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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May 03. 2023

잘 무너지는 법

에세이

사람이 나이가 들면 추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잘 모르는 걸 아는 척할 때, 부끄러운 일을 하고도 당당할 때, 어린 사람을 막 대할 때. 보통 나이 든 사람이 추해보일 때는 이런 경우다. 이 세 경우에는 자신의 못난 모습을 인정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이가 들면 어떤 것에 서툴다는 걸 인정하기가 어려워진다. 사실 하루 여덟 시간 이상을 내가 잘하거나 잘할 수 있는 일로 채우고 겨우 한두 시간의 못하는 일을 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만약 못하는 일을 여덟 시간 하고도 마찬가지일 거다. 하루종일 내가 서툰 일을 하는 건 고역이니까. 어릴 때는 모든 게 서툴러서 스스로를 용서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관공서에서 서류를 작성하는데 서툴러도 용서가 안된다. 일 년에 몇 안 되는 일임에도 우리는 관공서나 은행에 가서 늘 있던 일인 양 군다.


나이가 들면 부끄러워도 부끄러운 줄 모르게 된다. 흔히 수치심을 모른다고 표현한다. 수치심이란 부끄러울 수, 부끄러울 치, 마음 심이다. '부끄러운'이 두 번 들어가는 걸 보면 옛날 사람들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살았던 게 분명하다. 수치심은 사실 스스로에게 자주 쓰는 표현이 아니다. 부끄러운 걸 아는 사람은 부끄럽다고 한 번만 표현한다. 부끄러운 걸 아는 순간,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게 된다. 하지만, 부끄러운 걸 부끄러운 줄 모를 때 부끄러운 것이 된다.


나이가 들면 어린 사람 앞에서 거들먹 거린다. 어린 사람이 차리는 예(禮)가 노력에서 온다는 사실을 까먹은 게다. 나이가 들면 노력을 쉽게 생각한다. 특히 자신의 자리가 거저 만들어진 사람은 더욱 그렇다. 자신의 자리가 노력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어린 사람을 막 대하지 않는다. 쉽게 나이 든 자의 지위를 차지한 자는 사실 타인이 얼마나 노력하는지 잘만 안다. 그렇지만 그 노력을 인정해 주는 순간 자기가 노력하지 않은 걸 인정해야 하므로 더욱 하대한다.


이 세 가지만 지켜도 추해 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세 가지를 지키지 못했다고 해서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잘 무너지고 넘어지고 쓰러지고 추해지는 방법이 있다. 웃는 것이다. 무너지고 넘어지고 쓰러지고 추할지언정 웃으면 '잘'이다. 사실 애초에 그런 일을 만들지 않는 게 가장 좋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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