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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Apr 16. 2023

아주 작은 힘으로

에세이

너무 세게 닫힌 병뚜껑을 열려고 한참을 낑낑 대다 보면 보다 못해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내가 무안해질 정도로 쉽게 뚜껑을 열어준다. 그럼 나는 내가 다 열어놓았다고 변명하고 그는 이것도 못 여냐고 핀잔을 준다. 살아가면서 가끔 심심찮게 벌어지는 일이다. 나는 한참을 끙끙대며 과제와 씨름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나타나 정말 쉽게 해결해주곤 한다. 그럴 땐 허탈한 기분이 들기 마련이고 또 스스로를 나무라기까지 한다. 그러지 않아도 될 문제인데 말이다.


나는 등산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막상 산에 가면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닌다. 몸이 남들보다 가벼운 편이라 비교적 등산이 수월한 편인데 그러다 보면 같이 간 일행 중에 누군가는 당연히 조금 쳐지게 된다. 그럼 그 사람의 뒤로 가서 허리 뒤를 검지로 꾹 눌러주면 그는 마치 '부스트'를 받는 것처럼 몸이 밀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검지에서 나오는 아주 작은 힘이지만 받는 사람에겐 등산이 훨씬 수월해지는 힘이 된다. 누군가와 웨이트를 할 때에도 비슷한 경우들이 있지 않은가? 내가 평소 밀지 못하는 무게인데 파트너가 손으로 조금만 밀어주면 마치 내 힘처럼 그 힘을 받아 써질 때가 있다. 단지 손가락 몇 개만으로 돕는 건데 말이다. 그래서 혼자 운동을 하다 보면 아쉬울 때가 있다. 아주 조금만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하고 말이다.


살다 보면 아주 작은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일들이 있다. 나는 원래 글쓰기를 좋아했고 영화를 좋아했다. 여자친구는 어느 날 그런 나를 보고 블로그를 운영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고 브런치란 것도 있다고 말해줬다. 나는 그러고 한 달 만에 곧장 브런치 작가에 선정됐다. 여자친구는 자기 말을 그냥 듣고 흘려버릴 수도 있는 걸 꾸준히 하고 있어서 고맙다고 했고 나는 당신이 그 말을 해줘서 이렇게 될 수 있었다고 고맙다고 했다. 그녀와 나는 각자가 한 역할과 노력에 대해 이해하고 감사했다. 그녀는 내가 그동안 글을 쓰면서 과제와 씨름한 노력을 알아줬고 나는 그녀의 말 한마디를 알아줬다. 우리는 서로에게 상호보완적으로 나타났다.


그러니 어느 날 병뚜껑이 잘 안 열려서 낑낑대고 있는데 누군가 나타나 아주 작은 힘으로 손쉽게 열어준다면 허탈해하고 스스로의 노력을 폄하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그 아주 작은 힘은 결국 내가 어떤 것과 씨름하고 있는지 알아봐 주는 상대의 배려가 있어야 했음을 알고 그저 감사해하면 된다. 그러면 서로에게 상호보완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아주 작은 힘으로 서로에게 큰 힘이 되는 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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