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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Apr 19. 2023

참회 (내 인생에서 내가 가장 불쌍했던 때)

에세이

나는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종종 봉사활동을 다녔다. 연탄봉사, 독거노인 돌봄, 발달 장애 센터 교육 프로그램 참여 등을 했었는데 사회적인 경험과 이해를 축적하고 늘리는 데 있어서 상당히 많은 도움을 준 일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느 날 이런 일들을 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늘어놓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순식간에 부끄러워졌다. 많이 부끄러웠다. 나는 나의 도덕적인 우월성을 뽐내고 있었다. 나는 길을 지나다니면서 불쌍해 보이는 사람을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고 나는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라고 자랑하고 있었다. 나 스스로가 불쌍해졌다. 자랑을 늘어놓다 말고 말을 얼버무렸다. 나는 당황한 눈으로 사람들을 쳐다봤다. 사람들은 나를 분명 불쌍하게 여기고 있었다.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동기를 찾아 마음을 되짚었다. 그때의 나는 나의 존재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갈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는 우연찮게 이 세상에 던져졌고 그래서 나는 내 삶의 의의를 찾아야 하며 동시에 좋은 영향력을 끼쳐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 시작에 진정으로 타인은 없었다. 혹자는 당신이 칸트도 아니고 그렇게 깐깐하게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묻겠지만 당시의 나는 깨달았다. 나는 나의 존재 이유와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타인을 끼어 넣어서 이용하고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그것들을 자랑스럽게 전시했다. 이건 정말로 심각한 나르시시즘이었다.


분명 당시 나는 어느 순간에는 좋은 감정과 타인을 위한 선한 동기로 행동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복잡한 사정들이 섞여있었겠지만 나의 도덕적 행위와 내적 동기의 충돌은 나의 가장 부끄러운 순간을 선사했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운 순간을 꼽으라면 그때를 꼽을 것 같다. 나는 나의 추한 모습들 중에 그것이 가장 부끄럽다. 차라리 순수하게 나의 추한 욕구와 행위가 부합한 순간이 낫지 않았나 싶다. 이후로 나는 도덕적 행위, 선행에 대해 다각도로 접근하게 되었다. 물론 완벽하게 타인을 위한 마음과 나를 위한 욕구를 분리하는 것은 어렵다. 정말로 인간에게 그 정도의 진실함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때의 부끄러움은 나를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들었다. 지금 나의 말과 행위가 어떤 시선을 의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를 우월한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그것들로 타인을 조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당시의 나를 생각하며 나는 참회한다. 그런 모습을 지닌 나를 한편으로는 인정하게 됐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두렵기도 하다. 이것은 사실 두려움의 영역이다. 사람들이 자기혐오나 자기연민에 빠질 때가 어떤 때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 스스로가 두려워질 때 그때 그런 마음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런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 참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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