 바로 탈지 말지 잠시 고민하다 9시 30분에 출발하는 배를 타기로 하고 호수 주변에서 호수를 구경하기로 했다.
호수 규모가 상당히 큰 데 유빙은 선착장 근처에만 모여 있었다. 그곳이 바다로 물이 흘러 나가는 출구 쪽이다 보니 다 그쪽으로 떠내려 오는 모양이었다. 호수 밖에서도 유빙은 얼마든지 볼 수 있지만 또 배를 타고 바로 유빙 가까이 가는 건 또 다른 기분일 것이다.
한참을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데 물속에서 무언가가 물 밖으로 불쑥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 게 보였다. 너무 금방이라 자세히 못 봤는데 계속해서 주변을 살피고 있으니 이윽고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바로 물개였다. 이건 뜻밖의 수확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물개 서식지를 갈 예정이긴 했지만 그곳에서 물개를 관찰할 확률은 상당히 낮다고 들 했는데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물개를 보게 된 것이다. 물 밖으로 얼굴만 내밀고 있어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여기저기서 물개가 나타나니 물개 찾는 재미에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렸다.
드디어 30분이 지나 다음 보트가 출발할 시간이 되었다. 구명조끼를 하나씩 받아 들었는데, 냄새가 상당했다. 그래도 안전을 위해서는 꼭 입어야 했다. 옷을 따뜻하게 입고 오라 해서 옷을 많이 껴입었는데도 날씨가 굉장히 추웠다. 이윽고 덜컹덜컹 보트가 자갈길을 출발했다. 자갈길을 가고 있는데 앞서 출발한 차가 돌아오고 있었다. 한 대가 아니라 두 대로 번갈아 가며 운행하는 것이었다. 덜커덩거리던 보트가 마침내 물로 들어가는 순간, 이럴 때 대체로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기 마련이다. ’예~~~‘ 신났다.
승객들은 보트 측면에서 보트 안쪽을 보고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는 형태였다. 나는 보트의 오른쪽 측면에 앉아 있었는데 물에 들어가자 바로 유빙 쪽으로 다가간 보트의 왼편으로 유빙은 떼 지어 있었다. 왼편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유빙에 다가서자 다들 뒤돌아 일어서서 유빙을 보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오른쪽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보트 왼쪽으로 몰려가서 유빙을 보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필이면 유독 장신이 많이 같이 타고 있던 터라 시야가 가려져 뭔가 답답했던 나는 생각했다. ’어차피 뒤돌아 가니까 그땐 이쪽에서 잘 보일 테니 자리 잘 잡고 있다 나중에 여유롭게 봐야지’하고. 그리고는 유빙은 안 보고 물개 머리 찾으며 혼자 놀고 있었다. 그런데 그건 이번 여행 최대의 실수였다. 유빙 무리의 끝까지 다다른 배는 잠시 멈춰 섰고, 빙하와 호수의 생성과 특징에 대해 가이드가 설명을 했으며 작은 유빙을 건져서 들고 사진 찍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러고서는 유빙이 전혀 없는 호수 안쪽으로 뱃머리를 돌리는 것이다. 빠른 속력으로 달려간 배는 크게 원을 그려 출발지점으로 돌아가 버렸다. 이게 뭔가! 난 당연히 유빙 옆으로 되돌아올 거라 생각하고 제대로 보지도 않았는데. 내가 제대로 본건 배 오른편에 있던 덩치 큰 유빙 한 개가 전부였다. 이번 투어는 망했다.
허탈한 마음을 우선 먹거리로 달랬다. 빈대떡과 피자의 중간 느낌의 이 음식 이름은 크레페였다. 먹을 때는 즐거웠지만 다 먹은 후 눈을 들어 유빙을 바라보니 또 허탈감이 밀려왔다. 유빙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유빙으로 치유할 수밖에 없다. 곧장 다이아몬드 비치로 이동했다. 요쿨살론이 바다로 접어드는 그 지점에 모래해변이 있는데 이곳 모래사장 위로 떠내려온 유빙이 파도에 밀려 올라와 있었다. 반짝이는 얼음이 보석 같다 해서 해변의 이름이 다이아몬드 비치이다. 물이 바다로 들어가는 양편으로 모두 얼음조각이 있지만 서쪽 해변에 얼음조각이 많이 모여 있다. 도착해서 해변을 바라보는 순간, 보트가 땅에서 물에 들어갈 때와 똑같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예~~~’ 크고 작은 얼음 조각들이 해변을 가득 덮고 있었다. 시간과 물이 빚어낸 반짝이는 보석들이었다.
사람들은 적당한 얼음을 골라 껴안기도 하고, 위에 올라서기도 하고, 둘러싸기도 하고, 나란히 앉기도 하며 각자 자기 방식대로 얼음조각과 인증샷을 남기기에 바빴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들이 내 마음을 완전히 위로해 주었다. 조카 녀석은 모래가 섞이지 않은 맛보기 좋은 얼음을 찾느라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 해변을 즐겼다.
이제 다음 목적지로 이동해야 할 시간, 고난의 행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헨기포스 였는데 요쿨살론에서 헨기포스까지는 360km 정도의 먼 거리였다. 그것도 비포장 산길이 포함된. 먼 거리여서 가는 경로에 유명한 스폿이 있으면 더러 들러갈 예정이었지만 시간이 빠듯해서 스폿별로 그때그때 결정하기로 했다.
다시 왼편에 거대한 빙하를 따라 차를 달리기 시작했다. 여행 5일 차에 접어들며 슬슬 체력적으로 힘들어지기 시작해서인지 조카들은 금방 잠에 곯아떨어졌다. 강제로 깨울 수도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이 멋진 경치들을 또 언제 보려고. 줄곧 빙하와 나란히 함께 달리던 길이 어느 순간 방향을 오른쪽으로 꺾어 빙하를 뒤로 하고 남쪽 해안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바트나요쿨이 끝나는 지점 근처였다. 조금 더 가면 남동부 최대 도시 회픈으로 빠지는 길이 나오는데 우린 회픈으로 가지 않고 좌회전하여 계속해서 링로드를 달렸다.
이 지점에 다다르면 이제까지와는 완연히 다른 풍광이 나타난다. 산의 모습은 비슷하지만 풀이나 이끼가 전혀 없어 흙의 색깔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산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색깔이 굉장히 오묘하다. 총천연색은 아니지만 다채로운 색깔의 산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아마도 땅에 함유된 광물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크게 보면 검은색 계열, 흰색 계열, 청록색 계열, 갈색 계열, 회색 계열 등이었는데 비슷한 계열이라도 색이 완전히 같지 않고 조금씩 달라 화려한 느낌마저 들었다. 대체로 하나의 봉우리는 하나의 색깔이었지만 연속해서 이어진 봉우리들마다 다른 색을 띠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길을 가다 보면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폭포들은 계속 나타나고 유명한 빨간의자도 나오는데 쉬지 않고 계속 달렸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아이슬란드 동쪽 해안의 피오르로 접어들게 된다. 피오르가 시작될 무렵 특이한 형상의 산봉우리가 하나 보이는데 그 모습이 마치 뿔이 달린 악마의 모습이다. 어떤 사람은 베트맨 형상이라고 하는데 내 느낌은 악마였다. 이 악마의 느낌 때문이었을까, 뒤이어 나타나는 뾰족뾰족한 봉우리들이 마치 악마의 부하 군대 같다는 유치한 상상을 하며 장거리 운전의 무료함을 달랬다. 조금 더 가다 보면 정말 완벽한 피라미드 모양의 산봉우리가 하나 보이고 우리의 중간 기착지인 온천이 나타난다.
길 옆에 갑자기 나타나는 이 무료온천은 여행객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한 곳인데 안타깝게도 우리가 갔을 때는 수질검사 관계로 온천이 폐쇄되어 있었다. 코로나 때문인 듯했다.
피오르는 해안선이 내륙 깊숙이 들어온 지형이다 보니 해안선을 따라 달리면 바다 건너편의 절벽이 보이는데 그 모습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당연히 내가 있는 쪽의 풍경도 궁금해지는데 조금만 더 가면 길이 반대편 해안선 쪽으로 이어져 이쪽의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해안선을 몇 번 굽이 돌아가다 내륙 안쪽으로 굉장히 깊숙이 들어간 지점에 다다르면 건너편 절벽에 거대한 산비탈면 한가운데에 지름이 족히 수백 m는 되어 보이는 원형 웅덩이가 파여 있는 것이 보인다. 마치 거인이 커다란 숟가락으로 한 숟가락 들어낸 것 같은 이 특이한 지형을 보면서 난 장거리 운전의 무료함을 달랠 또 다른 유치한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저건 고대 우주인들의 우주선이 착륙했던 흔적이 분명하다며.
갈길이 멀어 몇몇 곳은 그냥 지나쳤지만 폭포 마니아인 나는 꽤 근사해 보이는 폭포 한 곳은 들르기로 했다. ‘니쿠르힐스’라는 이름의 이 폭포는 주차장이 꽤나 크게 마련되어 있는 걸로 봐서는 비교적 유명한 곳인 것 같았다. 이곳의 폭포가 멋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는데 폭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퇴적층 형태의 거대한 산세가 또한 일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