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훈 May 01. 2023

인간은 필연적으로 외롭고 고독한 존재라는 인식 (2)

에세이

비가 내렸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부터 비가 내렸다. 늦은 오후 버스 창문에 빗방울이 부딪히는 것을 보며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다. 버스로 서울에서 마산까지의 거리는 4시간, 비행기를 타면 일본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시간인 곳이라는 핑계로 그동안 고향에 내려가보질 않았다. 그리고 바쁘게 산다는 핑계로 말이다. 지루함의 시간을 기다려서 도착한 마산은 그 3년간 꽤 많은 게 달라져 있어 보였다. 새로 생긴 건물도 식당도, 카페도 많았다. 제법 서울처럼 단장한 느낌이라 특이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경상도 특유의 너스레와 사투리를 사방에서 듣다 보니 꽤 즐거웠다. 나 역시 마산 사람이지만 경상도 사투리는 좀 웃기다. 그 특유의 억양이 가끔 한국말이 아닌 것처럼 들려서 재밌다. 그리고 마산의 오래된 거리들을 걷다 보니 새로웠다. 내가 세계를 보는 시선이 바뀐 탓일까? 20여 년의 시간을 누볐던 거리들이 완전히 새롭게 느껴졌다. 삶에 대한 감상적인 태도를 많이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게 감상적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래서 금연에 실패했다. 참으로 과격한 결론에 이르렀다. 6개월 만에 담배를 입에 물고 말았다. 묘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마산의 눅눅한 밤공기에 담배연기를 내뱉었다.


3년 만에 만난 엄마와 할머니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할머니는 이제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게 됐다. 4평짜리 방과 TV만이 할머니의 세상으로 변했다. 얼굴도 홀쭉해졌다. 푸근했던 마음이 그처럼 쪼그라든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마음이 두려웠 것 같다. 정말 유치하고 어른스럽지 못한 마음이다. 나는 아직도 세월의 흐름에 마주할 준비가 안된 사람인 것이다. 할머니는 언제나 푸근하게 나를 기다리길 바랐다. 엄마도 3년 만에 더 쪼그라든 것 같았다. 서른이 넘은 내가 더 커진 거라고 생각해야 할까? 할머니의 몸이 편찮아지고 난 뒤 엄마도 고생이 많았을 게다. 집안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엄마와 할머니 둘 만의 시간이 늘어난 공간은 정리가 안된 것 같았다. 늦은 밤이라 뭘 같이 먹지도 못하고 숙소로 돌아섰다. 집을 떠난 지 7년, 이제 집에 내 공간은 없었다.


다음 날, 해가 떴다. 덥고 푸른 날씨가 반겨줬다. 가족들 모두가 모여서 밥을 먹는다고 했다. 왜냐면 내가 여자친구를 처음으로 소개해주는 날이었으니까. 할머니는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고 일가친척들이 꽤 모였다. 나는 그런 자리가 처음이라 밥을 먹는 게 꽤 불편했지만 그래도 참으로 감사한 자리였다. 분명 좋은 자리에 모두가 화기애애하게 밥을 먹고 있는데 나는 한편으로 혼자 애석한 마음을 삭이고 있었다. 드문드문 떠오르는 큰삼촌 때문에 가끔 닫힌 창문에 시선이 가고 말았다. 그럴 때마다 곧 행복한 식사시간으로 시선을 돌리곤 했지만 그래도 한 번씩 기억이 났다. 왜 나는 비어있는 자리에 자꾸만 눈길이 가고 마는 건지. 가족들 모두 한 번씩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그가 있었다면 나는 성가셔했을 것이다. 그 특유의 무뚝뚝하고 거친 성격이 나는 싫었다. 그런데 왜인지 일가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는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그를 신경 쓰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집으로 가서 할머니를 보고, 다시 모두와 인사를 나누고 밖으로 나서는 길에 무너지듯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형용할 수 없는 모든 텁텁한 마음과 눅눅한 문장들이 결국 눈물을 터트리게 만들었다. 어린아이처럼 훌쩍였다. 가족이 이렇게 감상적인 것이었나? 사랑한다는 말로도 모자랄 애석한 것이었나? 나에게 가족이 이렇게 특별한 것이었나? 여러 생각들을 툭툭 떠올리며 눈물을 잠재웠다. 나이 서른이 넘은 키 187의 덩치 큰 남자가 우는 건 딱히 보기 좋은 일이 아니니까. 서글픈 마음이 들었지만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면서 웃으려고 애썼다.


우리는 떠나기 전에 날씨가 갠 푸른 바다를 보러 갔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일상으로 돌아와 앞으로의 미래와 돈 걱정을 했다. 감상적인 마음은 글쎄, 어느새 날아가고 없었다. 익숙한 풍경의 바다를 보다가 예전에 썼던 글이 생각났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외롭고 고독한 존재라는 인식, 나는 여전히 인간의 존재를 그렇게 바라보지만... 1년의 시간 동안 있었던 많은 일들이 내게 새로운 시선을 일깨워줬다. 우리는 참으로 외롭고 고독한 존재다. 그래서 가족을 일구고 그 테두리 안에 들어가서 안전해지려고 한다. 그게 때로는 사람을 제대로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만들지만, 결국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고야 말겠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다.


익숙하지만 많은 게 바뀐 풍경 속에서 익숙하지만 달라진 나의 마음을 천천히 되짚어가며 다시 서울로 향했다. 필연적으로 외롭고 고독한 존재 두 명이 나란히 손을 잡고 버스를 타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왔다. 서울에 오니 또 비가 내리고 있었다. 궂은 날씨가 갠 날씨로 갠 날씨가 궂은 날씨로. 서글픈 마음이 들었지만 괜찮았다. 두 사람이 같이 서글퍼하고 있었으므로. 그래서 외롭고 고독하지만 희망적인 존재자 두 명이 되었다. 가족들은 우리에게 그런 기대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 막 시작을 하려는 두 사람은 어쩌면 가족들의 희망일지도 모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연애는 파티처럼 언젠가 끝이 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