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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Apr 01. 2023

손에 쥐다

에세이

어린 시절 동네에서는 심심찮게 유기된 막대기를 주울 수 있었는데 뭐 막대기의 출처는 산 어딘가의 나무이거나 여기 근처 공터의 부러진 나무일 거다. 아무튼 그 막대기를 하나둘씩 들고 삼삼오오 모인 아이들은 뭔가 든든한 마음과 치솟는 용기로 동네를 쏘다니며 막대기로 주변을 휘젓기 시작한다. 그게 싸움으로 번지든 놀이로 번지든 뭐든 간에. 손에 쥔다는 본능은 어머니에게서 유기되지 않으려는 영장류들의 본능인 것 같다. 갓난아기와 새끼 원숭이는 둘 다 무언가를 손에 쥐려고 아주 열심인데 그 모습에 부모는 사랑스러움을 느끼곤 한다. 무언가를 손에 쥐다는 것이 욕구나 욕망의 대치어가 되는 만큼 손에 쥔다는 것은 본능적 해소에 가까운 행위인 것 같다. 이 나이가 되어서도 가끔 손에 막대기 같은 것을 쥘 때 용기가 솟아나고 마음이 뭔가 든든한 기분이 든다는 것은 놀라운 점이다.


고대인들보다 손에 쥘 것이 훨씬 많아진 현대인들이 분명 더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하루에 쥐는 도구만 해도 수 십 개에 이르는 것 같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폰이라는 엄청난 무기는 다른 도구들이 없어도 될 정도로 강력하다. 바로 가까운 산업시대의 세대와 비교해도 현재 세대가 훨씬 많은 권력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로 이동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리적으론 그렇지만 다른 방식으로 더욱 복잡하고 추적하기 어려운 권력적 착취가 이뤄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우리는 이전보다 더 많이 쥐고 더 많이 다룬다. 손에 쥐는 막대기는 수 없이 늘었고 우리는 그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뽐낸다. 좋은 일인 걸까? 좋은 일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확실히 좋은 일인 것 같다. 그런데 고대인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가 더 행복한 것 같진 않다. 그래, 손에 쥐는 게 많아진다고 행복해지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게 문제는 아닌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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