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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May 04. 2023

글쓰기

에세이

타고난 욕망에 따라 쓰기, 타고난 손의 생김새에 따라 쓰기, 타고난 어깨의 궤적에 따라 쓰기.


나는 글쓰기에 대해 배운 적이 없다. 운동, 음악, 공부는 다 돈 내고 배웠는데 글 쓰는 건 배우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소위 내 쪼대로 쓴다. 더 천박하게 말하면 내 꼴리는 대로 쓴다. 본질적인 욕구, 욕망에 따라 글을 내리 갈긴다. 요즘엔 키보드로 갈긴다. 이렇게 체계적이지 않게 쓰는 글 따위를 에세이라는 포장 아래 가둔다. 그러면 그게 좀 그럴싸해 보인다. 나는 사실 '글' 다른 말로 '텍스트'의 혼돈을 싫어한다. 사실 나는 대형 서점이 싫다. 세상에 어쩜 그렇게 수많은 책들이 나와있는지 때때로 놀랄 때가 있다.


다이어트를 하듯 글도 뺄 건 빼야 한다. 그런데 원체 인간의 욕망이라는 게 잡고 먹고 들이미는 건 잘해도 놓치고 빼고 참는 건 못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그게 쉽지가 않다. 그러니 글도 뭔가 가득 차 있다. 욕망의 금자탑에 살아가는 우리의 세계 역시 무언가로 가득 차 있다. 강남을 나는 싫어한다. 강남이 아니라 서울 어딜 가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그렇게 뭐가 많이 있는 게 싫다. 이렇게 말하니 나는 참 호불호가 강한 인간이구나 싶지만, 사실 살면서 내 의견을 피력하는 경우는 잘 없다. 나는 나약한 인간인 게 분명하다.


아, 글을 뺀다고 했는데 또 더하고 있다. 글쓰기는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다. 누가 내 글을 보는 것, 즉 내 글이 팔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글이 팔리려면 사랑을 받아야 하는데, 사랑을 받으려면 글이 예뻐야 한다. 예쁜 글을 보면 사람들은 좋아한다. 그러니 사람들은 떡볶이 같은 글, 포기하라는 글, 적당히 하라는 글을 좋아한다. 그런 글은 예쁘니까. 근데 또 한편으로는 당신의 책무를 재촉하고 삶의 의무를 다하길 권하는 글이 예뻐 보인다. 그런 글들이 또 팔린다. 그게 예쁘니까.


예쁜 것들만 찾는 세상이 나는 싫다. 하지만 나는 나의 양심을 알기에 내 말이 얼마나 모순적이고 내 태도가 얼마나 이중적인지 안다. 나는 예쁜 것들만 찾는 세상이 싫지만 내 손과 눈은 예쁜 것만 찾아낸다. 본능적이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추락한다. 추락하는 인간에게 세상은 한순간 바랄 것 없는 무해가 된다. 무해, 얼마나 예쁜 말인가. 무해한 존재가 되지 못해 무해한 세계를 만든다. 그러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추락한다.


못난 것도 찾아주라. 읍소한다. 못난 글도 찾아달라. 읍소한다. 마음이 못난 사람이 쓰는 글이라. 인기야 없겠다마는. 그래도 초청해 달라. 당신의 마음, 당신의 상호작용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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