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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Apr 09. 2023

열심히 사는 나무

에세이

가을이 되면 나무는 잎을 떨군다. 최소한의 에너지로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겠다는 효율중심의 가치관이 나무에게도 있는 것 보면 나무도 자본가 인가 싶다. 겨울이 되기 전에 나뭇잎이란 일꾼들을 다 털어내고 봄이 오면 다시 새로운 일꾼들을 만들어내고 수확의 결실을 맺고. 하하. 사실 그게 다 나무가 열심히 살아서 벌어지는 일일테다. 그리고 어떤 나무도 자기 삶의 수레바퀴를 의심하지는 않을 테다. 나무는 그냥 주어진 계절과 환경에 맞춰 자기만의 시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열심히 사는 게다. 스스로 열심히라고 지각조차 못하겠지만.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유독 인간만이 버르장머리 없게 자기 삶의 수레바퀴에 저항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당연한 걸 하면서 열심히 산다고 말하거나 당연한 것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거나. 나무는 우리를 보며 유난 떤다, 유세 떤다 이렇게 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버르장머리가 없다. 열심히 사는 나무도 아니고 열심히 사는 인간도 아니고 열심히 살려는 인간도 아니고 열심히 안 살려는 인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열심히 사는 나무를 칭찬해 주는 사람도 아니다. 나는 열심히 사는 나무가 싫다. 왜 그렇게 한 번도 저항하지 않고 제시간에 맞춰 시시각각 변화하면서 살아가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버르장머리가 없는 나는 그 모습이 꼴사납다. 어른들이 내 마음을 알면 아마 욕할 거다. 왜 아직도 스무 살처럼 구냐. 네가 애냐? 모르겠다. 열심히 사는 나무가 나는 그냥 싫다. 나무는 그냥 사는 건데 나는 그 꼴이 그냥 효율중심주의, 성장지향주의 같아서 싫은 거 같다. 나는 어릴 때부터 반골기질이 가득했다. 정치성향은 태어난 기질로 정해진다는데 나는 아마 기질적으로 빨갱이인 것 같다. 근데 빨갱이들이 이 모습을 보면 환장할 거다. 사실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 싶은 거니까. 빨갱이가 되려면 열심히 살아야 한다. 스탈린과 모택동을 보라. 그들이 얼마나 악착같이 열심히 살았는가. 아, 때론 열심히 사는 게 전 인류에 도움이 안되는 걸 수도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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