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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May 01. 2023

연애는 파티처럼 언젠가 끝이 난다

에세이

연애는 파티처럼 언젠가 끝이 난다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中


'연애생존율'이란 블로그를 운영하는 한 작가의 말이다. 작 중 등장인물로 실존 인물은 아니다. 연애가 생물이라면 생존율은 0에 수렴한다. 연애의 죽음에는 다양한 사인(死因)이 있겠지만 끝 다음에는 두 개의 단계가 기다린다. 연애의 내세(來世)에는 '결혼'과 '이별'이 존재한다. 양쪽 다 연애를 '파티'처럼 보이게 만드는 데 한몫 톡톡히 하고 있지만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에서 마치 천국과 지옥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천국과 지옥처럼 선과 악의 대비는 아니지만 이분법적인 결론에 다르게 된다는 것에서 '연애'에게 결혼과 이별은 마치 내세처럼 보인다.


결혼과 이별이라는 이분법적이고 어쩌면 극단적인 결론. 결혼을 한다 하더라도 어쨌든 이별을 내포하고 있기는 하지만, 연애라는 유기체를 중심으로 놓고 봤을 때는 결혼과 이별이라는 선택지 밖에 없다. 그래서 연애는 늘 파티 같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파티를 놓지 않고 잡고 있으려면 결국 연애가 파티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파티가 파티가 아니게 되는 순간, 우리는 로맨틱을 잃는다고 단언하지만 이 파티가 영원하길 바라는 순수한 자만이야 말로 파티에 대한 모독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는 사랑을 배신하고야 만다. 로맨틱은 어쩌면 순수한 파괴의 다른 말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랑이 낭만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파티라는 환상을 저버리면서 사랑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낭만적인 모든 것들은 슬프게도 우리를 배신한다. 우리를 결국 이별이라는 죽음을 선고하게 이끌고 만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이제 결혼뿐인데 과연,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결혼이라는 구원으로 이끌고 말 것인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안 해봐서 모르겠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이제 사랑의 책임에 대해 이해하고 그것을 꾸려나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과 그럴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파티가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내포된 상황에 내몰려 있지만, 이렇게 이해한 사랑의 손을 놓지 않는다면...이라는 기대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기대해 볼 만한 상황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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