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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내리는창가 Aug 18. 2023

대지를 뒤덮은 푸른색 이끼와 흰색 얼음

떠나볼까요, 아이슬란드? - 여행 4일 차

숙소에서 레이니스피아라를 지나가면 금방 비교적 규모가 큰 ’ 비크‘라는 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은 애니메이션 ’드래곤 길들이기‘의 배경 마을로 알려져 있다.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고 가고 싶었지만 오후에 예약된 투어 탓에 오전일정을 서둘러 끝내야 한다는 조바심이 생겨서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계속해서 링로드를 달려가면 곧 이끼 세상이 펼쳐진다. 길 양옆으로 가도 가도 끝도 없이 이끼만 눈에 보이는데 드넗게 펼쳐진 화산암 지대를 온통 이끼가 뒤덮고 있는 곳이다. 신비롭다는 말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화산암 위를 이끼가 뒤덮고 있다 보니 올록볼록 모양도 가지각색이어서 조형미마저 뛰어나다. 자연의 솜씨가 여간 뛰어난 게 아니다. 

SNS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진을 보면 이곳에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면서 이끼가 많이 훼손된 탓 인지 지금은 대부분의 지역에 보호펜스가 쳐져서 출입을 금지하고 있고, 전망대가 설치된 곳에서만 관찰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전망대 아래쪽으로 약간의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서 이끼 속으로 들어갈 수 있긴 하지만 이미 워낙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탓에 산책로에 있었을 이끼는 모두 죽어 있었다. 물론 죽어 있는 이끼 옆에 살아있는 이끼 위를 걸어볼 수도 있지만 왠지 내가 이끼 파괴의 첫 주자가 될 것 같아 그러질 못했다. 내가 걸어가면 흔적이 남으니 누군가는 또 그 위를 걸어갈 테고 그렇게 이끼파괴의 면적은 자꾸 넓어질 테니까. 이 아름답고 오묘한 이끼의 세상이 잘 보존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다음 우리가 들러볼 곳은 피아드라글리우푸르 협곡이다. 이곳은 시작점에서 폭포가 있는 전망대까지 느긋한 걸음으로 왕복 한 시간 이내의 짧은 트레킹 구간인 데다, 협곡의 모양이 워낙 특이하고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여름에는 캐녀링도 가능한 것 같은데, 9월에는 아예 계곡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았다. 이곳 관리자 분이 우리에게 굉장히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 도착할 때부터 직접 주차자리까지 잡아 주셨고 올라가는 우리를 보시고는 설명도 해주시더니 내려올 때는 또 어땠는지 소감까지 물어봐 주셨다. 나는 온갖 수식어를 동원해 최고라며 그분의 친절에 화답해 주었는데 이곳이 최고의 비경을 자랑한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기도 하다. 폭포 앞에 있는 전망대에는 전문 사진작가분이 오셔서 작품활동을 하고 계셨는데 예술가의 영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이었음에 틀림없다. 아무튼 현지인이 우리에게 친절과 관심을 베풀어주셔서 기분이 좋고 감사했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자연을 닮아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전날 차창 왼쪽에서 우리와 항상 함께 했던 솔헤이마 요쿨은 이끼 지대를 지나올 무렵부터는 뒤쪽으로 사라져 더 이상 빙하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말 거대한 모습의 빙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트나요쿨이었다. 바트나요쿨은 우리나라 전라북도 만한 면적으로 유럽에서는 가장 큰 빙하이다. 솔헤이마요쿨은 멀리 산정상에 자리 잡은 빙하여서 그냥 설산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솔헤이마요쿨보다 훨씬 큰 바트나요쿨도 처음 보이기 시작했을 때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난 빙하는 평지까지 내려와서 온통 얼음이 벌판을 뒤덮어 버리고 있었다. 경외감이란 그런 것이었다. 압도적이고 충격적이었다.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바트나요쿨의 아들 빙하인 스카프타펠이었다. 

벅찬 감동으로 운전하다 보니 링로드에서 벗어난 도로 저 안쪽에 스카프타펠 전망대가 보였지만 스카프타펠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갈 것이었기 때문에 전망대를 그냥 지나쳤다. 우리는 스카프타펠 국립공원 안에 있는 스바르티포스를 보고 스카프타펠 빙하 트레킹을 하기로 예약을 해 둔 참이었기 때문이다. 스카프타펠 국립공원 안내센터 앞에 주차장이 있으나 지나치면 또 다른 주차장이 있고 여길 또 지나치면 세 번째 주차장이 나온다. 그 주차장 끝에 빙하트레킹 여행사가 두 곳이 있는데 난 내가 예약한 것이 그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고 우선 스바르티포스에 다녀오기로 했다. 

빙하트레킹 여행사 앞으로 넓은 공터가 있고 그 뒤에 있는 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는데 이 길을 따라가면 스바르티포스가 나온다. 스바르티포스는 주상절리 사이로 떨어지는 폭포인데 할그림스키르캬가 바로 이 스바르티포스를 모티브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화산과 폭포의 땅인 아이슬란드에서 그 두 개가 절묘하게 결합된 최고의 자연걸작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인간이 가져다 인공의 걸작인 할그림스키르캬로 재탄생되었다. 폭포는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아름다움은 그 규모를 훨씬 능가하는 대단한 걸작이다. 폭포를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주상절리는 보자마자 보는 이를 완전히 사로잡아 버려 넋을 잃고 바라보게 만든다. 그러다 문득 전체적인 조망이 더 예쁘다는 생각에 폭포 전체를 감상하다 어느 순간 또 주상절리에 감탄하고 있다. 같은 패턴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훌쩍 지나가 있다. 떨어져 내린 주상절리가 정확하게 육각형인 것도 참 신기했다. 

스바르티포스까지 오르는데 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오후 2시에 예약된 빙하트레킹을 위해서는 집결지에 30분 전에 도착을 해야 했다. 스바르티포스까지 트레킹에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 가늠이 안돼 아침부터 서두르고 앞선 관광지에서도 최소한 짧게 머무르며 시간을 비축했는데 생각보다 트레킹 시간이 짧아서 스바르티포스에서는 여유롭게 폭포를 즐겼다. 

폭포수가 흘러내린 물을 왼편으로 건너가는 다리가 있었는데 등산로가 계속해서 산 정상 쪽으로 이어져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시간의 제약으로 갈 수가 없었지만 사실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산 정상에 오르면 스카프타펠 빙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고 하니, 난 이번 여행에서 이래저래 스카프타펠 빙하의 장엄한 모습을 다 놓쳐 버리고 만 것이다. 아무튼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아래로 내려오니 빙하트레킹 집결시간까지는 아직 10여분이 남아 있었다. 난 두 곳 중 어느 곳이 내가 예약한 곳인지 몰라 출력해 간 바우처를 들고 한 곳에 사무실에 들어가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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