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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Apr 20. 2023

패륜

산문

소년은 아버지의 음경에 긴 작살을 꽂아 넣는다.

죽은 아비의 고환에 남은 형제들이 있겠는가만은.

소년은 문득 사념한다. 재활용의 기회를 빼앗긴 아버지는 어찌 이리 슬픈가.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버지가 재활용되지 않으려고 지금껏 도피했기 때문이다.


소년과 소년의 형제들이 말했다. 아버지의 장기와 피와 눈알을 팔아먹자고.

그러나 소년과 소년의 형제들은 말했다.

‘아버지는 우리를 착취하고 괴롭히고 돈 벌어오는 기계로 생각했다. 아버지는 우리를 아무런 책임 없이 여기에 던져뒀다. 그는 화형 당해 마땅하다.’

소년과 소년의 형제들은 아우성쳤다.


'아버지가 죽었으니까 이제 내가 아버지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소년과 소년의 형제들이 말했다.

소년과 소년의 형제들은 아버지가 쓰던 유품 중에 쓸만한 조끼와 펜을 챙겨 나왔다.

아버지의 유품은 꽤 쓸만했다. 이거라도 재활용될 기회가 있다면 그래도 나은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는 건가.

소년은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죽은 자에게 무슨 위로가 필요하겠는가 하고 말았다.


소년과 소년의 형제들은 장작을 모으고 그 위에 시체를 올린 다음 기도를 드렸다.

첫째 소년이 불을 붙였다. 기름을 붓지 않았던 지라 시체 타는 냄새가 나려면 시간이 꽤 걸렸다.

기도는 계속됐고 시체가 다 타오르고 나서야 멈췄다.

소년과 소년의 형제들은 아버지가 이제야 사라졌다는 것에 슬픔을 느꼈다.

이제야 사라졌다. 이제야 우리의 아버지는 사라지고 없다. 그러나 아버지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

그의 펜과 조끼가 그것을 말해준다.


소년과 소년의 형제들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아버지의 펜을 들고 집안 벽지에 긴 글을 써 내려갔다.

아버지가 생전 살아 계실 때 했던 말들이다. 아버지의 유훈을 떠맡은 소년과 소년의 형제들은 손에 피가 나는 줄도 모르고 글을 써 내려갔다.


소년이 말했다.

'이 모든 게 끝날 때까지 여기서 아무도 못 나간다.'

소년과 소년의 형제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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