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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Apr 23. 2023

남겨진 사람의 몫

에세이

이십 대 중반 물류 센터 알바를 마치고 지친 몸으로 만원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크리스 코넬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그의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됐다. 그리고 그를 추모했던 체스터 베닝턴도 두 달 뒤에 자살했다. 십 대를 함께 보내고 이십 대에 여전히 사랑했던 밴드의 프런트맨들이 자살했다. 그때의 나는 ‘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요절할까?’ 하고 물었다. 나의 책임도 인과관계도 전혀 없는 일이지만 나는 상실감에 헛헛한 마음을 담아 질문했다. 세상에 만나보지도 못한 백인 남성이 죽었다고 이렇게 슬퍼할 일인가 싶었다. 그냥 내가 지나치게 감상적인 것이라 탓하고 그들을 마음속에 묻어뒀다. 그리고 며칠은 그들의 목소리가 담긴 앨범을 한참을 돌려 들었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부고를 어제야 알았다. 알고 보니 이 주나 지났었다. 나는 그동안 그의 음악을 모아둔 플레이리스트를 유튜브로 반복재생 해놓고 글을 썼는데 말이다. 그의 부고를 알고 나니 그의 음악들이 뭔가 아득해지는 것 같았지만 나는 애써 모른 척하고 글을 써 내려갔다. 십 대와 이십 대에 그의 음악과 함께 했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모르는 척했다. 모든 것은 사라지기 마련이고 언젠가는 헤어져야만 한다. 이전보다 이별에 더 준비된 나는 담담한 모습을 보인다. 지금도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쓰고 있지만 그렇게 슬프지도 않다. 사실 이 마음이 당연한 것 아닐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떻게 매일매일 저물어 가는 모든 것에 슬퍼할 수 있겠는가? 이십 대 중반의 나와 지금의 나는 그렇게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가 달라진 것 같다.


어쩌면 덜 느끼고, 덜 감상적인 사람이 된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냥 파도가 이전보다 조금 잔잔해졌을 뿐이고 수평선 위로 저무는 태양이 마냥 슬프기만 한 사람이 아니게 된 것 같다. 어쩌면 회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덕분에 좋았던 기억들로 슬픔을 대신해주고 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매일같이 그의 음악을 접할 텐데 말이다.


나의 시간선에는 여전히 그들이 살아 있는 것만 같다. 나는 그들에게 돌려준 거라곤 없는데 이토록 좋은 것들을 받아도 될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나는 그들이 살아서 계속 나의 기억과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든다. 참으로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나 같은 사람을 위해 헌신적으로 자신의 영혼을 담아 좋은 향취가 담긴 그릇을 선물한 그들에게 참으로 감사하다. 슬픔으로만 그들을 보내기엔 덕분에 좋았던 것들이 더 많았으므로 감사함으로 안고 살아가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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