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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Mar 30. 2023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형식 없는 이야기

오, 그렇네요.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의 말에 동의해 버렸다. 그렇게 파격적이면서 동시에 매혹적인 말에는 나도 모르게 긍정하게 되어버린다. 분명 긍정적인 이야기가 아님에도 나는 힘 없이 팔락이는 물고기처럼 아니 아무런 저항 없이 아래로 낙하하는 꽃잎처럼 자기 파괴에 긍정하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누구나 자기 파괴적으로 살아간다. 시간을 죽이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린 시간을 죽이기도 하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면서 장기를 망치기도 하고 또 꽃잎처럼 낙하하며 자신의 삶을 마감하기도 한다. 거기에 대놓고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 건 모두가 사실은 어느 정도 동의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럼에도, 그럼에도 그 파격적이고 매혹적인 말은 잠재적으로 슬픔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녀는 나의 소유, 나의 시간, 나의 장기, 나의 꽃이 아니기에 그녀의 자유낙하를 막을 방도는 내게 없었다. 그렇게 파격적이고 매혹적인 문장을 내뱉는 그녀의 말에 반박할 단어 하나 찾지 못했지만 나는 심정적으로 반대하고 있었다.


그거 참 매우 슬픈 말이네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 외에는 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지 않은가? 그리스도 역시 일종의 자기 파괴로 부활하셨으니. 무분별한 창조를 일삼는 인간에게 자기 파괴는 일상적인 일인 것이 분명하다. 모든 게 피고 지는 것이라고 배웠는데 스스로 질 준비를 하겠다는 이에게 내가 지지 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당신의 자기 파괴가 꽤 많은 사람을 슬프게 만드니 그건 옳지 못한 일입니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래, 많은 사람들이 슬퍼할 예정이니까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성인이라면 누구나 그 정도 책임을 지고 살아가기 마련이니까. 다들 자기로 인해 누군가 슬퍼할 것쯤은 책임을 지고 살아가니까.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것엔 관심이 없는 듯했다. 파도에 떠밀려 해안가로 떠내려온 시체를 누군가 본다 하더라도 그때부턴 본 자의 책임이지 시체의 책임은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난 그녀에게 분명 이 말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반드시 슬퍼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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