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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Apr 15. 2023

사랑에 빠지면 꾸준해진다

에세이

나는 요즘 복싱에 완전히 빠져있다. 약 9개월 전부터 불안해소를 위해 시작한 복싱이 이제 내게 뗄 수 없는 취미가 되어버렸다. 남는 시간에는 유튜브로 복싱경기를 챙겨보고 주 3회는 꼭 체육관을 찾아서 훈련을 한다. 취미 수준이지만 뭐든 열심인 한국인들에게 취미는 사실 광기를 다르게 일컫는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나보다 열심인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나 역시 '나 요즘 완전히 복싱에 빠졌잖아.'라고 미국식 표현을 섞어가며 농담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그래서 나는 요즘 여자친구에게 내가 조금 꾸준해졌다는 말도 듣는다. 그리고 오늘도 역시 질문이 생겼다. 나는 원래 이렇게 꾸준한 사람이 아닌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든 걸까? 누군가에게 무엇을 꾸준히 하게 만드는 동기는 무엇일까?


사랑에 빠진 사람은 꾸준해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중한 것이 생긴 사람은 꾸준해진다. 나는 어느 날부터 여자친구와 나의 일상이 매우 소중해졌다. 지극히 평범하고 소소한 하루. 정말 틀에 박힌 말이지만 그런 일상의 소중함을 느꼈다. 그리고 문득 동시에 슬픔도 느꼈다.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건 슬픔을 가져다주는 걸까? 이게 언젠가는 파티처럼 끝이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슬퍼졌다. 우리가 나이가 들고 몸이 불편해지면 지금처럼 웃는 게 어려울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지켜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주 작은 동기로 나는 꾸준해졌고 우리는 우리 삶을 더 나은 방식으로 꾸려나가자고 서로에게 조언했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엄마 역시 나를 성인으로 길러내기 위한 긴 시간을 겪었다. 20년은 절대로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꾸준함으로 아들을 길러내는 데 성공했다. 내가 소중한 것도 있을 것이고 자신의 가정이 소중하기도 했을 것이다. 소중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렇게 할 수 없다. 내가 이것을 지켜내야겠다고 선언하지 않으면 절대로 힘겹고 어려운 싸움을 해낼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대부분 꾸준한 사람들일 것이다. 진정으로 무언가 소중한 이들은 그게 무엇이든 그것을 꾸준히 대한다. 소중한 마음에 대한 책임과 행복이기도 하며 목표의식이자 믿음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이로써 내가 되고자 한 어른에 한 발자국 나아간 느낌이 들었다. 이제야 내가 진정으로 인생과 직면하고 있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제는 무언가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꾸준히 해내려고 한다. 오늘같이 소중한 일상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아직 서툴러서 여전히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이제야 조금씩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고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마음이 들었다. 사랑은 이렇게 사람을 변화시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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