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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Apr 25. 2023

신축병

에세이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신축 오피스텔에 이사 온 뒤로 신축병에 걸린 것 같다. 내가 지금 사는 오피스텔은 지어진 지 이 년 정도 지난 신축 오피스텔인데 여기 살게 된 후로 나는 앞으로 이사 갈 집은 전부 신축일 것이다라고 선언을 해버렸다. 노후화된 주택은 이제 안녕이다. 앞으로 내가 살 곳은 전부 이렇게 깔끔하고 새것이어야만 할 거야. 내가 이용하는 모든 것이 새것이면 얼마나 좋을까? 같은 질문이 유치해 보이겠지만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우리가 새것에 얼마나 큰 만족감을 느끼고 살아가는지. 문득 길 가다 만난 카페가 신상 카페일 때 어제 주문한 신상 아이폰을 뜯을 때 아무도 밟지 않는 눈 내린 설원 위에 내가 올라설 때 그럴 때면 알지 못할 설렘과 뿌듯함이 밀려온다. 만족감에 가득 찬 얼굴로 새하얀 무언가를 내 품에 집어넣고 싶어 진다.


바퀴벌레가 나오는 반지하에서도 살아봤고 겨울이면 모든 게 얼어버리는 옥탑방에서도 살아봤다. 그땐 이렇게 새것에 길들여지지 않았었다. 최근엔 너무 많은 것들을 새로 사고 마는 것 같다. 중고책도 이전처럼 손이 잘 가지 않는다. 나이가 드니까 더 새것에 집착하게 되는 걸까? 새것처럼 보이고 싶은 걸까? 집 안의 작은 날파리 하나 용납하지 않는 잔인함을 가지게 됐다. 모든 것이 새것이어야 한다, 모든 것이 더럽혀져 있지 않아야 한다는 사람은 어쩌면 잔인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완벽하고 잔인한 사람, 무균실이 아니면 참지 못하는 사람. 스스로를 환자로 만드는 사람. 근데 점점 내가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헌 집 백 채는 줄 테니 새 집 하나라도 받고 싶은 마음. 어느 날 마음이 느슨해진 틈을 타 이런 바이러스에 걸린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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