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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Apr 11. 2023

남성호르몬 대체 그게 뭐라고 (2)

에세이

2022년 8월 한 대학교에 자승자박이라는 예술작품이 논란이 된 적 있다. 밧줄에 몸이 묶인 남성의 나체가 작품이었는데 해당 작품의 부제는 가부장제에 갇힌 남자들이었다. 해당 작품은 꽤나 논란이 있었는데 나는 당시 꽤 긍정적이었다. 내가 딱히 여성운동을 지지한다거나 페미니스트여서 그런 건 아니다. ㅡ나는 여성인권운동은 남성인 내가 이해할 수도 없을뿐더러 주체가 되거나 지지자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꽤나 과격한 입장이지만 흑인인권운동이나 장애인인권운동 등에서도 나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집단의 외부자는 엄밀히 말해 주체나 지지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다ㅡ 나는 남성들이 가부장제에 갇혔다고까지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현세대의 20,30 남성들이 가부장제를 지지하지는 않을 거다라는 게 내 입장이다. 가부장제는 여러모로 남성에게도 부담이 된다. 일단 보수적 가부장제의 입장에서 남성은 여성과 자녀를 부양해야 하는 존재이다. 아버지는 도덕적이고 동시에 경제적 능력도 갖춰야 한다. 이건 현세대의 젊은 남성에게 역시 가부장제를 지지하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이미 젊은 남성들은 병역의 의무부터 시작해서 많은 부분에서 스스로가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더 이상 무언가를 위해 희생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것은 물론 여성에게도 나타난다. 현세대는 더 이상 무언가를 위해 희생하거나 참고 기다리지 않는다. 현재의 만족이 중요한 것뿐만 아니라 먼저 본 부모 세대의 희생에서 결과가 그다지 좋지 않았던 점이기도 하다. 우리는 부모 세대의 희생이 그다지 좋은 것만은 아니란 것을 알게 됐고 더 이상 희생하지 않고 스스로를 위한 삶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젊은 남성들이 가부장제를 맘 속으로는 지지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외부적으로 그 표현이 현저히 줄어든 것은 확실하다. 인기 있는 리얼리티 연애쇼에서 일반인 남성 출연자들은 절대로 가부장적인 발언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남녀의 평등을 추구하는 발언을 할수록 반대쪽 이성에게 인기가 많아지고 짝짓기의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을 알게 된 똑똑한 우리 세대는 절대로 그런 발언을 짝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이성들 앞에서 말하지 않는다. 가부장적이지 않는 것이 연애시장에서의 생존확률을 높이므로 앞으로도 가부장적인 남성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음지에서 벌어지는 다른 성에 대한 혐오적인 발언들은 분명 앞으로도 있겠지만(사실 이것은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혐오는 언제나 그래왔다.) 연애시장에 뛰어들 생각이 있는 남성이라면 성차별적인 발언과 생각을 지워나가려 애쓸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이것이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남성상에 가깝다. 이런 가정적인 태도는 여전히 연애시장에서 인기 있는 요소이다.


그렇담 진짜로 남성들을 밧줄로 포박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역시나 내 생각엔 남성호르몬이다. 뭐, 그렇담 이 세상의 남자들은 다 그렇겠네라고 할 텐데 말하자면 그렇다. 나는 조금 급진적인 입장이어서 제3 의성이 나타나거나 혹은 무성생식이 가능해지지 않는 이상 남성과 여성은 언제나 호르몬의 노예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렇고. 그러나 남성호르몬을 대하는 문화 자체가 지난번에 말한 것처럼 조금은 많이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남녀를 떠나서 모두가 말은 하지 않지만 남성에게 더욱 남성성을 강요하고 반대로 여성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 사회가 서로가 서로에게 성역활을 강요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승자박이라는 작품처럼 자기들 스스로 성역활을 진지하게 열심히 롤플레잉 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게 심각하게 병적이지 않기만 한다면 당연하다고 생각할뿐더러 건강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자주 보고 사용하는 이미지는 너무 병적으로 우리에게 성역활을 강요하고 있다. 그게 육체적이던 경제적이던 정신적이던 어느 쪽이던. 우리는 자신의 의미, 자신의 성질을 스스로 정할 의무가 있다. 남들이 전시해 준 삶에 뛰어들어 나도 전시품이 될 이유가 전혀 없다. 나는 관상용 상품이 아니라 예술가다. 예술가는 동시에 관상용 상품이기도 한 역설이 있긴 하지만 아무튼. 그러니 연애시장에서의 더 좋은 품질을 위해 어느 성별에 갇혀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남자답고 여성스러운 게 나쁜 건 절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고전적 가치이며 어쩌면 정말로 세상이 뒤집어지지 않는 한 변치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닌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각 개인은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그 이상의 복잡함이 있다. 그러니 우리는 스스로 밧줄을 묶을 필요가 없다. 일단 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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