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훈 Apr 13. 2023

휴게실이 주는 서운함

에세이

나는 어릴 때 청담동 명품거리의 명품매장에서 보안 알바를 잠깐 한 적 있다. 사실 며칠 하다가 그만둬서 '했다'라고 하기도 애매하지만. 보통 백화점에서 마주할 수 있는 가드들처럼 정장을 입고 가만히 서서 특별한 일이 없는지 잘 지켜보는 게 주 업무였다. 그리고 매장 입구에서 근무를 해야 할 때면 문을 열어서 고객을 맞이하는 정도가 다였다. 해당 일이 힘든 건 가끔 정말 그냥 가만히 서 있어야 할 때가 있다. 다행히 사람이라도 지나다니면 사람을 구경하는 재미라도 있었지만 보통 서 있어야 하는 자리는 매장 내부의 진열 상품을 바라보는 쪽도 아니라 풍경이 제한적이고 퍽 심심했다. 그럴 때면 정말로 금방 지루해지곤 했다. 그래도 뭐 그런 건 괜찮다. 내가 해야 하는 업무의 단점이라면 내가 돈을 받고 해야 하는 일의 지루함이라면 견뎌낼 수 있다. 그런데 가끔 알바나 일을 할 때 나는 서운한 마음이 들 때가 있는데 그게 꼭 누가 나를 서운하게 만들어서가 아니라 그냥 상황과 분위기가 주는 서운함, 씁쓸한 마음 그런 게 있다. 나는 직원 휴게실이 변변찮으면 꼭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그 큰 명품매장에 보안직원들이 쉬는 공간, 발렛 직원들이 쉬는 공간은 정말로 변변찮았다. (약 6년 전 당시엔 그랬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다.) 휴게실은 비좁고 의자와 테이블은 딱딱했다. 화려한 사람과 장식, 고가의 상품들을 감시하고 쉬는 시간에는 비좁고 환기도 잘 되지 않는 공간에 앉아 휴대폰만 쳐다보곤 했다. 그러곤 매장에서 좀 멀찍이 떨어져서 담배를 피우고 돌아와 다시 일했다. 나는 그때 꽤나 서운하고 섭섭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휴게실로 서운했던 적이 있다. 후에 운 좋게 어느 대기업의 사내카페에서 일하게 됐다. 코로나가 한창이라 직원들의 분리가 강요됐을 때였는데 공간은 한정적인데 인원은 많아서 쉴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기존 휴게 공간은 꽤나 아늑한 편이었지만 그 공간에는 4명도 채 들어가지 못하니까 사용하지 않는 피트니스실 락커룸과 탁구장 등이 우리에게 휴게실로 배정됐다. 두 장소 모두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먼지가 가득했고 추웠다. 의자도 테이블도 딱히 없었다. 그리고 때론 직원식당 한켠 구석에 앉아서 쉬어야 했다. 나는 그게 또 퍽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휴게실에 꽤나 섭섭해하는 사람이구나 싶다. 이것도 시장논리일까? 글쎄 노동가치에 대한 시장논리는 그다지 서운하거나 섭섭하지 않다. 그게 내가 쌓아온 사회적 대가라면 나는 충분히 받아들인다. 하지만 휴게실만큼은 괜히 서운하다. 시장논리에서 휴게실만큼은 좀 빼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 나라 사람들이 정말로 싫어하는 마르크스의 망령을 다시 불러내지 않으려면 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남성호르몬 대체 그게 뭐라고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