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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Apr 08. 2023

외로운 사람들

에세이

어린 시절 나는 교회를 다녔다. (사실 5,6년 전까지만 해도 교회를 다녔다.) 크리스천이라고 말할 수는 없고 그냥 교회를 다녔다. 예나 지금이나 선한 의도를 가진 인간은 아닌 나는 그냥 교회에 들락 거리는 걸 좋아했다. 어린 시절부터 접했던 교회는 나에게 종교보다는 문화에 가까웠다. 당시 나는 사회성이 부족하고 서툴렀지만 다행히도 나의 서툰 인간성을 인내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 속에서 사회성이란 걸 기를 수 있었다. 내밀한 감정을 공유하는 신비주의 공동체 집단인 교회공동체는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어렵고 복잡하다. 성경적 도덕 규율과 사회적 공동체주의, 동시에 자유주의, 자본주의가 공존하는 곳인 데다가 한국적 특유의 유교질서는 그것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그래도 교회를 지탱하는 가장 큰 이념은 '믿음'일 텐데 그 믿음이란 것이 비종교인, 종교체험이 없는 일반인들에게는 사실 잘 와닿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교회를 다녔던 나도 오죽한데 철저한 이성중심주의의 현대인들에게 '믿음'이란 하찮고 보잘것없어 보일게 분명하다. 현대인들에게 불가해의 영역에 있는 종교는 그냥 골칫덩어리, 아프고 썩어 문들어졌지만 이 사회와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로 여겨진다. 이단 기독교 단체인 JMS에 대해 탐사보도한 넷플릭스의 '나는 신이다'를 보면 아마도 그런 말이 더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얼마 전에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의 유튜브 채널에서 10만 수료 영상을 우연찮게 본 나는 황당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구글의 광고 알고리즘이 나를 거기까지 인도했다.) '나는 신이다'를 볼 때는 황당을 넘어서서 황망했고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인민 사원 집단 자살 사건(존스 타운 사건)'을 처음 접할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현대의 이단 종교 단체들의 난립은 근대에 끝난 줄 알았던 파시즘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것만 같다. 교과서로만 배우고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세대인 나는 그게 참으로 당황스럽다. 그리고 '대체 왜?'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러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대체 왜?라는 질문에 답을 주기 위해 전문가들이 그에 맞춰 대답한 영상들이 유튜브에 요즘 많다. 나는 그런 질적으로 뛰어나고 정성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그냥 나의 어린 시절 있었던 종교체험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믿음'이 하찮게 느껴진다면 '외로움'은 어떤가? 그리고 '고통'은 어떤가? 나는 어릴 때 많이 외롭고 그리고 많이 아픈 편이었다. 툭하면 아프고 몸살에 걸려서 병원 신세를 졌는데 병원에서는 딱히 이유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답은 뻔했다. 소아 우울증 같은 증세가 나는 분명 있었다. 심각한 저체중이라 학교에서 체육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고 툭하면 울기 일 수 였다. 그런 아이에게 교회는 분명 좋은 안정감을 주는 공동체 사회가 되어준다. 나는 예민하고 불안해서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주는 집단이 필요했는데 동네에 있었던 개척교회가 딱 그랬다. 그리고 나는 교회에서 나의 예민과 불안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듯했다. 사실 그때 당시에는 뭘 알았겠냐만은. 나는 그 교회가 주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고 주말마다 거기서 라면을 먹고 형들을 만나는 일이 좋았다. 내가 아플 때 목사님이 기도를 해주면 그때 당시에는 그게 정말로 효능이 있는 줄 알았다. 나는 그렇게 '믿음'이라는 게 생기는 줄 알았다. 하지만 예민과 불안한 심성의 남자아이는 대체로 비순종적이고 충동적이어서 문제를 잘 만든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날 인내심의 한계에 부딪힌 교회 목사님에게 크게 혼났고 그게 무서워서 나는 뒤를 돌아 다시는 그 교회에 가지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그 목사님이 내가 아플 때 기도해 준 일이다. 그 목사님의 손은 따뜻했고 나는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이 아니라 그 행위가 내 병을 진실로 낫게 해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 즘이 돼서 나는 다시 다른 교회를 들락거렸고 나의 신앙생활은 조금 진지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한 번도 진지했던 적은 없다. 문제투성이었다.) 이번에도 운이 좋게도 인내심 있는 주변 사람들을 만나 점점 공동체 생활에 적응해 나가는 듯했다. 혹시 산속에 XX기도원이라고 적혀있는 간판 같은 걸 본 적이 있는가? 나도 한 번 거기에 가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정말 '열심'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기독교인들이 구름같이 운집해서 기도를 하고 설교를 듣고 찬양을 한다. 거의 일주일 정도 프로그램이 짜여있는데 사람들은 정말로 질서 정연하고 친절하다. (물론 와중에도 일탈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 즈음 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거의 모두 토해놓는다. 그때 당시의 기억을 되짚어 보면 정말 압도적인 장면이 하나가 있다. 내 생각보다 정말 큰 강당에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쓰러지고 바닥에 뒹굴거리기도 하고 서로를 부둥켜안고 목이 찢어질 정도로 울었다. 나는 사실 그 장면에 압도돼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뒷자리에 앉아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만 봤다. 나는 기억 속의 그 장면을 영화 미드소마를 보면서 다시 체험했는데 그때서야 아 그게 인간의 집단적 신비주의 체험이구나 이해하게 됐다. 인간은 생각보다 원시적이고 그리고 그 원시적인 행위가 우리 생각보다 일반적일 수 있고 그게 왜 어떤 사람들에게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나는 이상한 종교에 빠지는 사람들을 그다지 하찮게 보지 않는다. 그 '믿음'이 하찮을지라도 '외로움'과 '고통'은 하찮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것들과 투쟁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치물이 있어야 한다. 그게 그 종교였기에 문제인 것이지. 때문에 나는 그 종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들에게 '대체 왜?'라는 질문을 거듭하지 않게 된다. 적어도 나에게 그들은 불가해한 인간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으로는 사실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재생산하도록 생태계를 만든 독재자는 내 마음속에서 그를 사형으로 다스리면 그만이지만 그 생태계 내부에 빠져 누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도 모를 정도로 망가진 사람들을 생각하면 정말로 복잡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내가 이해하기 편하게 그들을 이렇게 일컫는다. 외로운 사람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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