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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Apr 14. 2023

동거하면 듣게 되는 말

에세이

"혼자 살아요?"

"아뇨, 여자친구랑 같이 살아요."

"결혼할 거예요?"


여자친구도 나도 고지식해서 거짓말하기를 싫어하다 보니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냥 누가 그렇게 물어보면 확인할 것도 아닌데 혼자 산다고 하면 된다고 할 것을 꼭 같이 산다고 말해서 상대로부터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을 듣고 만다. 이쯤 되면 우리가 곤란한 질문을 유도하고 있는 셈이다. 뒤에 따라올 질문들은 뻔하다. 사귄 지는 얼마나 됐는지 양가 인사는 했는지. 자주 싸우는지. 불편한 건 없는지. 그냥 혼자 산다고 할걸 후회해 봤자 이미 늦었다. 우리는 각자 겪었던 비슷한 상황을 공유하며 껄껄 웃었다.


외국에는 안 나가 살아봐서 모르겠다만 동거가 좀 더 대중(?)적인 프랑스 같은 유럽은 동거인들이 이런 질문을 받을까? 하고 괜히 궁금해진다. 아무튼 내가 만난 사람들은 동거를 한다고 하면 꼭 결혼할 거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거짓말하기 싫어하는 고지식한 내 성격이 긁어 부스럼 만드는 짓을 하고 있지만 그게 사실이니 숨길 것도 아니란 생각에 사실대로 말해버린다. 그러면 만난 사람들은 은근히 동거에 대한 개인적인 시선을 내비친다. 감사하게도 비난하지는 않으니 다행이다. 동거는 비난받아야 하는 문제일까? 결혼은 축복받아야 할 주제라면 동거는 뜨거운 감자 같은 주제일까? 근데 사실 일상에서 만난 사람들은 딱 그 정도 선까지만 질문하고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다. 나도 그렇다. 누가 동거를 하건 말건 무슨 상관인가? 아주 잠깐의 호기심이 질문을 하게 만들 뿐이다. 결혼하면 결혼해서 좋아요?라는 말을 듣는 것과 비슷한 맥락 같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그런 질문이 조금 곤란한 이유가 있을 텐데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질문들이 우리 엄마에게 처음 동거를 고백했을 때의 질문과 똑같았기 때문 아닐까 싶었다.


동거를 하면 들어야 하는 말들이 있다. 괜히 눈치 보이는 부정적인 시선들도 있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가 고지식하게 구는지도 모르겠다. 때론 어린아이가 어른인 척 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왜 결혼하지 않느냐고 묻는 질문에 아! 결혼할 거예요!라고 떼를 쓰는 것 마냥. 그래서 가끔은 이런 상황에 무력해지는 기분을 느낄 때도 있다. 어느 누군가의 말처럼 어쩌면 결혼의 달콤한 부분만 빼서 먹고 있는 건가. 우리는 책임을 지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걸까. 거기까지 도달하고 나면 우리는 화를 한 번 실컷 내고는 잘 살아낼 거라 다시 다짐한다. 우리는 누구보다 잘 해낼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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