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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May 10. 2023

잘 안 풀려서 다행이야

에세이

나는 어릴 때부터 기고만장했던 거 같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가진 재주나 실력에 비해 항상 '잘 될 거다'라고 생각했다. 만약에 내가 좀 선하거나 인간관계라도 잘 맺는 사람이었으면 덜 미웠을 거다. 근데 그것도 아니었으니 나는 당연히 잘 안 풀렸다.


신발끈만 잘 안 풀려도 짜증이 나는데, 인생이 안 풀리니까... 말 그대로 쩜, 쩜, 점이다. 이것저것 손은 대봤지만 뭐 하나 제대로 한 것도 없고 나는 늘 도망치기 일 쑤였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보다 도망을 택했다. 나는 문제를 위협이라고 생각했다. 위협은 인간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준다.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그래서 오랜 분노는 사람을 병들게 만든다고 한다. 양립 불가능한 두 가지 상태에서 뇌는 계속해서 연소된다고 한다. 잘 안 풀리니까 나는 분노하면서 살았고, 마음도 병들었다.


돌고 돌고 돌아서, 여기까지 왔다. 글을 쓰고 쓰다 보니 어쩌다 글을 써서 돈을 버는 직업을 갖게 됐다. 내 글을 예쁘게 봐주신 분이 계셔서 너무 놀랐고, 나를 환영해 줘서 너무 감사했다. 아니, 황송했다. 그리고 놀라웠다. 사회적으로 아무런 입증이 되지 않은 나를 사용할 용기를 가진 사람이 있다니.


사람은 꼭 하나의 매듭이 풀리고 나면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이렇게 되려고 지금까지 그랬나?' 인과관계 해석이 꼭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 어찌 됐든 뭔가 풀리면서 분노도 차츰 수 그러 든다. 여유가 생기고 웃게 된다. 사람 마음이란 참 간사하다. 나지막이 '잘 안 풀려서 다행이야'하고 속삭인다.


인생은 잘 풀리면 좋다. 나는 한 번 사는 인생 굳이 굳이 고통을 끌어안을 필요 없단 생각이다. 부처도 예수도 아닌 평범한 인간이 왜 굳이 그래야 하나 싶다.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껴야 할 것들이 분명 있다. 알아야 할 것들도 있고. 최대 역치가 1인 사람과 10인 사람 각각 1에 대한 입장은 매우 다르다. 그러니 일단 세계의 지평을 늘리고 나면 뭔가 달라질지도 모른다. 기쁠 수도 혹은 슬플 수도 있다. 무엇이 됐든 그게 삶이다. 잘 안 풀려도 다행이고, 잘 풀려도 다행인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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