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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Apr 26. 2023

아니 그거 말고 해야 할 일

에세이

'아니 그거 말고 해야 할 일 있잖아.'


요즘 내 유튜브에서 전성기를 누리는 키워드는 '성장'이다. <이거 안 하면 손해, 이거 하지 마세요. 이거 하세요. 매일 이것 하면 생기는 일, 일 잘하는 사람이 이것 하는 이유, 돈 벌고 싶으면 이것 하세요>와 같은 제목의 영상들이 주르륵 튕겨 오른다. 알고리즘의 신은 내가 성장 영상 몇 개만 봐도 나를 성장의 우물로 빠트려 질식시키려 하는 것 같다. 현대사회의 신이 있다면 알고리즘, 당신이 신이야. 아무튼 나는 물질만능주의자는 아니지만 자본주의자는 맞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가 아니 되려고 노력할 수는 없다. 나는 결국엔 '사장'이 꿈이올시다와 같은 말이 요즘엔 정말 흔한 말이다. 청년 창업의 붐이 지금처럼 팡팡 터지는 때는 없을 것이다. 서점에 가면 당신이 돈을 벌 수 있는 적어도 100개의 방법을 알려준다. (개중에 몇몇은 사기꾼이고 모호한 말만 할 테지만) 베스트셀러 역시 '돈'과 '성장'을 차지하고 있으니 나의 유튜브에서만 '성장'이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여자친구가 어느 날 우울하다고 했다. 자기도 유튜브에서 성장 영상들을 찾아보는데 그걸 보다 보면 우울해진다고 했다. 나는 왜 그런 걸까? 하고 되물었다. ㅡ우린 그런 되묻기 형태의 대화 방식을 즐겨한다ㅡ 그녀는 그냥 다들 성장하고 사는데 나만 성장하지 못하는가 보다 하고 우울해진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그게 뭐가 대수냐고 말했지만. 사실 나도 그랬다. 내가 복무했던 연대에는 운동도 잘하고 잘생긴 나와 몇 달 차이 안나는 선임이 있었다. 그 선임이랑 친하진 않았지만 몇 번 대화도 했었고 나름 안면도 튼 사이였다. 전역하고는 당연히 연락 없이 지냈는데 어느 날 그 선임이 인스타그램 셀럽이 되어 있는 걸 봤다. 그는 엄청나게 멋진 몸과 잘생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보다 확실히 성장해 있었다. 그리고 요즘은 간혹 유튜브에도 나온다. 마치 알던 형이 티브이에 나오는 것처럼. 나는 그날 내가 초라해 보였다. 성장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와 동갑인 나는 전역을 하고 난 후 6년 사이에 무엇을 했나라는 생각이 지배했다. '전혀... 성장하지 않았어!'라는 말이 생각났다. 뭐 사실 잠깐 그러고 말았지만 그래도 가끔 눈에 띌 때마다 조금 부럽다는 생각이다. 그래, 나는 나의 시간선에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니까라는 말로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여자친구를 안아줬다.


살다 보면 까먹는 것들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으려고 뻐팅기다 보면 해야 할 일들을 종종 까먹곤 한다. 돈 벌려고 하다 보면 까먹는 것들. 나는 어릴 때 내가 그렇게 까먹히는 것 같아서 싫었다. 물론 우리 엄마는 엄마대로 고충도 있고 힘들었을 거란 걸 이제는 이해한다. 근데 나는 그게 싫어서 까먹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모두에겐 모두의 시간선이란 게 있다. 근데 그 시간선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게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느 날 '아니 그거 말고 해야 할 일 있잖아.'라는 말이 불현듯 머리를 스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꼭 입으로 한 번 말해보자.


'그래 이거 말고 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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